▲tvN <알쓸인잡>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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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은 명쾌하다. 어떤 질문이든 간에 똑부러진 답을 제시한다. 하지만 어렵고, 무겁고, 딱딱하다. 학창시절 이후로 상당한 거리를 두고 살았는데, 어느 날 물리를 다룬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떨림과 울림>(2018)이라는 책이었다. 처음에는 낯선 언어처럼 느껴졌는데, 점점 재미있고 흥미로워졌다. 심지어 따뜻하게 느껴졌다. 모든 게 '다정한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 때문이다.
김상욱 교수는 물리학을 쉽게 설명한다. 그럼에도 물리학은 여전히 난해하지만, 마침내 얼마간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의욕이 생기게 만든다. 시와 소설 등 문학 작품을 즐겨 읽고, 미술에 조예가 깊은 덕분일까. 그의 물리학은 풍성하다. 그래서 지루하지 않다. 또, 물리를 설명하는 그의 눈빛은 진지하고, 그의 언어는 성실하다. 시선을 집중시키고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무엇보다 김상욱 교수는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이다. 그에게 물리를 배웠다면 어땠을까. 김상욱 교수가 tvN <알쓸인잡>에 출연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안심'했다. 그에게 계속 물리학을, 물리학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알쓸신잡>, <알쓸범잡>, <알쓸인잡> 시리즈에 모두 출연한 터줏대감, 김상욱 교수는 '인간'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처음 지구에 우연히 나타난 생명은 그토록 단순한 시작에서부터 가장 아름답고 경이로우며 한계가 없는 형태로 전개되어왔고, 지금도 전개되고 있다. 생명을 향한 그 시각에는 장엄함이 깃들어있다." (찰스 다윈, <종이 기원>)
2일 방송된 <알쓸인잡>의 주제는 '내가 영화를 만든다면 주인공으로 삼고 싶은 인간'이었다. 김상욱 교수가 선택한 인간은 '찰스 다윈'이었다. 지금에야 '진화론의 아버지'로 불리지만, 당시만 해도 굉장히 위험한 생각을 가진 인물로 여겨졌다.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믿음이 지배적이었던 시대에 진화론을 주창하며 창조론의 모순을 지적했으니 사회적 파장이 얼마나 컸을까.
다윈은 진화론을 정립했음에도 자신의 이론을 정리한 <종의 기원>을 발간하기까지 20년을 기다렸다. 신앙적 믿음이 절대적인 시대에 성경을 부정하는 진화론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후 다윈은 연구를 거듭하며 진화의 수많은 증거를 확보했다. 인간이 비둘기나 개의 교배를 통해 품종개량한 것처럼 "자연이 그러지 못한 이유가 어디 있겠나"라고 주장했다.
다윈의 진화론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고, 찬반양론이 극명하게 엇갈려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19세기 말, 진화론은 열광적 지지를 받게 된다. 문제는 '자연 선택'이라는 다윈의 의도와 달리 약육강식을 정당화하는 선전 도구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그 결과, 유전자에 우열이 존재한다는 나치의 '우생학', 유럽 열강들의 제국주의와 식민지를 합리화하는 논리로 악용됐다.
이를 우려했던 다윈은 <종의 기원> 초판본에 '진화(Evolution)'라고 쓰지 않고, '수정을 통한 나아짐(Descent with modification)'이라는 완곡한 표현을 썼다. 그 이유는 진화라는 표현 속에 내포되어 있는 '더 좋아지는'이라는 뉘앙스를 대중에게 전달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상욱 교수는 그의 노력에도 진화론의 의미가 왜곡된 건 안타까운 일이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