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슈룹>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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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룹>에 등장하는 이 같은 여장남자 이야기는 남장여자 이야기에 비해 역사 기록물(사료)에 훨씬 적게 등장한다. 여성이 남자 옷을 입고 먼 길을 떠났다는 이야기는 종종 접할 수 있지만, 남자가 그렇게 했다는 기록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몸 전체를 여장한 사례는 아니지만, 남자가 여자 분위기를 풍긴 사례가 <삼국유사> 기이 편에 소개된다. <삼국유사>는 경덕왕을 뒤이어 765년 만 7세 나이로 즉위한 혜공왕이 "항상 부녀자의 놀이를 하고 비단주머니 차기를 좋아했다"고 말한다.
<삼국유사>는 혜공왕이 그렇게 된 것은 그가 본래 여성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어린 임금은 여자로서 남자가 됐다"고 말한다. 이는 혜공왕이 여성 신분을 감추고 군주가 됐다는 의미가 아니다. 여성으로 태어났어야 할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혜공왕이 본래 여성이었다는 이야기의 진원지는 표훈대사다. 후계자가 없어 고심하던 경덕왕으로부터 "천제(天帝)에게 청해 아들을 갖게 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표훈대사는 <삼국유사> 기이 편에 따르면 하늘에 올라가 천자에게 왕의 부탁을 전했다.
천제의 대답은 '딸은 가능하지만 아들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를 전해들은 경덕왕은 표훈을 시켜 '그럼, 딸을 아들로 바꿔달라'고 천제에게 부탁했다. 천제는 '그렇게 해줄 수는 있지만 나라가 위태로워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런 사연으로 태어난 아들이 혜공왕이라는 게 <삼국유사>의 설명이다. 본래 여자로 태어났어야 할 혜공왕이 남자로 태어난 뒤에 여자아이들의 놀이를 하고 비단주머니 착용을 좋아했다는 것이다.
혜공왕 사례와 달리, 온몸 전체를 여장하는 일은 고려 말 이래의 공식 행사에도 있었다. 정약용(1762~1836)의 글을 모은 <다산 시문집> 제9권에 실린 상소문에 따르면, 임금이 직접 참관하는 알성시 과거시험의 급제자를 발표할 때에 그런 행사가 있었다. 방방(放榜)이라고 불린 이 행사 때에 남자 무용수가 여장 차림으로 공연을 하는 일이 있었다.
상소문에서 정약용은 고려 말부터 시행된 이 행사를 폐지할 것을 건의했다. 그는 "남자의 몸을 여자의 모습으로 변화시키니 귀신 같고 도깨비 같아 놀랍고 현혹됩니다"라고 한 뒤 "만약 후세에 문명이 발전한 뒤에 이런 일을 보게 된다면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정약용의 예측과 달리 현대인들은 여장남자를 봐도 크게 놀라지 않지만, 그는 후세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일이니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장여자에 대한 그의 반응은 <슈룹> 제2회와 제3회에서 중전과 고귀인 등이 보인 반응과 비슷하다. 계성대군의 은밀한 모습을 보고 경악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 <슈룹>의 등장인물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조정의 공식 행사에 등장한 여장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