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헌트>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조심하시라. 시작부터 두 가지 놀라움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헌트> 관람을 위해 극장을 찾은 한국 관객들이 '아니, 이 정도였어?'라는 감탄을 내뱉게 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 과장이 아니다.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다.
우선 <오징어게임>의 배우 이정재의 첫 연출작이 맞나 하는 연출에 대한 감탄. 대통령 암살을 시도하려는 테러범들을 잡기 위해 안기부 요원들이 CIA 요원들과 동분서주한다. 같은 시기 <비상선언>을 선보인 이모개 촬영감독의 흔들리는 카메라는 강렬하고 압도적이다. 일가를 이룬 조영욱 음악감독의 장쾌한 음악이 청각에 호소한다. 캐릭터와 시대 배경 소개부터 장면 설계까지 스파이 스릴러 장르의 서두를 여는 시작으로서 어디 하나 손색이 없다.
첫 장면부터 '살인마 전두환' 화형식 시위가 눈길을 잡아끈다. <헌트>의 시대 배경은 1983년 전두환 군사 독재 시절이다. '남산' 안기부가 음으로 양으로 정치 사회를 주무르며 숱한 고문 피해자를 양산했던 '그때 그 시절'을 데뷔작으로 끌고 들어온 이정재 감독은 '독재자 전두환'이란 쟁점을 비켜갈 생각이 없어 보인다.
도리어 그런 시대적 쟁점이 극을 이끄는 동력이 되어준다. 오프닝 자체가 데뷔 감독의 어떤 결기를 뿜어낸다. 안기부(현 국정원) 미화라거나 편향된 정치영화라는 오해도 간단히 뛰어 넘어 버린다.
안심하시라. <헌트>는 스파이 장르의 ABC를 충실하게 따른다. 시대물이자 인상적인 액션 장면이 적절히 배치된 상업영화다. 제작비도 200억 넘게 쏟아 부었다. <태양은 없다>로 만난 20년 넘게 우정을 키워왔다는 영화적 동지이자 '청담부부' 이정재, 정우성의 두 번째 만남만으로도 눈이 즐거울 영화다.
이 둘은 물론 조연 배우들에게조차 소위 연기구멍은 찾아 볼 수 없다. 영화 <아수라> 팬들이 '아수라 유니버스'라 부를 만큼, 친숙한 카메오들도 대거 등장한다. 깜짝 등장하는 황정민은 요즘말로 스크린을 씹어 먹을 만한 존재감을 자랑한다. 인물들의 적절한 배치와 안배야말로 스파이 스릴러 장르의 재미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그때 그 사람들'을 불러온 <헌트>는 곳곳에 박정희 정권에 이어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독재, 남북 분단과 체제 경쟁으로 얼룩진 우리 현대사가 남긴 그림자들을 기어코 소환하며 어떤 비감을 전달하려 부단히 애를 쓴다. 신인감독 이정재가 이 모든 소재를 능수능란하게 요리하며 각본까지 도맡았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기대하시라. 2022년 텐트폴 영화 4편 중 막차를 탄 <헌트>는 장르적 완결성이나 감독의 야심 면에선 앞서 개봉한 세 작품과 비교해 데뷔작이라 믿겨지지 않을 정도다. 평단도 호평 일색이다. 이제 이정재 감독의 야심이 안 그래도 전 세계적으로 까다롭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모자라 최근 더 까다로워졌다는 관객들의 마음을 흔들 수 있을지 여부만 남았다.
쉽지 않은 주제를 뒷받침하는 강렬한 형식
'내부 첩자 동림은 누구인가'. 안기부 해외팀장 박평호(이정재)와 국내팀장 김정도(정우성)의 대립은 이렇게 단순히 한 줄 요약된다. '워싱턴에서의 대통령 암살 시도'란 첫 번째 고개를 넘은 <헌트>는 시퀀스 통째를 단편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정도로 매력적이고 꽉 짜인 초반부 일본 장면을 얼개로 스파이 물의 본론을 꺼내든다.
복잡할 것 없다. 첩자가 누구인가를 향해 달리는 스파이 장르는 인물도, 사건도 복잡 할수록 머리만 아파진다. <헌트>도 그런 공식에 치중한다. '둘 중 누가 동림인가'. 박평호를 중심에 놓고 김정도를 양립시킨다. 박평호가 김정도 주변을 캐고, 김정도가 박평호를 압박해 들어간다. 주변 인물과 사건들을 온통 첩자를 잡기 위한 의심과 단서로 흩뿌리고 주워 담으며 알뜰하게 활용한다.
일본에서 망명을 신청한 북한 고위 관리를 포섭하려던 작전이 실패로 돌아간다. 동림이 흘린 정보 때문이다. 박평호가 이끄는 해외 팀원 중 목숨을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양보성(정만식)이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입을 열면 해결될 것 같았지만, 그마저도 간첩의 저격으로 물거품이 된다. 맞다. 영화 전반에 드리워진 북의 존재감이 여기서도 확인된다.
때는 1983년. 간첩조작 사건이 횡행하고 군인들이 권력의 최정점에 올라선 시절이었다. 상대를 잡으면 내가 잡힌다. 박정희 암살 사건 직후 고문을 당하는 자와 고문하는 자로 만났던 박평호와 김정도의 딜레마다.
짐작 그대로, 동림의 정체는 쉬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자 박평호는 군인 출신인 김정도가 연루된 것으로 보이는 회사 임원을 족치기 시작한다. 김정도는 박평호가 돌보던 재일조선인 출신 대학생 조유정(고윤정)을 잡아다 간첩으로 몰아간다. 그렇다. 이것은 나쁜 놈과 나쁜 놈의 싸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