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스틸
찬란
괴물 같은 신인이 모인 영화다. 독특한 제목에 이끌려 봤던 영화인데 140분 동안 캐릭터와 일상 에피소드에 매료되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였다. 모녀 이야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처음에는 딸의 입장에 이입해 보았는데 어느 순간 엄마의 입장으로 옮겨가게 되더라. 서로가 짐이 되어버린 존재, 삶 자체가 버거웠을 모녀를 생각하니 잔잔했던 가슴에 파도가 일렁인다.
영화는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극도로 세밀하게 기록된 일상이다. 모녀 보다 여성과 여성 사이의 관계를 묻고 답한다. 과연 엄마의 과함은 유난인 걸까, 폭력인 걸까. 누가 누굴 이해해 줘야 할지 복잡한 마음이 커진다. 세상에 단둘뿐인 피붙이지만 심하게 뒤틀려있다.
한 마디로 원수보다 못한 관계다. 대체로 엄마 수경(양말복)은 자기 분을 못 견뎌 사사건건 딸 이정(임지호)에게 시비 걸고 때리는 게 다반사다. 딸은 그저 대들지 않고 묵묵히 그걸 다 받아준다. 이 기묘한 주종 관계는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반복된다.
하지만 반전이 벌어진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 이정은 참다못해 폭발했다. 사건의 발단은 급발진이라고 주장하는 사고부터였다. 그날도 수경의 시비와 구타를 견디지 못하던 이정이 차 문을 박차고 나와버렸다. 씩씩거리며 째려보는 게 분에 겨웠는지 '죽여버릴 거야'라는 말을 내뱉으며 악셀을 밟던 수경. 결국 차는 이정을 들이받았고, 재판으로 이어진다.
이정은 실수가 아닌 일부러 낸 사고라고 주장하고, 딸은 법정까지 나서 반박한다. 그 일로 여러 번 엄마에게 사과를 요구하지만 어느 집 개가 짖냐는 식의 싸늘한 반응만 돌아온다. 한집 사는 가족끼리 소송 건 웃지 못할 상황이 이어지며 모녀 사이는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진다.
사이즈가 다른데 같은 속옷을 입는 불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