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1년 5월, 공군 15 전투비행단에서 근무하던 24살 이예람 중사가 상관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졌다. 많은 이들이 이 중사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군의 안이한 사건 대응에 대해 공분했다. 딸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달라는 유가족의 국민청원에 수십만 명이 넘게 동의했고, 논란이 커지자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대대적인 수사를 지시했다.
 
하지만 안타까운 사건 이후 1년이 지나도록 유족은 아직도 이 중사의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었다. 수사 결과가 고인의 억울함을 풀어주기엔 너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대체 무엇이 고인을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아넣었고, 왜 유족은 수사에 실망과 분노를 금하지 못할까.
 
지속적인 2차가해에 시달렸던 이 중사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한 장면.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한 장면. ⓒ SBS

 
3월 26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81일간의 지옥-공군 이예람 중사 사망사건'을 조명했다. 2021년 3월 2일 이예람 중사는 회식에 참석한 이후 부대로 복귀하던 차 안에서 선임인 장 중사에게 강제 성추행을 당했다. 이 중사는 차에서 내린 직후 부대 직속 선임에서 피해 사실을 알렸고 다음날에는 부대 내 공식 보고 체계대로 성추행 피해 신고하며 침착하게 대처했다.
 
이후로 일상을 조금식 되찾아가는 듯 보였던 이 중사는 81일이 흐른 5월 21일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 제작진은 이 중사가 남긴 사진, 영상, 글, 수사기록을 입수했다. 이 중사가 남긴 휴대전화속에는 '장 중사는 원인제공을 하였고 군조직과 주변의 시선은 저에게 압박감과 죄책감을 주었다. 모두가 절 죽였다'라는 내용의 메모가 발견됐다.
 
놀랍게도 이 중사는 사건 직후 지속적인 2차가해에 시달리고 있었다. 장 중사는 사건 당일날 여군 숙소 앞까지 찾아가 이 중사를 회유하려 했다. 상관인 노 상사와 노 준위 역시 이 중사를 회유하려 했다가 가족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서야 사건발생 24시간이 지난 뒤 신고를 하게 된다. 또한 신고 이후에는 가해자인 장 중사와 그 가족으로부터 협박과 회유성 메시지를 반복해서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한 장면.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한 장면. ⓒ SBS

 
전문가인 김태경 서원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강간에 준하는 정도의 심리적 충격을 받기에 충분한 사안"이라고 분석하며 "이 조직이 이 일을 덮고자 한다. 그래서 문제를 제기한 나를 어떤 식으로든 제거 또는 억압하려 한다는 생각이 드는 거고. 완전히 모르는 사람보다 아는 사람이 가해자일 때 피해자들이 겪는 주관적 고통이 훨씬 강도가 높다고 보고되고 있다"고 밝혔다.
 
2021년 3월 사건 발생이후 이 중사가 3일 만에 피해진술을 한 데 비하여, 가해자인 장중사는 불구속 수사가 결정된 데 이어 무려 2주가 지나서야 첫 조사를 받았다. 장중사의 근무지와 이 중사가 머물던 여군 숙소는 불과 250m 거리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리되어 보호를 받지도 못했다. 유족들은 부대에서 이 중사를 잘 돌봐주겠다며 영내에 머물 것을 권했다고 밝혔다.
 
군사경찰은 수사 의지가 없었다. 피해자에게는 거짓말탐지기 조사까지 검토한 반면, 중요한 증거가 될 사건당일 차량 블랙박스는 확보하지도 않아서 나중에 이 중사가 직접 제출한 것으로 밝혀졌다. 노 상사는 이 중사의 남자친구까지 만나 선처를 부탁하여 회유를 시도했다. 군을 동경해왔던 이 중사로서는 잘못을 저지른 가해자를 용서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마치 자신이 가해자처럼 취급받는 상황에 절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두달의 시간이 흐르고 70여 일 만에 전속 명령이 내려지며 이 중사는 부모님과 가까운 지역에 있는 15전투비행단으로 소속을 옮긴다. 하지만 불과 일주일 뒤 이 중사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이 중사가 세상을 떠난 날은 남자친구와 혼인신고를 한 날이기도 했다.
 
