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12회에 등장한 여성 노동자들은 함께 목소리를 내고 손을 잡고 연대한다.
ENA
이처럼 자기 결정권은 누구나 추구하고자 하는 기본권리이며 장애가 있든 없든, 사회적 소수자이든 아니든 평등하게 존중받아야 하는 권리다. 하지만, 드라마가 보여주듯, 자기 결정권은 종종 침해받는다. 특히 사회적 소수자이거나 약자일수록 자기 결정권을 지켜가는 일은 어렵다.
먼저, '보호' 혹은 '보살핌'이라는 명분은 종종 자기 결정권과 충돌한다. 형을 죽였다는 누명을 썼던 자폐인 동생(3회), 방구뽕씨와 신나는 한 때를 보냈던 어린이들(9회), 남자 친구와 연애하기를 원했던 지적 장애인 신혜영씨(10회)는 모두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장애가 있거나 어리다는 이유로 보호자에게 종종 자기결정권을 빼앗긴다. 자폐인 동생은 자신의 뜻을 마음대로 해석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감내해야 했고, 아이들은 자신들이 방구뽕씨와 지낸 즐거운 시간을 '범죄'라 부르는 어른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지적 장애인 신혜영씨가 아무리 '사랑'이라고 주장해도 법정에서 이 말은 받아 들여지지 않는다.
사회에 만연한 편견과 차별 역시 자기 결정권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큰 장벽이다. 영우의 부정 취업 논란이 있었던 8회 동료 변호사 수연(하윤경)은 수군거리는 회사 사람들 앞에서 "니 성적으로 아무 데도 못 가는 게 차별이고 부정이고 비리야"라고 외친다. 이는 '천재'인 영우마저 '자폐인'이라는 이유로 정당하게 경쟁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지켜갈 권리를 박탈당해 왔음을 지적한 발언이었다.
여성노동자들의 부당해고 사건을 다뤘던 12회 방영분은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가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가로막는 것을 잘 보여 주었다. 겉으로 보기엔 차별이 아닌 것 같은 규정도, 가부장 사회의 맥락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일보다는 가정을 선택하라는 강요를 당하곤 한다. "아내로서 남편의 앞길을 막아서야 되겠습니다. 내조는 이럴 때 하는 거죠"라는 인사담당자의 말은 여성들이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결정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삶의 주체가 되기를 포기하지 않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속 인물들은 결코 쉽게 자기결정권을 포기하지 않는다. 영우는 자신의 삶을 조정하려 드는 태수미 변호사(진경)에게 "아버지에게서 독립해 진짜 어른이 되고 싶어서 한바다를 떠나라고 했던 건데 기껏 아버지를 떠나 어머니의 회사로 갈 수는 없으니까요"라고 똑똑히 말한다(8회). 또한, 준호(강태오)와의 관계에서도 준호의 호의에 결코 끌려다니지 않는다. 준호에게 먼저 솔직하게 애정표현을 하고 다가가지만, 자신이 준호를 외롭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거리를 두기도 한다. 이는 영우가 삶에서 주체로 행동하는 방식이었다.
이처럼 삶에서 자기 결정권을 중요시해온 영우는 10회 지적 장애인 혜영을 찾아가 이렇게 조언한다.
"신혜영씨가 경험한 것이 사랑이었는지 성폭행이었는지 그 판단은 신혜영씨의 몫입니다. 그걸 어머니와 재판부가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지 마세요."
혜영은 영우의 말에 힘을 내 법정에서 자기 자신을 위한 증언을 한다. 비록, 혜영의 주장이 받아 들여지지는 않았지만, 이는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경험으로 남았을 것이다. 자신들의 즐거웠던 추억을 '범죄'라 명명당한 어린이들 역시 기회가 주어지자 법정에서 온 힘을 다해 방구뽕씨를 응원한다(9회). 이들 역시 자신의 경험에 스스로 이름 붙이는 소중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12회의 여성 노동자들은 한계를 알면서도 힘껏 목소리를 내고, 싸우며 연대한다. 결과는 패소였음에도 이들은 서로 손을 꼭 잡고 서로를 위로하며 연대를 더 단단히 만들어 간다. 이는 지금 당장은 나의 결정권을 발휘하는데 한계가 있을지라도 연대를 통해 조금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을 잘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