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뿌듯함. 오늘 아침 제가 느낀 감정의 이름은 뿌듯함입니다" (16회, 영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가 막을 내렸다. 영우(박은빈)의 마지막 대사를 들으며 나 역시 마음이 벅차올랐다. 마치 영우의 뿌듯함이 내게도 전달되는 듯했다. 영우가 '정규직 변호사'로 첫 출근하는 이 마지막 장면은 드라마 첫 회 한바다로 첫 출근하던 영우의 모습과 겹쳐졌다. 하지만 변호사로서 첫 발을 내딛던 그때 영우는 그다지 뿌듯해하지 않았다.
 
도대체 영우는 왜 마지막 회에서야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을까. 그건 아마도 한바다에 남기로 스스로 결정하고 최선을 다해 정규직 전환을 얻어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영우만이 아니었다. 성소수자 커플, 자폐인, 어린이, 발달장애인, 여성 등 드라마 속에 등장했던 의뢰인들은 하나같이 스스로의 삶을 결정하고자 했고, 이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자 했다. 이들은 이를 추구하면서 뿌듯해하곤 했다.
 
나는 드라마 속 뿌듯했던 순간들을 하나하나 돌아봤다. 그리고 마침내 알 수 있었다. 드라마 <우영우>는 결국 인간다운 삶, 그러니까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살아가는 삶의 조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음 말이다. 그건 바로 '자기결정권' 이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삶에서 '자기 결정권'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잘 보여주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삶에서 '자기 결정권'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잘 보여주었다. ENA
 
스스로의 삶을 결정하고 싶은 마음
 

'자기 결정권'이란 각자의 가치관과 욕구 희망에 근거해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것들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를 말한다. 비록 최선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스스로 결정하고 후회하는 과정을 통해 성장해간다. 이는 헌법 제10조에 명시된 행복추구권에서 도출되는 기본적인 권리다.
 
<우영우>에 등장한 다양한 인물들은 자기 결정권에 대한 욕구를 매우 잘 보여주었다. 먼저 영우부터가 자기 결정권을 수호하기 위해 늘 애쓰는 인물이었다. 2회에는 아버지의 뜻대로만 살다 마침내 커밍아웃하는 성소수자 커플이 나온다. 이 사건을 해결한 후 영우는 아버지 광호(전배수)에게 "만약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 결혼식을 한다면 동시 입장을 하겠습니다. 아버지가 배우자에게 저를 넘겨주는 게 아니라 저는 어른으로서 결혼식을 하는 거니까요"라고 말한다. 이 말엔 아버지의 딸이 아닌 독립된 성인으로 살고 싶은 영우의 마음이 잘 담겨 있었다.
 
이 후 영우는 아버지와 한바다 대표 선영(백지원)과의 관계 덕에 자신이 한바다에 취업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한다.
 
"좌절해야 한다면 저 혼자서 오롯이 좌절하고 싶습니다. 아버지가 매번 이렇게 제 삶에 끼어들어서 좌절까지 대신 막아주는 건 싫습니다." (7회)
 

이는 영우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오롯이 책임지고자 하는 자기 결정권을 선언한 말이었다.
 
9회 '어린이 해방군' 방구뽕씨의 사건에 등장했던 어린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방구뽕씨가 구치소에 가고 어린이들은 부모의 뜻에 따라 다시 학원으로 내몰린다. 하지만 아이들은 길에서 만난 영우에게 달려와 귓속말로라도 자신들의 마음을 알리려 한다.

10회 등장했던 지적 장애인 신혜영씨도 자신의 마음보다는 어머니에게 맞춰 살아가야 하는 처지를 답답해한다. 12회의 여성 노동자들은 주체적으로 자신들의 삶을 결정할 수 없게 만드는 환경에 분노한다. 이들의 모습 속에선 모두 스스로의 의지대로 삶을 꾸려가고 싶은 자기 결정권을 열망하는 마음이 강하게 느껴졌다.

스스로의 삶을 결정할 수 없게 하는 조건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12회에 등장한 여성 노동자들은 함께 목소리를 내고 손을 잡고 연대한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12회에 등장한 여성 노동자들은 함께 목소리를 내고 손을 잡고 연대한다. ENA
 
이처럼 자기 결정권은 누구나 추구하고자 하는 기본권리이며 장애가 있든 없든, 사회적 소수자이든 아니든 평등하게 존중받아야 하는 권리다. 하지만, 드라마가 보여주듯, 자기 결정권은 종종 침해받는다. 특히 사회적 소수자이거나 약자일수록 자기 결정권을 지켜가는 일은 어렵다. 
 
