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으로 휴가철입니다. 무더위까지 기승인데요. 산으로 바다로 떠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코로나19가 재유행기에 접어들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에 계획마저 쉽지 않은 요즘입니다. 이럴 때, 무더위와 여행에 대한 갈증을 동시에 해소시켜 줄 '나만의 휴양지'가 있다면 어떨까요? 직접 가지 못하더라도 잠시나마 추억 여행에 젖다 보면 답답함도, 무더위도 잠시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요? 영화 속 추억이 담긴 '나만의 휴양지'를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맘마미아

맘마미아 ⓒ 유니버설픽쳐스

 
여행은 좋은 것입니다. 지칠 때도 있고 실망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곳에는 반드시 무언가가 있습니다. 자, 당신도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든 떠나보세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이다. 3년쯤 됐을까? 하루키의 책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를 읽었다. 삶이, 관계가 내 생각대로 풀리지 않아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던 때였다. 보스턴으로, 라오스로, 뉴욕, 아이슬란드로 나 대신 마구 세상을 휘젓고 다니는 하루키의 글에 나를 실어 보냈다. 아홉 군데 정도의 여행지, 그 중에서도 오래도록 내 기억에 남는 장소가 있다. 바로 '그리스의 미노코스와 스페체스 섬'이었다. 

하루키는 마흔을 삼년 앞둔 1986년 긴 여행을 하고 싶어졌다고 한다. 당시 유럽 여행기기를 엮어 <먼 북소리>란 책으로 엮었다.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는 이를테면 그 후일담이다. 마흔 무렵의 젊은 작가가 80년대의 그다지 문명화되지 않은 그리스의 섬에 머물렀던 이야기이다. 

비수기와 악천 후였지만, 저렴한 생활비가 젊은 소설가 부부의 유럽 장기 여행을 가능케 했다. 덕분에 귀찮은 일상에서 벗어난 작가는 '이 때가 아니면 절대 쓸 수 없을' 소설, <노르웨이 숲>을 시작할 수 있었다. 떠남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충전. 매년 휴가지를 찾아 떠나며 우리도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내 삶의 에너지가 충전되기를 바라는 건 아닐까. 

에메랄드 빛 지중해 
 
 맘마미아

맘마미아 ⓒ 유니버설 픽쳐스

     

하루키가 떠난 그리스의 섬들은 어땠을까? 그 섬들의 풍광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영화가 있다. 바로 아바의 노래 23곡으로 만들어진 영화 <맘마미아>다.

주인공 소피(아만다 사이프리드 분)는 자신의 결혼식에 친아빠 후보 3명을 초대한다. 그 아빠들이 내린 선착장, 그곳은 소피와 약혼자가 함께 서핑을 즐기는 곳이기도 하다.

영화 속 '칼로카이 섬'은 실재하지 않는다. 영화는 스코펠로스 섬에서 촬영되었다. 하지만 영화가 흥행한 후 스코펠로스 섬은 '칼로카이섬'으로 더 많이 불리워지게 되었다고 한다. 영화 속 엄마 도나(메릴 스트립 분)와 딸은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섬 곳곳을 다니며 아바의 노래를 불렀다. 

그리스의 섬을 둘러싼 바다는 지중해(mediterraneus), 라틴어로 '지구의 중심'이라는 뜻이다. 지중해의 바다를 흔히 '에메랄드 빛' 바다라고 칭한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다. 그 바닷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도록 맑은 에메랄드 빛은 사실 상대적으로 수초가 적어 그런 색을 띤다고 한다.  

끝없는 바다, 한없는 자유
 
 그랑블루

그랑블루 ⓒ 조이앤컨텐츠그룹

 

이 에메랄드 빛 지중해를 만끽하다 못해, 그 푸른 물에 잠식당하는 듯한 영화가 한 편 있다. 풍광을 넘어, 푸른 빛 바다가 주인공인 듯한 영화, 바로 <그랑블루>이다. 

<레옹>, <제 5원소>를 만든 뤽 배송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전설적인 프리다이버 자크 마욜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극본에도 참여했다. 

그리스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자크(장 마르크 바르 분)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바다에서 잃는다. 하지만 바다, 그곳에서 만난 돌고래는 여전히 그의 유일한 안식처이다. 바다를 터전으로 자란 자크, 그는 장비없이 잠수하는 프리다이버가 된다. 
 
 그랑블루

그랑블루 ⓒ 조이앤컨텐츠그룹

 
영화는 잠수통도 없이 한없이 물 속으로 향하는 프리다이버들의 도전을 그려낸다. 유일한 친구였던 엔조(장 르노 분)와의 우정이자, 대결이 영화 속 주된 갈등이자 과제이다. 마치 마라톤의 결승점을 향해 달리듯 푸른 바다를 향해 끝없이 끝없이 자신을 던지는 주인공, 그리고 그의 친구 엔조, 그 끝에 기다리는 건 '인간'이라는 유한한 존재를 넘어선 그 무엇이다. 

열린 결말인 듯보이지만 프리다이버로서의 열망의 끝을 분명하게 보여준 영화, 그 깊은 심연을 향해 내달리는 인간의 모습이 바다보다 더욱 서늘한 여운으로 남는다. 

<그랑블루> 속 바다는 제목에서 보여지듯이 아름다운 에메랄드 빛 바다를 넘어, 마치 그 끝을 알 수 없는 우주처럼 깊고 광활한 무한대의 '자유', 그 자체이다. 
 
'멀리서 들려오는 북소리에 이끌려 / 나는 긴 여행을 떠났다. 
낡은 외투를 입고,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

앞서 그리스 여행담을 담은 하루키의 책 <먼 북소리>, 그 제목은 터키의 옛 노래에서 유래한다. 정주의 삶을 사는 인간에겐 그럼에도 여전히 그 자신 속에 잠재되어 있는 '노마드'로서의 원시적 본능이 불쑥불쑥 솟아오른다. 그 '노마드'의 지향, 그 끝에 있는 건 그 무엇도 거스르지 않는 '자유'다. 존재를 얽어매는 삶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그 막무가내의 욕망이 <그랑블루>에서는 끝없는 바다라는 공간으로 자신을 던지게 만드는 게 아닐까.  

1993년에 개봉되었던 <그랑블루>는 유럽 영화로는 드물게 흥행에 성공했고, 여전히 그 포스터만 보고도 영화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로 오래도록 회자되었다. 제목처럼 푸르다 못해 검푸르게 짙은 바다의 매력 때문이었을까? <그랑블루> 속 맹목적인 '자유'를 향한 주인공들의 질주가 보통 사람들에게 자유를 향한 열망의 대리만족이 되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7월에 들어서니 틀에 박힌 루틴으로 반복되 온 삶이 들썩들썩한다. 너도 나도 떠나려 한다. 그런데 어쩐지 떠들썩하니 바다로 산으로 달려갔다 와도 내 마음의 고삐는 쉬이 잡혀지지 않는다.

그런 때<그랑블루>를 한번 보면 어떨까? 산도, 바다도 달래주지 않은 내 안의 '자유를 향한' 열망, 그 실체를 찾아보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https://5252-jh.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그랑 블루 맘마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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