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가난한 세 자매 인주(김고은), 인경(남지현), 인혜(박지후)에게 '검은 돈'이 생기면서 벌어진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풀어가는 tvN <작은 아씨들>은 참 매력적인 드라마다. 루이자 메이 올컷의 소설 <작은 아씨들>을 연상시키는 설정에 '돈'이라는 현실적 동기가 더해지고, 스릴러의 요소까지 갖춘 이 드라마는 매회 여러 가지 감정들을 불러일으키면서 나를 사로잡고 있다.
 
드라마가 중반에 이른 요즘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감정은 안타까움이다. 드라마 초반, 지극한 가난 속에서도 서로의 속내를 털어놓으며 의지하던 세 자매의 모습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 <작은 아씨들>(몇몇 설정은 비슷하지만 확연히 다른 작품이긴 하다)에선 완전히 다른 개성을 지닌 네 자매가 서로 심하게 다투면서도 곧바로 화해를 한다. 하지만, 돈이 삶을 좌우하는 현대의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하는 이 드라마 속 세 자매의 갈등은 점점 더 깊어져만 가고 있다.
 
도대체 돈이 뭐길래 우애 좋은 세 자매를 이렇게 갈라서게 만들고 있는지 인주의 대사처럼 "돈이 참 무섭구나" 싶었다. 하지만, 인지행동치료학자들에 따르면 단순한 사건이나 물질 그 자체는 사람의 감정이나 행동의 이유가 될 수 없다. 그 사건을(이 드라마에서는 돈) 바라보는 관점이나 그로 인한 심리적 역동에 따라 서로 다른 감정이나 행동이 유발되기 때문이다. 이를 염두에 두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정말 그랬다. 세 자매의 갈등은 '돈' 자체라기보다는 돈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 그러니까 도덕적 판단의 기준이 다른 데서 기인하고 있었다.
  
 tvN 드라마 <작은 아씨들> 포스터
tvN 드라마 <작은 아씨들> 포스터 tvN
 
인경, 정의의 도덕성
 
심리학에서 도덕성 발달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학자로는 콜버그와 캐럴 길리건을 들 수 있다. 콜버그는 도덕적 판단은 양심과 정의를 따른다고 보았는데 그 결정이 타율적인지, 자율적인지에 따라 도덕성 발달단계가 달라진다고 했다. 그는 도덕적으로 성숙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이득을 추구하거나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궁극적인 정의와 양심에 따라 도덕적 판단을 내린다고 했다. 반면, 캐럴 길리건은 콜버그의 이론이 관계성을 중시하는 여성의 도덕성 발달을 잘 설명해주지 못한다고 비판하면서 배려와 책임을 중심으로 하는 도덕성 발달 이론을 제안했다. 길리건에 따르면 도덕성은 자신의 이익을 지향하는 것에서 타인을 배려하는 단계를 거쳐, 자신과 타인 모두를 배려하는 단계로 발달해 간다.
 
이 이론들에 따르면 둘째 인경은 '정의'를 기반으로 한 콜버그의 도덕적 가치관을 따르는 인물이다. 인경은 가난으로 인한 비참함을 경험하면서도 양심과 사회정의를 최우선으로 둔다. 3회 인주에게 20억 원의 돈이 생긴 것을 안 인경은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그 돈에 손을 대면 신고 하겠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난 가난한 건 괜찮아. 그 상태로 이렇게 살아왔잖아. 그런데 가난해서 도둑이 되는 건 싫어"라고 단호히 말한다. 이는 인경이 언니와의 관계나 상황적 배려보다 정의와 양심을 더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인경이 기자라는 직업을 갖게 된 것 역시 이런 가치를 실천하기 위함이었을 테다.
 
다른 인경의 행동들 역시 '정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인경은 자매들은 물론 자기 자신의 안전이 위협을 받는데도 불구하고 박재상(엄기준)의 비리를 캐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또한, 부동산업으로 부자가 된 고모 할머니 혜석(김미숙)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할머니가 부를 축적한 방법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인주, 관계와 배려의 도덕성
 
반면, 인주는 길리건이 말한 배려와 책임의 도덕성에 기반해 있다. 인주는 20억이 자신의 수중에 있음을 알았을 때, 부도덕한 돈이라는 데 잠시 갈등을 하지만, 곧 동생들과 보다 안락하고 안전하게 살아가는데 사용하기로 마음먹는다. 이는 인주가 정의보다는 자신과 동생들의 삶을 배려하고 책임지는 걸 우선으로 여김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또한 인주가 돈을 대하는 태도에는 늘 자신의 유일한 절친이었던 화영(추자현)의 억울함을 풀어주려는 마음이 함께 한다. 20억 원을 손에 쥐었을 때도, 싱가포르에 자신의 이름으로 700억에 이르는 자산이 있음을 알았을 때도, 인주는 화영을 떠올린다. 인주는 돈을 처리하는데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갈등하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인주가 판단을 내리는 근거는 화영과의 관계다. 6회 돈 세탁 전문가 도일(위하준)은 이를 간파하고 인주를 이렇게 설득한다.
 
