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대한불교 조계종 10.29이태원참사 희생자 추모 위령제(49재)’가 희생자들의 영정이 모셔진 가운데, 조계종 관계자들과 유가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봉행됐다.
권우성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49재 추모식이 지난 금요일(16일) 치러졌다. 참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고 책임을 지는 사람도 없고, 참사의 원인도 밝혀진 것이 없는 채로 시간은 어느새 많이 흘렀다. 하지만 희생자와 유가족의 시간은 참사 이후로 멈춘 듯하다.
아픔은 오롯이 유가족의 몫이 되었고 그 주변에서는 무수히 많은 책임 논쟁과 책임 회피, 책임 전가가 일어나고 있다. 내가 느끼는 이태원 참사의 장례 과정은 희생자와 가족이 철저히 가려진 의식 같았다. 광장에 설치된 분향소에는 슬픔마저 숨을 죽여야 하는 정적만 있었던 것 같다. 이제 49재를 맞아 추모제가 진행되며 비로소 희생자가 보이기 시작한 것 같고 유가족의 분노와 슬픔이 표출되는 것 같다.
학교와 집 덮친 폐기물 더미, 사망자 144명
넷플릭스 드라마 <더 크라운> 시즌 3에는 1966년 웨일스 애버밴에서 일어난 붕괴사고가 나온다. 폐기물을 쌓아 놓은 봉우리가 무너지며 산사태를 일으켰고 계곡 마을에 있던 초등학교와 중학교, 인근 가옥이 파괴됐다. 이 사고로 144명이 사망했는데 어린아이 116명과 28명의 성인이었다.
국가 석탄위원회장은 사고 당일 관련 사실을 보고받고도 국장급 인사와 수석 엔지니어를 파견하기만 하고 본인은 대학 총장 취임식에 참석했다. 임명식을 미룰 이유가 없다는 말과 함께. 사건 현장의 주민들과 유가족들이 비난하자 현장에 파견된 업체의 간부들은 구조활동을 지휘하고 있다는 거짓말을 늘어놓았고, 위원장은 사건 다음날 저녁에서야 현장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사건 조사에 협력할 것이지만 사고의 책임은 전면적으로 회피하는 태도를 보인다. 지역 주민들이 지속적으로 사고의 위험을 지적했지만 이를 외면했던 사업체와 석탄위원회는 단순 재해라고 주장한다.
왕실에서는 빠른 대응이 필요하다며 대책을 논의하고 애도 성명을 발표한다. 그러나 영국 여왕은 군주로서의 책임감은 있지만 사고 현장을 방문하는 것은 계속 거부한다. '군주는 병원을 방문해, 사고 현장이 아니라.' 단호한 여왕의 말에 보좌진은 말을 덧붙일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여왕은 유족들의 슬픔에 공감하지 못한다. 공감할 줄 모르는 지도자, 마치 우리 정치인들의 모습을 그대로 마주하는 듯한 기시감이 들었다.
사고를 접한 총리의 태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고가 난 후에야 사고의 원인에 대해 파악한다. 석탄 폐기물 산의 높이는 6m 이하여야 했지만 5배도 넘는 높이의 폐기물이 쌓여 있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게 된다. 참사가 정치와는 상관없다는 참모진의 말에 총리는 모든 일은 정치 문제라며 자신에게 돌아오게 될 화살을 걱정한다.
당시 정권을 잡은 집권당인 노동당의 대표인 총리는 참사로 인한 정치적 유불리를 빠르게 계산한다. 이어 지지자들로부터 자신들의 입지가 흔들릴까 걱정한다. 그는 바로 사고 현장을 찾고 언론 브리핑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비난을 돌릴 방법을 찾고 참사로 인해 상대 당이 정치적 이익을 볼 것을 염려한다. 마침내 쥔 권력이 참사로 인해 흔들리면 안 되기에.
총리 : 약속드립니다. 초고도의 독립적 조사를 실시하겠습니다. 필요한 모든 권한을 이번 조사와 관련된 모든 유관부서에 부여하겠습니다.
기자 : 관리가 소홀했나요? 전국석탄청의 책임입니까?
총리 : 제가 말씀드린 이외에 더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시민 : 한 발 늦으셨네요. 저 산들이 위험하다고 수년 전부터 말했어요. 불 보듯 뻔한 참사였는데 아무도 안 들어줬어요.
총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딱 여기까지다. 시민들의 원망과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답변하지 못한다. 드라마에서는 왕실의 태도에 초점을 맞춘다. 여왕은 보도에 귀를 기울이며 사태를 주시하지만, 사태가 중하다며 현장에 방문하기를 권유하는 총리의 요청은 거듭 거부한다. 어디든 군주가 나타나면 주변을 마비시키고 한시가 바쁘게 일해야 하는 위급한 구조 현장에 하등 도움이 안 된다며.
희생자를 위로해주라는 총리의 말에 '쇼를 하라'는 말이냐고 되묻는 여왕의 모습에서 공감능력이 없는 지도자가 국민을 절망하게 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공감할 수 없는 지도자의 최선은 '쇼'다. 슬픔을 가장하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내며 무표정에 억지 걸음, 어색한 위로 등의 '쇼', 언론은 여왕이 눈물을 흘렸다고 보도하지만 그게 사실이 아님을 당사자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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