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이레> 관련 이미지.
한국예술종합학교
과거 <샘>이라는 작품에서 엉뚱 발랄한 매력의 세 인물을 연기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결이었다. 겉모습을 달리해 가며 표현한 전작과 다르게 <세이레>에선 비슷한 외형에 서로 다른 내면을 표현해야 했다. 류아벨은 "하나의 캐릭터든 1인2역이든 늘 새로운 캐릭터를 잡아가는 건 어렵다"며 "저와 캐릭터의 관계, 그리고 그 캐릭터가 작품 안에서 마주치는 인물과의 관계를 계속 고민하면서 잡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극중 우진을 연기한 서현우와 호흡이 중요했다. 대학교 동문인 두 사람은 함께 단편에 출연하기도 했고, 오랜 인연이 있다. "현장서 정말 많이 얘기했다. 아이디어를 교환하기보단 일단 해보고 수정해가는 식이었다"며 류아벨은 "대사에 표현되지 않은 미묘한 분위기나 감정은 다 현장에서 이것저것 시도해가며 만들어진 것"이라 전했다.
여기에 더해 배우 본인이 실제로 경험한 여러 상갓집 분위기도 반영됐다. 그는 "한국은 물론이고 여러 나라를 보면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금기들이 있는데 다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삼칠일까지 외부 접촉을 금하는 것도 생각해보면 아이의 면역력이 약하니까 조심하라는 나름 과학적 의미도 있다"며 "문지방을 밟지 말라는 것도 넘어져서 다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인 것 같고. 생각해보면 나름의 이유들이 있다"고 그 의미를 풀어냈다.
다재다능함을 펼치다
전통 풍습에 기댄 심리 스릴러. 영화 <세이레>를 두고 내린 류아벨의 정의다. 인간 내면에 자리한 죄의식을 건드리고 자극하는 캐릭터를 표현한 그는 "예전 같았으면 이런 깊은 인물을 연기한 뒤 잔상이 오래 남아서 고생하는 편이었는데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며 "촬영 때 잘 몰입해서 에너지를 쏟고, 이후에 확실하게 빠져나갈 수 있었다. 현장 분위기가 좋았고, 서현우 선배처럼 좋은 배우분들이 계신 덕"이라 말했다.
겸손한 표현이었지만 그만큼 류아벨의 연기 내공도 깊어져서가 아니었을까. 2008년 데뷔 이후 <나의 아저씨>나 <멜로가 체질> 등 드라마를 비롯해 독립예술영화와 상업영화를 오가며 보폭을 확장 중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본의 아니게 연기 활동이 다소 잦아들면서 자연스럽게 그는 본인이 그간 하지 않았던 일을 해보며 경험을 쌓아 왔다고 한다.
"배우 입장에선 작품이 없을 때 생각이 많아지곤 한다. 내가 배우가 아니었다면 뭘 했을까? 밑도 끝도 없는 욕심으로 연기를 택해서 내 재능을 썩히는 건 아닌지 싶기도 했다. 괜히 야식을 먹으며 살도 찌워보곤 했다(웃음). 어릴 때 돌아보면 곧잘 배우고 해내는 편이었는데 지금 뭘 잘하는지 누가 물어보면 딱히 잘하는 게 없는 것 같더라. 나름 틀을 깨려고 했는데 또다른 틀을 만들어 놓은 느낌이랄까."
잠시 작품 활동이 소강일 동안 류아벨은 서핑도 배웠고, 반려견을 맞이했다. 연기와 함께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던 음악감독 또한 놓지 않으며 나름 치열하게 공부 중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찾아온 카메라 울렁증을 떨치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자연스럽게 자신을 좀 더 들여다 볼 여유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