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자백>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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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이 작품과 같은 장르의 영화들은 필연적으로 자신의 서스펜스를 획득하고 관객에게 전달하는데 역량을 집중할 수밖에 없다. 관객을 극에 집중시키고 이야기로부터 빠져나갈 수 없도록 붙잡기 위해서다.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한다면 영화의 결말에서 그 어떤 장치를 동원한다고 해도 이미 멀어진 관객의 마음을 되돌릴 수 없게 되어버린다. 원작이 높은 평가를 받았던 것은 다양한 지점에서 그 당위성을 획득하고 관객을 집중시킬 수 있는 요소들을 장치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이번 작품 역시 마찬가지다. 어쩌면 윤종석 감독이 영화의 초중반에 걸쳐 서사를 진행시키고 긴장감을 형성하는 방식을 그대로 가져온 것에는 그런 부분에 있어 어느 정도 원작의 힘을 인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가 서스펜스를 획득하기 위해 활용하고 있는 것은 크게 3가지다. 극의 중심에 놓여있는 사건 자체가 주는 긴장감이 하나, 사건이 해결되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 다시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도록 연속적으로 배치된 극의 전복과 관련한 극적 장치가 또 하나, 마지막으로 현재의 타임라인 위에서 유민호와 양신애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의 한정된 공간과 팽팽한 심리 싸움이 그에 해당된다. 처음 두 가지가 극의 구조적인 측면에서 활용되며 기술적인 완성도를 자랑하는 지점이라면, 산장의 공간과 그 내부에서 펼쳐지는 두 인물의 대결 구도는 극의 내부가 갖고 있는 힘을 순수하게 보여주고 있다.
03.
이 작품은 다양하고 넓은 공간에서 극이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현재의 타임라인이 진행되고 있는 공간은 유민호와 양신애가 만나 대화를 나누는 산장이 대부분이다. 나머지 공간은 두 사람이 기억하고 수정하는 사건의 진술을 재연하는 공간으로 과거의 시점이거나 가정의 공간인 셈. 여기에는 이 좁은 공간에서도 호흡을 잃지 않고 극을 이끌어 가는 두 배우, 소지섭과 김윤진의 에너지가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또 다른 밀폐된 공간인 산장의 내러티브가 제 몫을 다할 수 있는 이유는 과거의 사건이 가져다주는 두 가지 제약이 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민호와 김세희 사이에서 발생하는 관계적 제약이 선행한다. 두 사람은 이미 불륜이라는 관계로 인해 서로 암묵적인 비밀을 안고 있지만, 함께 겪게 되는 사고로 인해 더 큰 비밀을 공유하게 된다. 합의만 한다면 두 사람만 알고 없었던 일로 넘길 수도 있는 불륜과 달리 이제는 결코 지울 수 없는 비밀이 생겨버리고 만 것이다. (물론 두 사람은 이 사건을 없었던 일로 지우고자 노력하고, 이후 김세희가 죽음을 맞이하면서 오롯이 유민호의 것이 된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사건의 진실에 대한 제약은 산장에서 유민호와 양신애가 서로의 발언에 대한 의문과 당위성에 대한 시작점이 된다.
"하지만 모든 게 위선이었죠. 속에서는 구역질이 났으니까."
다른 하나는 두 개의 사건과 두 개의 시신에 대한 전말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논리적 제약이다. 그나마 유민호가 제일 많은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검찰에 송치되어 조사를 받을 때도 사실을 은폐할 수 있었고 산장에서의 긴장감 있는 심리전도 이루어질 수 있었지만, 반대로 모든 사실을 알 수 없다는 제약으로 인해 오히려 위기에 몰리게 되기도 한다. 하나의 사건과 하나의 사실밖에 알지 못하는 경찰과 검찰의 모든 시선이 사건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는 그에게로 쏠릴 수밖에 없음은 물론, 자신이 모르고 있는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자백을 받았다는 양신애의 주장을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로써 진실을 알고 있는 남자와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자백을 들은 여자의 산장 내러티브는 그 자체로 힘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