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환혼>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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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혼> 속의 장면들은 한참 과장된 것이기는 하지만, 옛날 도사들의 술법이 완전히 허구였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음력으로 세조 3년 5월 26일자(양력 1457년 6월 17일자) <세조실록>이나 예종 1년 9월 18일자(1469년 10월 22일자) <예종실록>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유학자들이 집권한 이후로 고조선이나 신선교는 물론이고 도사들에 관한 기록까지 대대적으로 수거되는 일들이 있었다.
그 같은 일종의 분서갱유로 인해 고대 술사들이 갖고 있던 지식들이 폭력적 방법에 의해 사회와 단절됐다. 이 때문에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기술을 갖고 있었는지를 후세 사람들이 알 수 없게 됐다. 그들의 진면모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거의 없는 지금 상황에서는 그들의 행적을 두고 허구다 진짜다 단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고려 강감찬이나 조선 서경덕에 관한 홍만종의 <해동이적>의 기록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무사가 술사를 겸하는 것은 옛날 사람들한테는 그렇게 낯설지 않은 일이었다. 광해군의 최측근인 어우당 유몽인이 기록한 <어우야담>에 따르면, 임진왜란 의병장 곽재우도 그런 면모를 갖고 있었다.
<어우야담>은 곽재우의 어린 시절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문무를 치우고 신선술을 추구하여 산에 들어가 곡식을 물리치고 소나무를 채취하여 먹었다"고 말한다. 현대 과학이 이해할 수 없는 생존 방식을 곽재우가 알고 있었을 가능성을 생각하게 된다.
이처럼 무사들의 술법에 관한 이야기도 적지 않게 전해지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기본적인 무사의 자질로는 무예와 더불이 체력이 당연하게 손꼽혔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혹은 선천적 기질이 빨리 발현됐건 늦게 발현됐건 간에, 옛 사람들이 무사의 기본 자질로 가장 중요시한 것은 당연히 그런 것들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여력(膂力)이란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무인의 특성을 설명하는 부분에 많이 나오는 글자다. 일례로, 압록강 지대에서 여진족을 방어하던 권복(權復) 장군에 관한 세종 17년 6월 5일자(1435년 6월 30일자) <세종실록>은 "복(復)은 활을 잘 쏘고 또 여력이 있었다"고 말한다.
등골벼를 뜻하는 려(膂)가 들어간 이 글자는 요즘 말로 바꾸면 체력이다. 등뼈에서 힘이 나온다는 관념에 입각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여력이 있느냐 없느냐는 무인에게 요구되는 기본적인 자질이었다.
체력과 무예에 더해 정신적 기질도 당연히 요구됐다. 홍양호의 <해동명장전>에 소개된 무인들의 특성을 정리한 나영일 서울대 교수의 논문 '조선시대 무인들의 몸 인식'(2006년 한국스포츠인류학회 학술대회 발표문)에 따르면, 옛 사람들은 무인들의 그런 기질에도 주목했다.
<해동명장전>은 권율 장군이 전투 현장에서 칼을 뽑아들고 고함을 치며 앞장서서 싸움을 독려했던 점을 언급했다. 또 김시민 장군이 직접 물통을 들고 다니며 목마른 병사들에게 물을 마시게 했다는 이야기도 소개한다. 체력과 무예가 좋아야 할 뿐 아니라 용감함이나 인간미 같은 것도 갖춰야 진정한 무인이라 할 수 있다는 옛 사람들의 관념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체구에 대해서는 비교적 열린 시각을 갖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반드시 키가 크고 우람해야 무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위 책에 소개된 류림 장군은 체구가 작다는 평가를 받았다. 임진왜란 의병장인 김덕령도 마찬가지였다. 또 정봉수 장군은 평소에 병약했다고 한다. 타고난 신체적 불리함을 무예나 무기의 힘으로 극복한 사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옛 사람들이 눈여겨본 무인의 또 다른 자질 중 하나로 '비상한 기운'을 들 수 있다. 위 책에 따르면, 이성계의 의형제인 이지란은 두 눈이 붉고 눈동자가 샛별처럼 빛난다는 인상을 풍겼다. 황희 정승의 5대손인 황진 장군은 수염이 아름답고 위풍당당한 느낌을 풍겼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전라좌도(전라동부) 바로 옆인 경상우도(경상서부)에 소속돼 전공을 세운 정기룡이라는 장군이 있었다. 이순신이 역임했던 삼도수군통제사로도 훗날 물려받은 무인이다. <해동명장전>은 그가 어려서부터 패기가 있었으며 위엄으로 아이들을 굴복시켰다고 말한다.
무인을 평가하는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