이 중사의 마지막 일주일

제작진은 전문가들과 함께한 심리부검을 통하여 당시 이 중사의 상태를 분석했다. 서종한 영남대 심리학과 교수는 "성폭력 피해를 기점으로 모든 자살 위험 요인들이 나타난다. 이 과정에서 적극적인 조치, 개입, 치료가 있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있다. 조금씩 진척이 되다가 굉장히 악화가 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서 교수는 특히 이 중사의 마지막 일주일, 새로운 부대로 근무지를 옮긴 이후 이 중사를 심리적으로 벼랑 끝에 몰아넣는 어떤 계기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15비행단 간부와 병사들은 이 중사가 전입올 때부터 성추행 피해자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중사를 노골적으로 냉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태경 교수는 "굉장히 절망적이었을 거다. 같은 조직이지만 부대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노골적으로 2차 가해를 한 것이다. 모르라고 한 행동이 아니라 일부러 압박을 주려고 한 행동"이라고 분석했다.
 
범죄 피해자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보호 대신 오히려 조직의 걸림돌 취급을 받게 되었다는 것은 이 중사를 절망으로 밀어넣기 충분했다. 서종한 교수는 "나는 이런 피해를 당했는데 군은 오히려 시간을 끌면서 나를 죄인으로 주홍글씨를 새겨서 나를 단절시키고 고립시킨다고 느꼈을 때의 좌절감, 상실감이란 곧 삶의 의미를 잃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한 장면.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한 장면. ⓒ SBS

 
공군은 이 중사 사망 직후부터 사건 축소와 은폐에 나섰다. 공군은 국방부에 보내는 보고문건에서 군사경찰단장이 이 중사가 '성추행 피해자'라는 내용을 삭제하라고 지시했다는 내부 폭로가 나왔다.

MC 김상중은 가해자 장 중사가 재판부에 낸 탄원서들을 공개했다. 장 중사의 평소 행적을 칭찬하고 그를 옹호하는 내용들로 채워져있다. 피고인이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내는 것은 법적인 권리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피해자인 이 중사는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고 끝없는 고통을 느낄 동안, 가해자인 장 중사는 자신의 변호를 위하여 동료 군인들을 찾아다니며 도움을 요청했고 그 과정에서 2차 가해까지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장 중사는 이 중사의 사망 약 한달 후인 2021년 6월에야 구속됐다. 국방부 감사결과도 공군의 수사가 합리적인 이유없이 지체되었다고 지적됐다. 군을 믿고 사건이 엄정하게 처리될 것으로 기대했던 이 중사와 가족들은 하염없는 기다림에 지옥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군법무관 출신인 김정민 변호사는 "구속 사건은 처리 기한이 정해져있지만 불구속 사건은 그런 게 없다. 변호인 입장에서는 시간을 끌어서 '사건을 식힌다'고 하는데, 합의까지 시켜서 불기소나 기소유예, 선고유예를 끌어내면 군인 신분은 유지하니까. 이런 것들을 단계적 목표로 정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불구속 수사로 사건을 지연시켜서 피해자를 지치게 하는 것이 가해자와 합의를 유도하는 법조인들의 기술이라는 것.
 
장 중사는 성추행 자체의 죄질도 매우 나빴을 뿐 아니라, 피해진술에서 혐의를 대부분 부정했고 탄원서를 받는 과정에서는 피해자의 신원을 노출하는 2차가해까지 저질렀다. 김정환 변호사는 "마땅히 구속수사가 이뤄졌어야 했다. 가해자가 범행을 부인하고 있고, 2차가해 측면에서 증거인멸의 우려가 매우 높기 때문에 피해자에게 압박을 통해서 진술을 번복시킬 가능성이 충분했다"는 의견을 밝혔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한 장면.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한 장면. ⓒ SBS

 
그렇다면 가해자에 대한 불구속수사 결정은 누가 내린 것일까. 군검사와 군사경찰 대대장 등은 각자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었다. 그런데 제작진은 이예람 중사의 부친과 20비행단 군검사의 통화내용이 녹음된 파일을 공개했다. 통화 내용은 놀랍게도 장 중사의 구속을 막는 누군가의 '외압'이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었다. 김상중은 군검사에 대한 인사권과 징계권을 가지고있는 것은 공군본부 법무실이고, 해당 군검사가 징계라도 받게 되면 제대후에도 변호사 개업에 지장이 생긴다는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언급했다.
 