먼저, '보호' 혹은 '보살핌'이라는 명분은 종종 자기 결정권과 충돌한다. 형을 죽였다는 누명을 썼던 자폐인 동생(3회), 방구뽕씨와 신나는 한 때를 보냈던 어린이들(9회), 남자 친구와 연애하기를 원했던 지적 장애인 신혜영씨(10회)는 모두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장애가 있거나 어리다는 이유로 보호자에게 종종 자기결정권을 빼앗긴다. 자폐인 동생은 자신의 뜻을 마음대로 해석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감내해야 했고, 아이들은 자신들이 방구뽕씨와 지낸 즐거운 시간을 '범죄'라 부르는 어른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지적 장애인 신혜영씨가 아무리 '사랑'이라고 주장해도 법정에서 이 말은 받아 들여지지 않는다.
 
사회에 만연한 편견과 차별 역시 자기 결정권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큰 장벽이다. 영우의 부정 취업 논란이 있었던 8회 동료 변호사 수연(하윤경)은 수군거리는 회사 사람들 앞에서 "니 성적으로 아무 데도 못 가는 게 차별이고 부정이고 비리야"라고 외친다. 이는 '천재'인 영우마저 '자폐인'이라는 이유로 정당하게 경쟁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지켜갈 권리를 박탈당해 왔음을 지적한 발언이었다.
 
여성노동자들의 부당해고 사건을 다뤘던 12회 방영분은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가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가로막는 것을 잘 보여 주었다. 겉으로 보기엔 차별이 아닌 것 같은 규정도, 가부장 사회의 맥락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일보다는 가정을 선택하라는 강요를 당하곤 한다. "아내로서 남편의 앞길을 막아서야 되겠습니다. 내조는 이럴 때 하는 거죠"라는 인사담당자의 말은 여성들이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결정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삶의 주체가 되기를 포기하지 않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속 인물들은 결코 쉽게 자기결정권을 포기하지 않는다. 영우는 자신의 삶을 조정하려 드는 태수미 변호사(진경)에게 "아버지에게서 독립해 진짜 어른이 되고 싶어서 한바다를 떠나라고 했던 건데 기껏 아버지를 떠나 어머니의 회사로 갈 수는 없으니까요"라고 똑똑히 말한다(8회). 또한, 준호(강태오)와의 관계에서도 준호의 호의에 결코 끌려다니지 않는다. 준호에게 먼저 솔직하게 애정표현을 하고 다가가지만, 자신이 준호를 외롭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거리를 두기도 한다. 이는 영우가 삶에서 주체로 행동하는 방식이었다.
 
이처럼 삶에서 자기 결정권을 중요시해온 영우는 10회 지적 장애인 혜영을 찾아가 이렇게 조언한다.
 
"신혜영씨가 경험한 것이 사랑이었는지 성폭행이었는지 그 판단은 신혜영씨의 몫입니다. 그걸 어머니와 재판부가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지 마세요."
 
혜영은 영우의 말에 힘을 내 법정에서 자기 자신을 위한 증언을 한다. 비록, 혜영의 주장이 받아 들여지지는 않았지만, 이는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경험으로 남았을 것이다. 자신들의 즐거웠던 추억을 '범죄'라 명명당한 어린이들 역시 기회가 주어지자 법정에서 온 힘을 다해 방구뽕씨를 응원한다(9회). 이들 역시 자신의 경험에 스스로 이름 붙이는 소중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12회의 여성 노동자들은 한계를 알면서도 힘껏 목소리를 내고, 싸우며 연대한다. 결과는 패소였음에도 이들은 서로 손을 꼭 잡고 서로를 위로하며 연대를 더 단단히 만들어 간다. 이는 지금 당장은 나의 결정권을 발휘하는데 한계가 있을지라도 연대를 통해 조금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을 잘 보여주었다.
 
 영우와 준호는 사람에 의해 자기결정권을 박탈당한 고래들을 위해 고래해방운동 데이트를 한다.
영우와 준호는 사람에 의해 자기결정권을 박탈당한 고래들을 위해 고래해방운동 데이트를 한다. ENA
 
"우영우 변호사는 정명석 변호사와는 다르잖아요. 나랑은 완전히 다른 사람인데 내가 무슨 조언을 하겠어요. 난 그저 우영우 변호사의 결정이 궁금할 뿐이에요."
 

16회 정명석 변호사(강기영)는 조언을 구하러 온 영우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마도 이 말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전하는 최종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우리 모두는 다르고 저마다 다르게 자신이 삶을 결정하고 변호할 권리가 있다는 것 말이다.
 
과연 우리는 지금 자신의 삶을 얼마만큼 스스로 결정하며 살고 있는 걸까. <우영우>가 남긴 중요한 질문이 아닐까 싶다. 이 질문에 답하며 영우처럼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덧) 이제야 영우 마음 속 '고래'의 의미를 조금 알 듯도 하다. 동물은 자신의 권리를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인간에게 삶의 주체성을 심하게 훼손당하곤 한다. 아마도 고래는 이런 '자기 결정권'을 박탈당한 이들에 대한 상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영우가 그토록 '고래 해방'에 열정적이었던 건 아닐까 싶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이상한변호사우영우 박은빈 강태오 자기결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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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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