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수리남> 스틸컷영화 <수리남> 스틸컷
영화 <수리남> 스틸컷
어떤 딜레마도 없이 직진하는 캐릭터의 부조화
가부장제에 대한 묘한 연민의 시선과 함께 제기되는 또 다른 문제는 <수리남>이 윤종빈 감독에게 기대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윤종빈 월드의 주인공들은 딜레마를 품고 있다. <용서받지 못한 자>의 장원(이승영)은 군대의 악·폐습에 문제를 제기하고 끊어내고 싶으면서도 기대를 따라오지 못하는 후임 때문에 결국 부조리의 늪에 빠진다.
<비스티 보이즈>의 승우(윤계상)는 본인도 호스트이지만 여자친구의 화류계 생활을 지켜볼 용기가 없다. <군도>의 조윤(강동원)은 본인이 서얼로 태어나 신분제의 차별을 겪었으면서 민란을 저지해야 한다.
반면 <수리남>에서 인구는 어떤 딜레마도 없이 요환의 파멸을 향해 직진한다. 물론 같이 사업을 키워나가자는 요환의 설득에 혹한 순간도 있었지만, 요환의 왕국에서 사이비종교와 약물로 고통받는 아이를 본 뒤 금세 정신을 차린다.
이후 긴장감 넘치는 총격전과 카체이싱, 육박전이 펼쳐지지만, 액션이 폭발하는 통쾌한 히어로와 빌런의 대결을 보고 싶으면 <범죄와의 전쟁>이 아니라 <범죄도시>를 찾아가는 게 낫다. 납작해진 서사를 일단 끌고 가는 건 장르적 추동력이다. 국정원이 심은 또 다른 언더커버의 정체는 극의 후반부가 되어야 밝혀진다. 혼란을 유도하는 세밀한 연출이 돋보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서브플롯이다.
결국 <수리남>의 원동력은 실화가 가진 힘이다. 시청자들은 요환이 붙잡힌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인구가 어떻게 요환의 의심을 벗어나 그를 함정에 빠뜨릴지 궁금해한다. 그러나 이는 각본의 영역이 아니다. 믿지 못할 실화가 가진 흡입력이 시청자를 6시간 동안 주저앉힌다.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들의 연기대결, 6시간을 집중하게 만드는 윤종빈 감독의 연출력은 여전하지만 <수리남>은 그의 신작을 기다린 팬들에게 아쉬울 수 있다. <수리남>에는 분명 순간순간 재치를 엿볼 수 있는 '말맛'이 살아있지만 캐릭터의 거침없는 돌진으로 그간 촘촘하게 빚어온 윤종빈 월드에는 어딘가 미치지 못한다.
슬퍼질 땐 차라리 나 홀로 눈을 감고 싶어 고향의 향기 들으면서
조용필의 '꿈' 마지막 가사다. 군대, 가부장제, 군부독재, 남북분단상황처럼 한국의 독창적인 소재들에서 인간적인 페이소스를 담아내던 윤 감독 고향의 향기가 유난히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