군인권센터는 제보로 확보한 녹취록을 토대로 공군본부 법무실이 '전관예우' 때문에 불구속수사를 지휘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의혹의 당사자는 공군 법무실장인 준장 전아무개씨로 이 중사 사건의 수사 책임자이기도 했다. 이 중사 사망 이후 공군에 대한 비판 여론이 악화되자 이성용 공군 참모총장이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하지만 전 실장은 직무유기 혐의로 수사를 받았으나 지난해 10월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인권센터와 이 중사 유족들은 가해자 장 중사가 선임한 법무법인과 전 실장간의 관계가 특수하다며 전관예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강태경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위원은 "군법무관 출신들에게 전관예우-카르텔이라고 불리는 문제는 10여 년 전부터 지적되어 왔다. 국회에서도 실제 군법무관 출신 변호사가 변호할 경우 피고인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오는 비율이 훨씬 높았다"고 설명했다.
 
전씨는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전관예우를 고려하여 불구속 수사를 결정한 사실도 없고, 녹취파일은 가짜라고 주장했다. 성범죄 가해자를 불구속 수사를 받게한 것을 성공사례로 광고한 법무법인은 제작진의 인터뷰 요청을 피했다.
 
또다른 한 제보자는 1인당 월평균 수사 건수가 2.2건(2020년 기준)에 불과한 공군에서 법무실장이 구체적인 보고를 받지 못했다는 주장은 거짓이라고 반박했다. 제보자는 "수사 기밀을 만지고 구체적인 보고를 다 받는 법무실에서 몰랐다? 무조건 인지하고 지휘하게 되어있다. 지휘하지 않는 공군 법무관들은 존재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제작진이 취재 과정에서 입수한 또다른 제보는 충격적이었다. 전-현직 군법무관들간의 대화에서 당시 이성용 공군참모총장이 구속수사를 지시했음에도 공군본무 법무실에서 대장의 명령조차 무시하고 불구속 처리를 강행했다는 것. 이에 대하여 이성용 전 총장은 제작진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하지만 전 실장은 여전히 "구체적인 사건 내용을 알지 못했다"며 완강하게 부인했다. 수사책임자로서의 잘못을 묻는 질문에 전씨는 "결과는 안타깝지만 법적인 책임은 다른 것"이라고 주장하며 "봐주기 수사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피해자가 사망하고 나서야 가해자 장 중사는 구속수사를 받았고, 관련자들 36인이 수사를 받았지만 이 중 기소까지 이루어진 사람은 극소수였다는 게 사건의 씁쓸한 현실이었다.
 
안타깝게도 유족은 아직도 고인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 중사의 부모님은 고인의 유해가 안치된 곳을 찾아 관련자들의 처벌이 흐지부지 않도록 끝까지 지켜보겠다며 매일같이 약속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시청자들의 마음까지 뭉클하게 했다.
 
성추행 피해자를 보호하기는커녕 81일간 지옥같은 시간 속에 방치하며 끝내 극단적 선택으로 몰아넣은 공군 조직, 그리고 불구속 수사를 지휘한 자에 대해서는 그에 걸맞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것이 나라를 위하여 복무하던 자식을 억울하게 잃어야했던 그 부모들, 성폭력 피해를 신고한 사람이 그로 인하여 더 큰 피해를 받는 비극이 없어지기 위해서 마땅히 국가가 책임져야할 의무이기도 하다. 또한 지금 우리의 군이 과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믿고 맡길수 있을만큼 부끄럽지않은 군대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대답이 될 것이다.
그것이알고싶다 이예람중사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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