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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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를 하는 박상민 부장 친구 덕에 오랜만에 '해방 클럽'이 뭉쳤다. '나의 해방일지'를 출간할 수도 있는 상황에 저마다 자신의 동정을 전한다. 돌고 돌아온 질문, 그래서 '해방은?'이다. 쓰던 걸 그만두자 '해방'에 매진하던 실천도 동시에 멈췄다는 자조적인 평가, 겨우 내가 누군지 알 듯하다는 아쉬움에 염미정(김지원 분)이 말한다.
"그게 다가 아닐까요? 자기 자신을 아는 거."
극 초반 세상의 그림자같던 염미정은 이제 마지막 회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 '확고한' 존재가 되었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재혼하셨으며, 회사에서는 그녀의 이름을 도용해 바람을 피우던 커플 때문에 외려 그녀가 쫓겨났다. 이제 막 디자이너로서 실력을 인정받아 정직원이 되려던 참이었다. 그녀의 재능과는 상관없는 직무를 맡으며 사는 그녀, 그런데 이제 더는 그녀의 눈빛이 흔들리지 않는다.
구씨와 재회한 그녀가 담담하게 그녀의 '개새끼들'에 대해 말한다. 그녀에게 돈을 빌리고 여전히 갚지 않는 전 애인, 그런데 그녀는 외려 그가 돈을 갚을까봐 걱정이었단다. '개새끼'라 부르며 자신의 모든 원망을 한껏 퍼부을 수 있는 존재, 구씨가 전화한 날도 그 '개새끼'의 결혼식에 가서 그가 얼마나 형편없는 존재인지 알려주려 했다는 미정, 그런데 미정은 말한다. 그 '개새끼'가 없어지면 그를 핑계대던 자신의 비겁함이 드러날까봐 두려웠다고.
해방일지를 처음 쓰던 시절, 해방 클럽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해방'되고픈 그 무엇이 있었다. 어디 해방클럽만인가. 산포로 네다섯 시간을 걸려 출퇴근하던 염씨네 삼남매 모두 '해방'이 필요한 존재들이었다. 그들이 매달린 삶이 마치 만원 지하철처럼 그들을 시달리게 했다. 머리를 자르고, 차를 사고 싶어하며, 애인에게 돈까지 뜯기며 방황했다.
<뜻밖의 여정> 속 한 장면이다. 마흔이 된 피디가 윤여정 배우에게 말한다. 마흔쯤 되면 인생이 좀 가닥이 잡힐 줄 알았다고. 세상을 사는 자신감을 좀 얻게 될 줄 알았다고. 그러자 '나도 육십은 처음이라'는 윤여정 배우의 유명한 발언이 다시 등장한다. 76세가 된 윤여정 배우가 여전히 말한다. 이 나이가 돼도 여전히 고민이 많다고. 그런데 사람인데,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인데 늘 새로 닥쳐오는 인생이라는 파도에 어떻게 고민이 없을 수 있겠냐고. 당연한 거 아니냐고. 마흔이 돼도, 육십이 돼도, 그리고 칠십을 한참 넘겨도 사는 건 늘 '고민'이라고.
윤여정 배우의 말씀처럼, 인생은 늘 녹록지 않다. <나의 해방일지> 초반 염씨네 삼남매들은 그런 인생의 답을 '차'를 사는 것처럼 얻으려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차가 생기면 인생이 달라질 거라고. 오죽하면 창희(이민기 분)는 구씨의 외제 차를 다 얻어타고 기분을 내려 했을까.
이 시대의 사랑 방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