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령은 계성대군의 성정체감을 존중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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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화령은 바로 이 지점에서 달랐다. 그녀는 불안할지라도, 이 불안을 아이들에게 투사하지 않는다. 아들 중에 왕세자가 나오기를 바라지만 그 누구에게도 "내가 모든 걸 걸었으니 반드시 왕세자가 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상황을 설명하고, 그 필요성을 각자가 판단하게 할 뿐이다. 스스로 결심한 덕분에 성남대군(문상민)은 택현이 열렸을 때 "자신 있습니다"(8회)라며 진심을 다해 경연에 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계성대군(유선호)의 특별한 성정체감을 알게 되었을 때도 화령은 그를 존중해준다. 놀라고 당황해 한바탕 눈물을 흘리긴 하지만, 이 감정을 그대로 아이에게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진짜 모습'을 표현할 기회를 주고, 자신의 비녀를 선물하며 그의 정체감을 인정해준다(3회). 4회 어린 대군들이 몰래 궐 밖으로 나가 놀다 왔을 때도 야단을 치긴 하지만, 자유롭고 싶은 아이들의 마음엔 공감해준다. 또한 극도로 불안한 여러 일들이 겹쳤던 6회에도 손주인 원손 앞에서는 불안을 드러내지 않는다.
아이와 내가 '다른 사람'임을 전제한 마음
도대체 어떻게 화령은 자녀들에게 자신의 불안을 투사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이는 화령이 아이와 나는 '다른 사람'임을 늘 기억하고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사실,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삶과 자녀의 삶을 구분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뱃속에서부터 모든 걸 함께 하며 키워낸 자녀는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라 여기기 쉽다. 하지만 자녀가 자라난 세상과 부모가 자라난 세상은 엄연히 다르다. 또한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른 기질을 타고난다. 때문에 아무리 부모와 자녀라 할지라도 같은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같은 꿈을 가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우리 모두는 다른 시각을 가지고 저마다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화영은 이 지점을 잘 이해한 사람이었다. 때문에 3회 계성대군의 성정체감을 알았을 때 당황스러운 자신의 마음'에 매몰되지 않고 "넘어서지 못하고 받아들여야 했을 때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까"라며 아이의 '다른 마음'을 떠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온갖 반칙을 해서라도 자신의 아들을 왕세자로 만들려고 하는 후궁들과 달리 아이들을 믿고 원칙을 지킬 수 있었던 것 역시 자신의 불안과 아이들의 마음을 구분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너도 원했잖아. 시작은 내가 아니라 주상이었습니다"(7회) 라며 자신이 저지른 악행까지 자식인 주상의 탓으로 돌리는 대비와도 확연히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화령이 이렇게 자신과 자녀들의 삶을 구분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 스스로가 삶의 주체는 자기 자신임을 실천하고 있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화령은 2회 이런 말을 한다.
"알아 나도. 궁인들도 막 수군대더라고. 외척을 견제한 선왕께서 한량 집안인 나를 간택하셨다고. 근데 그거 아니야. 내가 걔네들 싹 다 이겨 먹었거든."
이처럼 화령은 자신의 삶을 결코 수동적인 상태로 놓아두지 않는다. 자신이 지닌 한계는 수용하되, 주체적으로 살아간다. 때문에 화령은 자녀들 역시 각자가 삶의 주인공임을 인식할 수 있었을 것이고, 자신과 아이들을 분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