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영화 <헤어질 결심>의 박찬욱 감독 및 배우 박해일, 탕웨이가 레드카펫을 밟고 있다.
CJ ENM
6년 만에 칸영화제를 찾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가 첫공개 된 23일 오후(현지 시각), 칸영화제 관객들은 돌아온 명장에 어김없이 박수를 보냈다. 영화 <헤어질 결심> 상영 후 박찬욱 감독은 "이렇게 지루하고 올드한 영화를 봐주셔서 감사하다"라는 말을 남겼지만 관객들은 저마다 삼삼오오 모여서 영화에 대한 감상을 나누는 모습이었다.
<헤어질 결심>은 남편의 의 변사사건에 연루된 서래(탕웨이)라는 여성과 이를 수사하게 된 형사 해준(박해일) 사이에서 묘한 긴장과 관계의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사망 사건에 형사라는 키워드만으로도 박찬욱 감독 특유의 미장센과 과감한 묘사를 떠올릴 법했다.
막상 공개된 영화는 <박쥐>나 <올드보이> 등 그의 전작에 비할 때 매우 절제된 이야기 구성과 묘사가 돋보였다. 끔찍한 사건 묘사 대신 빛과 색감, 캐릭터의 정서를 활용한 세련된 컷 편집으로 해준과 서래 사이에 피어오르는 묘한 긴장감과 감정을 포착했다. 조영욱 음악감독 특유의 서정적 느낌이 물씬 담긴 음악이 귀를 홀렸다.
영화의 출발점은 평소 박찬욱 감독이 고대하던 추리소설이었다. 영화 공개 전날인 22일(현지 시각) 국내 기자단과 만난 자리에서 그는 스웨덴 경찰 마르크 베크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한 소설 작품을 하나 언급했다. 특히나 "지난 작품들은 다 잊고 봐주셔도 좋을 것 같다"라고 말할 정도로 이번 작품에 공력을 크게 쏟은 것으로 보인다.
그의 말대로 영화는 특정 사건을 도구로 삼아 강력하고, 다소 폭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장면을 배치하는 대신 빛과 음악, 그리고 배우의 연기를 십분 활용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 박찬욱 감독 초기작을 좋아하는 팬들이라면 이런 시도가 반가울 것이다. 남편을 살해한 것으로 의심받는 서래와 경찰 직책에 위기감을 느낄 정도로 서래에게 마음을 빼앗긴 해준의 모습에서 그간 잊고 있던 멜로 감성이 솟아날지도 모를 일이다.
멜로라지만 이 지점에서 박찬욱 감독 특유의 죄의식에 대한 탐구가 돋보인다. 자신의 작품 세계를 지배하는 주요 키워드를 죄의식이라고 인정할 정도로 그의 작품 속 인물은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대한 이른바 반성과 죄책감에 붙잡혀 있기 일쑤였고, 그로 인해 특정한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헤어질 결심>에선 남편 살해범으로 의심받는 서래나 스스로 품위 있고 성실하다고 생각하는 해준 또한 알고 보면 서로를 기만하거나 속이는 흠결을 남긴다. 그 기만이 결과적으로 상대에 대한 배려내지는 애정으로 승화되는 과정이 흥미롭게 전개된다. 특히나 서래와 해준이 자신도 모르게 서로에 빠져드는 과정에서 박찬욱 감독 특유의 장기가 발휘된다. 첫눈에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는 순간의 '감정적 씨앗'을 아주 감각적으로 심어놨다.
박찬욱 감독 또한 기자단 미팅에서 "내 영화의 공통된 주제는 로맨스"라고 말했듯 사랑의 감정과 관련해 박 감독의 다른 작품을 비교하며 보아도 좋은 감상 포인트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