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열렬한 자이언츠 팬이었다. 하지만 자이언츠 팬이 된다는 건 험난한 여정이었다.
김진수
여름방학을 고향인 부산에서 늘 보냈다. 1999년 여름방학은 특히 선명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저녁 시간쯤 텔레비전 6번 채널을 틀면 야구를 하고 있었다. 주형광, 문동환... 롯데 자이언츠 대표 투수들이 공을 던지고 있었다. 왜 케이블도 아닌데 야구를 틀어줄까.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나는 서울에서의 채널 6번과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부산이 야구에 미친 도시라는 걸. 그게 인연이 되었을까. 부모님은 좋아하지 않은 야구를 혼자 좋아하게 됐고 어느 순간 나는 자이언츠 팬이 돼 있었다.
하지만 자이언츠 팬이 된다는 건 험난한 여정을 시작한다는 것과 같았다. 내가 본격적으로 팬이 된 2001년부터 자이언츠는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4년 연속 꼴찌를 했다. 시즌 중 13연패, 15연패... 실제로 이랬다. 나가면 족족 졌다. 매일 아침 신문에 나온 '오늘의 선발투수'를 보면서 희망에 가졌지만 그래도 졌다. LG 트윈스, KIA 타이거즈 팬인 중학교 친구 둘이 늘 놀렸다. 펠릭스 호세라는 리그 최고의 외국인 선수가 거쳐 가기도 했지만 꼴찌 시절의 자이언츠에는 못 했던 외국인 선수가 대부분이었다. 크리스 해처라는 선수가 있었는데 친구가 "팀 분위기를 해칠 것"이라고 했다. 정말 그랬는지 그는 겨우 25경기만 뛰고 퇴출당했다.
고3이던 2005년 7월 모의고사를 마치고 친구 한 명과 잠실야구장에 처음으로 자이언츠 경기를 보러 갔다. 얼마인지 알아보지도 않은 채 갔다가 김밥은 포기해야 했다. 학생이라 돈이 없을 때였고 간신히 암표로 외야석 티켓 두 장을 구해 들어갔다. 그날 LG 트윈스에 한 점 차로 앞서고 있던 상황에서 자이언츠 에이스 손민한이 마무리로 마운드에 올랐을 때 그 떨림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경기가 끝날 때까지 조마조마해 온몸을 떨면서 봤던 기억까지. 나의 첫 자이언츠 경기 '직관'이기도 했으니까.
대학생이 된 나는 본격적으로 야구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자이언츠는 다시 부진했고... 꼴찌를 하진 않았지만 승리보다는 패배를 더 많이 하는 팀이었다. 1년에 7번쯤 잠실야구장을 찾았지만 갈 때마다... 졌다. 특히 2006년 원정경기 17연패를 했던 날 나는 친구들과 잠실 외야석에서 분노에 찬 팬들이 경기가 끝나자마자 쓰레기를 그라운드 안으로 던지는 광경을 씁쓸하게 목격해야 했다.
자이언츠가 마.침.내 가을야구에 진출한 건 2008년이었다. 하필이면 이때 나는... 군대에 있었다. 야구 소식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오로지 TV 뉴스나 주말에 '사지방(사이버지식정보방)'에 가야만 가능했다. 때로는 주말에 외출 나간 동기들에게 스포츠신문 몇 부만 사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원정경기 17연패를 했던 팀은 11연승을 한 팀이 돼 있었다. 새로 부임한 제리 로이스터 감독의 마법이었을까. 하지만 자이언츠 팬이라면 역시 험난한 여정을 견뎌야 하는 법. '가을야구'에 진출했지만 허망하게 무너졌다. 주말에 TV를 틀었다가 이제 3회밖에 안 됐는데 0-7의 스코어를 본 순간 솔직히... 욕이 나왔다.
그래도 그 이후에도 야구장을 열심히 다니면서 자이언츠를 응원했다. 사직야구장을 가진 못했지만 트위터에서 만난 자이언츠 팬들과 모여 잠실야구장에서 치맥을 하기도 했다. 선수들의 응원가도 다 외웠고 '부산갈매기'와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언제쯤 불러야 하는지 그 타이밍도 다 알고 있었으니까. 우승은 저 멀리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래도 늘 응원했다.
갈 때마다 져도 늘 응원한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