"나 같으면 이렇게 말하겠어요. 화영씨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유일한 길은 인주 씨가 그 계획을 완수하는 것 뿐이라고."
 
이에 인주는 일단 도일의 계획을 따르기로 한다. 이렇게 관계 지향적인 가치관을 지닌 인주는 효린의 엄마 상아(엄지원)가 자신을 이용하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의 외로움과 상처에 진심으로 마음 아파한다. 때로는 '친구'라는 말에 쉽게 마음이 흔들리기도 한다.
 
이렇게 인경은 '정의와 양심'을 중시하는 도덕적 가치관을, 인주는 '관계에 대한 책임과 배려'를 중시하는 도덕적 판단기준을 가졌다. 인경과 인주는 너무나 다른 기준으로 세상을 대하고 있다. 때문에 둘은 서로를 무척이나 사랑함에도 그 간극을 좁히지 못한 채 갈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로 다른 기준으로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인경과 인주는 돈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한다.
서로 다른 기준으로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인경과 인주는 돈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한다. tvN
 
인혜, 빚진 마음과 연약한 도덕성
 
한편, 막내 인혜의 도덕적인 면은 아직 매우 연약해 보인다. 인혜는 가난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언니들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아닌 효린(전채은) 가족의 조건적인 사랑을 선택한다. 이는 인혜가 자기 자신의 이득을 기준으로만 도덕적 판단을 내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콜버그와 길리건의 이론 모두에서 가장 낮은 단계인 '이기적인 단계'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인혜의 이런 마음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1회 인혜는 자신이 수학여행 갈 돈을 들고 외국으로 가버린 엄마와 달리 어떻게든 돈을 구해 수학여행을 보내주려는 언니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엄마 말은 다 사실이라 기분 안 나쁜데 언니들이 그렇게 애쓰는 게 나 더 싫어."
 
3회에선 효린이네서 보내주겠다는 유학을 말리는 인주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언니 세상에 공짜는 없잖아. 내가 유학 간다고 언니 등골을 빼면 나중에 어떻게 갚아?"
 
4회엔 인경에게 "내가 그림을 잘 그려서, 괜찮은 아이여서, 머릿결이 예뻐서" 사랑해주는 효린네의 사랑이 자신이 받고 싶은 사랑이라면서 "발가락이 툭 튀어 나온거, 머리 냄새, 성질머리"등이 좋아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사랑해주는 언니의 사랑은 "짜증난다"고 말한다.
 
이는 인혜가 언니들의 희생에 '빚진 마음'을 지니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장면들이었다. 심리학의 연구들에 따르면 도움을 받은 후에 경험하는 불편한 정서인 '빚진 마음'은 감사하는 마음을 줄이고 상황으로부터 회피하도록 하며 죄책감을 경험하게 한다. 아마도 인경은 이런 빚진 마음이 너무나 불편해 언니들로부터 탈출하고 싶었을 것이다.
 
반면, 그림 실력과 딸의 친구로서 혹은 선거전략에 의한 필요 때문에 자신에게 잘해주는 효린네의 호의는 '빚진 마음'을 덜 수 있기에 오히려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인혜는 자신의 그림을 효린에게 대신 출품하도록 하는데 이를 자발적으로 행한 것도 효린네서 받은 것들에 대한 '빚진 마음'을 상쇄하기 위한 전략이었을 것이다. 인혜에겐 그 어떤 도덕적 가치보다 자신의 빚진 마음을 더는 게 중요했던 것 같다.
 
 인혜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효린네의 조건적 사랑을 선택한다.
인혜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효린네의 조건적 사랑을 선택한다. tvN
   
이처럼 <작은 아씨들>의 세 자매는 서로 다른 도덕적 가치를 지닌 채 완전히 다른 관점으로 돈과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때문에 세 자매의 간극은 점점 더 커져만 간다. 과연 이 자매들이 이런 자신들의 차이를 존중하면서도 조율하며 지금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6회에는 박재상의 재산 목록을 폭로했다 곤란에 처한 인경을 인주가 구해내는 장면이 나온다. 둘이 손을 꼭 잡고 기자들 사이를 헤쳐나오는 이 장면은 앞으로 이들이 힘을 합쳐 서로를 위기에서 구해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게 했다.

사실, 차이와 갈등에도 불구하고, 이 자매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아직 애틋하다. '작은 아씨들'이 서로를 포기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정말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현실의 우리들도 가치관의 차이를 존중하면서 갈등을 풀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러기 위해 우선, 나의 도덕적 가치관은 세 자매 중 누구와 유사한지 점검해 보는 건 어떨까. 모든 차이와 갈등은 내 마음에 대한 성찰에서부터 풀어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작은아씨들 도덕성 빚진마음 김고은 남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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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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