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콘텐츠 시상식 중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 에미상 역사를 새로 썼고, 전 세계적으로 한국 전통 놀이의 유행을 일으키며 신드롬을 만들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말 그대로 전 세계에 K-콘텐츠 위상을 확인케 하는 첫 포문을 연 작품이기도 했다.
 
지난 12일(현지 시각 기준) 미국 프라임타임 에미상 시상식에서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을 거머쥐며 6관왕에 오른 <오징어 게임>의 선전은 사실 본 행사 전부터 예견된 결과긴 했다. 많은 외신에서 이 작품이 '빈손으로 돌아가진 않을 것'이라며 주요 부문 수상 예측 기사를 냈다는 건 그만큼 그 신드롬이 막강했다는 걸 방증한다.

74년 에미상 역사상 첫 비영어권, 그것도 한국어 드라마가 주요 부문 수상작이 된 걸 바꿔 생각하면 보수적이고 폐쇄적이었던 해당 시상식이 그만큼 변화를 갈망했다는 뜻이 된다.

올해 5월 열린 제75회 칸영화제가 <오징어 게임> 주연인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 <헌트>를 초청했고, 경쟁 부문에 오른 <브로커>와 <헤어질 결심> 모두에게 상을 안긴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이런 국제적 행사 또한 출구 전략이 필요했고, 그중 하나가 한국 콘텐츠를 적극 앞세우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하다
 
 12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마이크로소프트 시어터에서 열린 제74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오징어 게임'으로 드라마 부문 감독상을 받은 황동혁 감독이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12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마이크로소프트 시어터에서 열린 제74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오징어 게임'으로 드라마 부문 감독상을 받은 황동혁 감독이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영화 <기생충>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고, 아카데미 역사상 첫 감독상 사례가 된 봉준호 감독은 "가장 개인적인 게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을 남겼고 이젠 격언처럼 여기저기서 인용된다.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 사례로 국내 업계에선 해외 여러 관계자들이 한국과 협업하려 한다며 장밋빛 미래를 꿈꿔보지만, '한국 콘텐츠'라는 게 전가의 보도가 될 수 없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실제로 <오징어 게임> 대성공 전후로 한국영화 및 드라마 투자에 공격적이었던 넷플릭스는 다수의 작품이 예상에 밑도는 성과를 내자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정황을 보이고 있다. 2021년 기준 5500억 원을 한국 시장에 투자했지만, 올해 들어선 판권 계약이나 방영권 계약에 소극적이라는 게 업계 소문이다. 그럴싸한 흥행 공식이나 블록버스터 요소에 기댄 작품들은 그 플랫폼이 아무리 글로벌 OTT라도 힘을 쓰지 못하는 당연한 진리를 재확인한 셈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오징어 게임>은 약 12년 전 황동혁 감독이 심취했던 <배틀로얄>, <도박 묵시록 카이지> <라이어 게임> 등 여러 만화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한 '영화용 시나리오'였다. 앞서 2008년 무렵 준비하던 영화가 투자 난항으로 엎어진 뒤 그는 본인 명의로는 대출이 되지 않아, 어머니 명의의 마이너스 통장으로 생활하며 <오징어 게임>을 썼다. 하지만 역시나 당시 투자사들의 거절로 묵혀두게 된다. 10년이 지나 우연히 넷플릭스 관계자에게 영화 시나리오를 보여준 뒤 본격적으로 드라마화를 추진하며 날개를 달게 된 것이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 그리고 시장 일을 하던 홀할머니 곁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그는 본인이 서울 쌍문동 출신이라는 점을 십분 활용했다. <오징어 게임> 속 기훈(이정재), 상우(박해수) 캐릭터는 그의 경험이 녹아든 경우였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로 첫 번째 에피소드를 시작해 '오징어 게임'으로 끝나는 구성 또한 실제 그가 하던 놀이들에서 비롯됐다.
 
<오징에 게임>엔 단순히 충격적인 비주얼이나 오락성만 있는 게 아니다. 기훈이 드래곤 모터스에서 해고당했다는 설정, 노동 쟁의 중 동료의 사망 사건을 지켜보는 장면 등이 삽입된 건 우리 사회 비극이었던 쌍용 자동차 대량 해고 사건을 염두의 둔 설정이었다. 황동혁 감독은 전작 <도가니>에서 청각장애학교에서 벌어진 실화를 다루며 상업영화 감독으로 사회 문제에 대한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었는데 이는 서울대 재학 시절 얄라셩이라는 영화 동아리 활동 등에서 영향받은 것으로 보인다.
 
