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속도로 가족> 스틸컷
CJ CG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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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구조 자체는 보편적인 편에 속한다. 문제를 겪고 있는 주인공과 어떤 과정을 통해 이를 돕게 되는 조력자. 돕게 된 일 때문에 벌어지는 큰 사건(위기)과 이를 딛고 주어지는 행복한 결말. 구조를 활용하는 방식이나 그 안에서 선택되는 소재나 설정이 다르기 때문에 겹쳐 보이지 않는 것뿐이지 다른 영화에서도 이런 식의 흐름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문제는 이 보편적인 구조를 어떻게 활용하고 표현해 낼 것인가 하는 것이다. 같은 도구라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용도는 달라질 수 있고, 결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 여기에 있다. 보편적이면서 보편적이지 않은 것. 영화의 뼈대는 안정적으로 구조화한 상태에서 흥미로운 소재를 배치하고 이를 들여다보는 시선에 변주를 준다. 여기에서 극을 살리는 핵심은 시선에 있다. 영화 <고속도로 가족>은 인물과 상황을 들여다보는 시선을 항상 경계 위에 둠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그에 대한 가치 판단을 쉽게 하지 못하도록 유도한다. 가족의 가장인 기우를 바라보는 시선이 대표적이다. 가장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가족을 길거리로 내몰면서도 달빛 아래에서 춤을 출 정도로 낙관적인 그의 모습은 누가 봐도 명백히 나쁜 쪽에 가깝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 것도, 임신한 아내를 도로 위에서 재우는 것도 모두 그의 선택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가족들은 그를 사랑하고 함께 행복해한다. 잠시도 아빠라는 존재를 떠나려고 하지 않는다.
영선과 도환(백현진 분) 부부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같은 맥락 위에 있다. 이 가족을 자신의 품으로 들이고자 하는 아내의 모습을 두고 순수한 의도가 아니라고 남편 도환은 이야기한다. 몇 해 전 사고로 잃어버린 아들의 빈자리를 고속도로 가족의 존재와 그 아이들로 채우고자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이들 가족을 돕고자 하는 영선의 마음과 행동은 분명히 선하고 옳은 쪽에 놓여있지만 영선의 가정에 놓여 있는 서브텍스트를 통해 영화는 이 지점의 문제 역시 단순한 모양으로 두지 않는다. 이처럼 옳고 그름, 선과 악의 경계 위에 놓여 있는 영화의 시선을 따르다 보면, 어느 샌가 자신이 믿고 있던 정의에 대해서도 조금의 의문이 생기기 시작한다.
03.
기본적으로 이 영화에서 영선이라는 캐릭터의 존재는 휴머니즘의 상징과도 같다. 낡은 중고 물품 가게를 운영하면서 자신도 그렇게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타인을 돕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인물. 여러 이유를 차치하고 어쨌든 아빠를 잃어버린 가족 구성원에 손을 내미는 유일한 존재다. 하지만 구속된 남편을 잃고 경찰서 입구에 쪼그리고 앉은 나머지 가족에게 영선은 또다른 의미이기도 하다.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세상이다. 서로 한 번도 떨어져 본 일 없이 자신들끼리만 뭉쳐 다니던 가족에게 영선은 '안정이라고 믿어야만 하는' 세상이 아니라, '제대로 안정된 세상'이다.
그로 인해 안정이라는 단어의 본 뜻을 직접 경험하게 된 지숙은 자신들이 떠나온 고속도로와 휴게소의 텐트 위로 다시 돌아가지 않으려 하는 이유다. 단순히 자신의 편의를 위해서는 아니다. 아이들이 어떻게 해야 제대로 성장할 수 있는지, 아이들에게 어떤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하는지 이제 정확하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은이(서이수 분)와 택(박다온 분)의 불안정한 심리와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은 헤아릴 의지도 능력도 없는 아빠의 허황된 현재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가 영선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다. 점점 더 높은 하늘을 향해 나아가는 아이들을 아빠의 그늘에서 땅만 바라보게 하고 싶지 않다.
그런 지숙의 의지의 발현과 표현이 프레임 속에서 구체화되면서 영화도 이들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을 다르게 가져가기 시작한다. 물리적으로는 경찰서에 끌려가 구속이 되는 사건, 의미적으로는 지숙이 영선의 세상에서 아이들을 키우고자 마음 먹는 순간부터다. 이 시점에서 가족의 구성원으로부터 아빠 기우를 분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기우라는 인물을 바라보는 애매한 시선은 여기까지다. 가족의 건강한 미래를 만들고자 하는 엄마의 의지로부터 영화 또한 그녀와 두 아이를 구해내고자 한다. 그럴듯해 보이던 아빠라는 존재로부터, 또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던 길 위의 텐트로부터. 이제 고속도로 가족은 극에서 지워지기 시작한다. 의무를 저버린 채로 모두의 권리를 박탈하고 그것이 행복이라 믿도록 강요하고 세뇌하던 '고속도로'라는 단어가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