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포스터
찬란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라는 말에 다들 어떤 관계를 떠올리시는지. 나는 대번에 자매나 모녀 사이를 떠올렸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성인이 되기 전까지 언니와 속옷을 공유했으며 20대에는 상표도 뜯지 않은 내 속옷을 엄마가 몰래 꺼내 입어 크게 싸운 적이 있다.
그 속옷은 실컷 늘어나 다신 입을 수 없게 되었지만 더 화가 났던 것은 내 물건을 아무런 양해 없이 가져갔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지적하며 화내는 내게 엄마는 더 큰 화로 대응했다. 그깟 속옷이 대체 무슨 대수이길래 엄마를 잡아먹으려 드냐며 분노를 표한 것이다. 나는 물러서지 않았고 결국 엄마는 들고 있던 물건을 집어던지는 것으로 상황을 종결시켰다.
이러니 이 영화를 보며 도무지 남일처럼 여길 수 없었다. 누군가는 이 영화 속 모녀는 실재하기 힘들다고,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극적으로 묘사되었다고 할지도 모른다. 블랙코미디로 볼 만한 요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엄마인 '수경'이 내 엄마와 비슷한 점이 많아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 굳어 버렸고, 딸인 '이정'에게서 나의 모습을 보고 얼굴이 화끈거려야 했다.
영화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이렇다. 각각 40대 후반과 20대 후반인 수경(양말복 분)과 이정(임지호 분)은 다정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모녀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격하게 다툰 어느 날, 수경이 탄 차가 이정을 들이받는다. 수경은 자동차 급발진 사고라고 주장하지만 이정은 이를 믿지 않아 법정에서도 반대 측 증인으로 나선다.
자동차 급발진이라는 거대한 사건이 중심에 있긴 하나 그것을 제하고 보더라도 부족함이 없는 영화다. 섬뜩할 정도로 모녀 관계를 충실히 묘사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똑같은 경험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겠으나 엄마와 딸은 다른 가족 구성원과는 또 다른 관계를 맺고 있거나 그것을 기대받고 있지 않던가.
초반부, 이정의 시선으로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은 숨이 막힐 정도였다. 수경은 장성한 딸을 때릴 정도로 폭력적이면서도 '다혈질'이라는 말로 가볍게 치부한다. 딸에 대한 연민은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들다. 그녀로서는 성인이 되고도 한참이나 지났는데 독립할 생각도 없는 딸이 답답하기만 하다. 그 와중에 지나간 옛일로 사과를 요구하다니, 기가 막힐 뿐이다.
수경이 차갑게 묘사되는 동안 내 안의 이중적인 감정과 싸워야 했다. 납득할 수 없는 폭력을 쓰던 엄마에게 늘 분노했고 중년이 된 지금까지도 그 상처를 갖고 있던 나는, 마땅히 이정의 편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반드시 수경의 편이 되고 싶었다. 수경의 삶을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주장하고 싶은 심정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혼자만의 줄타기를 하는 동안 여전히 내 안에서 엄마와의 분리가 완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밉지만 미워할 수 없어서 차라리 나를 미워하기를 택하게 만드는 존재. 내겐 오직 엄마뿐이며 이 또한 나의 독립이 여전히 진행 중임을 보여준다. 어쨌거나 시간이 흐를수록 영화는 공정한 시선을 보여주었고 나를 안도하게 했다. 애써 수경의 편을 들 필요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