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대가 조국> 포스터

영화 <그대가 조국> 포스터 ⓒ (주)엣나인필름

 
영화계에 정치‧시사 다큐멘터리 장르가 활발히 개봉했던 시점은 역시나 MB 정부 이후였다. 시대가 그랬다. 2009년 이른바 < PD 수첩 > 사태 이후, 시사정치 및 탐사보도에 나섰던 방송사 PD들은 외압과 자기 검열에 시달렸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담당하던 탐사보도가 설 영역 자체가 협소해졌다. 아니, 공간 전체가 뒤흔들렸다. 그 이후 소위 독립 PD들이 독립 장편 다큐멘터리를 통해 발언에 나서는 일이 빈번해졌다. 주제와 형식, 시대의 요구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물론, MB 정부 이전부터 영화 운동 차원에서 날을 세우며 시대를 기록해 온 기존 독립영화 진영도 가만있진 않았다.

그리하여, 상반되지만 기억할 만한 두 가지 장면. 2014년 10월, <다이빙벨> 사태가 벌써 8년 전이다. 8주기를 맞은 세월호 참사와 동일한 시간이 흘렀고, 정치권력이 영화 한 편을 둘러싸고 영화계와 맞붙은 전무후무한 사례로 기록될 이 사건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의 신호탄과도 같았다.

그로부터 3년이 흐른 2017년 5월, 조기 대선 직후 개봉한 <노무현입니다>는 185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정치‧시사 다큐 최고의 흥행 성적이었다. 같은 소재로 한 해 앞서 개봉한 <무현:두 도시 이야기>가 촛불정국이란 시국에서 상영관을 열지 못해 고전한 것과는 확연히 다른 수치였다.

기존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 흥행작은 <워낭소리>(293만)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480만)였다. 정치적인 소재와는 거리가 멀었다. <다이빙벨>과 소재도, 배급 조건도, 정치적 환경도 달랐지만 확실히 이례적인 장면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영화는 정치다. 모든 영화는 동시대성을 반영하는 창작의 산물이다. 다큐멘터리 장르야 두 말할 나위 없을 터. 그리하여 '윤석열 정부' 이후 선보이는 첫 번째 정치‧시사 다큐로 기록될 작품이 개봉 채비에 들어갔다는 소식만으로 영화계 안팎의 주목을 받고 있다. 다음 달 25일 개봉을 확정한 <그대가 조국>이다.

눈에 띄는 크라우드 펀딩 상황, 전주국제영화제 화제작 입증 

'후원액 3억 8천만 원, 목표액 달성률 772%'(28일 오후 3시 현재).

지난 25일 오전 10시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한 <그대가 조국>의 모금 현황이다. 애초 목표액은 5천만 원. 이후 "3시간 만에 목표액 넘겨", "펀딩 하루 만에 목표액 달성"과 같은 제목의 기사가 쏟아질 만큼 반향은 폭발적이었다.

펀딩 개시 사흘 만에 목표액을 훌쩍 뛰어넘어 한국 다큐 영화 크라운드 펀딩 사상 유례없는 상황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28일 현재까지 후원자만 총 7840명. 모금 마감은 다음 달 15일로, 아직 17일이나 남았음을 감안하면 <그대가 조국>을 향한 관심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어 보인다.
 
"시작 당시만 해도 벅차게 생각했던 5,000명 후원자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쉽지 않은 상황과 부족한 자원을 뚫고 어떻게 더 나은 과정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의 성원과 응원에 힘입어 어렵게만 생각했던 시사회를 위한 후원을 1만 명도, 10만 명도 꿈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대가 조국> 제작진이 모금 사이트에 남긴 전언이다. 제작진은 이러한 관심을 기반으로 개봉 전 전국 10만 시사회를 진행한다는 목표다. 애초 제작진은 10만 시사를 포함해 모금 액을 시사회 대관비 3000만 원과 포토북 500만 원, DVD 제작비용 1500만 원 등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그대가 조국>은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다. 특별상영 섹션에 초청, 오는 5월 1일 전주돔에서 프리미어로 1차례 상영된다. 전주국제영화제 측은 "전주국제영화제 화제작들은 매진 비율이 높다"며 "<그대가 조국>도 일반 예매는 일찌감치 매진됐다"고 설명했다.

그간 전주국제영화제는 <천안함 프로젝트> <자백> <노무현입니다> 등 시대를 성찰하고 기록해 온 여러 다큐 화제작들의 발굴하고 응원해 온 바 있다. 일찌감치 '2022년 전주의 선택'으로 낙점된 <그대가 조국>은 상영 기자회견 전까지 초청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는 후문.

'조국 전 장관이 지명된 2019년 8월 9일부터 장관직을 사퇴한 10월 14일까지 67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다룬 <그대가 조국>은 독립영화 진영에서 관심을 받은 소재일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12월 <뉴스타파>가 공개한 1시간짜리 특집 다큐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 잔혹사>가 유튜브 조회수만 무려 100만을 돌파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사회를 뒤흔든 이른바 '조국 전 장관 사태'를 집중 조명한 장편 다큐의 출현이 오히려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고 할까.

이승준 감독이 연출을 맡은 것도 눈길을 끈다. 단편 <부재의 기억>으로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단편 다큐멘터리상 후보에 노미네이트 됐고, 앞서 제9회 뉴욕 다큐멘터리 영화제 단편 부문 대상을 수상한 이승준 감독은 지난해 10월 개봉한 <그림자 꽃>에 이어 7개월 만에 신작을 선보이게 됐다.

<그대가 조국>이 맞은 호재

지난해 5월 출간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회고록 <조국의 시간>은 단기간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고 2주 만에 20만 부 판매를 돌파하며 기염을 토했다. '성찰적 다큐멘터리'를 표방하고 조국 전 장관이 직접 카메라 앞에 선 <그대가 조국>이 지난해 서점가에 이어 올봄 극장가에서도 회고록에 버금가는 반향을 일으킬지 주목된다.

극장가가 최근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해방됐다는 사실도 호재다. 지난해 10월 일시적 '위드 코로나' 당시, 이승준 감독의 <그림자 꽃>을 비롯해 < 1984 최동원 > <왕십리 김종분> 등 평단의 호평을 받은 수작 다큐들이 줄줄이 개봉한 바 있다.

하지만 장기간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에 적응한 관객들은 '위드 코로나' 상황에서도 쉬이 극장으로 발걸음을 옮기지 않았고, 세 작품 중 최고 흥행은 < 1984 최동원 >이 동원한 1만1천 관객에 그쳤다.

반면 <그대가 조국>이 개봉 후 맞이할 환경은 확연히 달라 보인다. 먼저, 5월 4일 전 세계 동시 개봉하는 '마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28일 오전 10시 기준 사전 예매만 34만을 돌파하며 극장 관람을 기피했던 관객들의 심리적 거리감을 깨뜨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승준 감독의 전작이 고전했던 지난해 11월과 팝콘까지 먹을 수 있는 작금의 멀티플렉스 환경 자체가 비교 불가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아울러 <그대가 조국>은 '성찰적 다큐'를 내세웠다. 앞서 언급한 기존의 정치‧시사 다큐와 차별화에 성공하는 동시에 '검찰 정상화' 및 '윤석열 시대'라는 2022년 5월의 동시대성과 어떻게 조응할지도 관심사다. 이렇게 전국 10만 시사를 목표로 눈에 띄는 크라우드 펀딩 열기를 자랑하고 있는 <그대가 조국>이 여러 호재 속에 <노무현입니다>의 성공적인 전철을 밟을 수 있을지 지켜보도록 하자.  
그대가조국 전주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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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현 영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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