얄라셩은 일종의 영화 연구회내지는 영화 운동 모임으로써 기능했고, 1982년 출범한 본격적인 사회참여 및 비판 기능에 방점을 찍은 서울영화집단의 모체가 된 동아리다. 서울대 신문학과 90학번이었던 황동혁 감독은 선후배들과 자연스럽게 사회 비판 활동에 함께 하다 지치기도 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졸업 무렵 비디오카메라 촬영에 관심이 생긴 그는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남캘리포니아대(USC)에서 영화제작을 공부했다.
 
저력 그리고 조력자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 넷플릭스
 
황동혁 감독은 2007년 영화 <마이 파더>로 상업영화 연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도가니>(2011), <수상한 그녀>(2014)를 연출하며 작품성과 흥행력을 동시에 인정받았지만 유독 감독상 등 수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데뷔작 <마이 파더>는 주연 배우 다니엘 헤니에게 주요 영화제(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대종상 등) 남우 신인상을 안겼고, <도가니>와 <수상한 그녀>로 청룡영화상, 대종상 등의 주요 부문 후보로 이름을 올렸지만 감독 본인의 수상은 불발됐다. 김훈의 소설을 영화화 한 <남한산성>(2017) 또한 백상예술대상에서 작품상을 받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대신 그는 국정원 문서에 이름을 올려야 했다. 2019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 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 황동혁 감독은 봉준호, 박찬욱 감독 등과 함께 이른바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었다. <도가니>가 공무원과 경찰을 부패하고 무능한 비리집단으로 묘사해 국민에게 부정적 인식을 주입했다는 게 이유였다. 지난 정권에 탄압받았던 봉준호, 박찬욱, 황동혁 감독이 역으로 대한민국 콘텐츠의 세계 시장 진출에 앞장선 주인공이 된 건 역사의 아이러니다. 
 
<오징어 게임>이라는 콘텐츠의 존재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한 건 2018년 말이었다. 황 감독은 <남한산성>을 두고 "감독이 된 후 처음으로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든 영화"로 표현할 정도로 애정과 열정을 담았지만, 정작 영화는 384만 관객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다. 1년간 두문불출하던 그의 손을 다시 잡은 건 <남한산성> 제작사인 싸이런픽쳐스였다.

싸이런픽쳐스의 김지연 대표는 소설가 김훈의 딸이기도 하다. 2001년 싸이더스에서 영화 일을 시작한 그는 2008년 영화 제작자의 길을 걷기 시작, < 10억 > <헤드> 등의 상업영화를 제작했다. 황 감독과 함께 했던 영화가 손해를 봤지만, 김 대표는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느낌을 믿었다"라며 신뢰를 놓지 않았던 걸로 알려졌다.
 
예정대로라면 <오징어 게임> 시즌 2는 2024년에 공개된다. 현재 차기작인 영화 < KO클럽 >(Killing Old People Club)을 준비 중이기도 하고, 시즌 1 때 치아 6개가 빠졌을 만큼 극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한 터라 황동혁 감독은 1보다 나아진 제작 환경을 넷플릭스 측에 요구했다는 후문이다. 올해 초 기자와 인터뷰에서 그는 "상금 456억 원을 기훈이 과연 아무 일 없이 쓸 수 있을까? 그 질문에서 시작할 것 같다"며 시즌 2의 일부 기획을 귀띔하기도 했다.
 
분명 세계 콘텐츠 시장에서 한국은 더 이상 예외가 아니다. OTT 플랫폼 순위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 패트롤을 보면 15일 기준으로 TV드라마 부문 Top 10에 <수리남>(3위), <신사와 아가씨>(7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8위) 등 한국 콘텐츠가 세 작품이나 올라 있다.
 
<기생충> <오징어 게임>에 이어 이런 작품들이 1인치 자막의 장벽을 넘어 세계 무대에서 사랑받고 있는 건 분명 고무적인 일이다. 동시에 황동혁 감독 등 앞서 언급한 창작자들이 큰 부침을 겪었거나, 정부 차원에서 일종의 탄압을 받기도 했다는 사실도 잊으면 안 된다. 여전히 한국은 창작자들의 창작 행위가 노동이라는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해당 콘텐츠 또한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세련된 제도 마련도 시급해 보인다.
 
K-콘텐츠 열풍은 언제든 다른 열풍으로 뒤바뀔 수 있다. 앞선 사례들이 스페셜 원(special one)처럼 회자되기보단, 다양하고 대범한 여러 시도들을 통해 과정 자체가 상식이 될 수 있는 때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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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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