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그림자 꽃> 관련 이미지.
엣나인필름
제목 자체가 어찌 보면 모순이다. 색과 향기로 대변되는 꽃 앞에 그림자라는 단어가 따라온다. 이승준 감독은 "아무리 사랑하고 소중한 존재도 오래 떨어져 있다 보면 흐릿해지기 마련"이라며 "남북 관계가 그러하고 이산가족이 바로 그런 분들일 텐데 련희씨 의지와 상관없이 시간이 흘러 불행을 느끼게 하는 시스템에 대해 묻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치나 체제는 잘 모르겠고, 본인 의지와 상관 없이 시스템 문제로 개인이 처하게 된 불행은 우리가 풀어줘야 하지 않나 생각했다. 북한과 남한은 그간 서로 다른 점만 찾으려 했다. 사는 모습도 생각도 다르다며 서로 배척했는데 이 영화로 비슷한 면을 좀 찾자는 의도가 있었다. 미사일, 핵 문제는 다른 테이블에서 논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는 우리가 좀 노력하자는 거지." (이승준 감독)
물론 몇 가지 의문점도 생각할 만하다. 이를테면 지병인 간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중국에 사는 친척네에 갔다가 브로커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어떻게 남한으로 단순히 넘어올 생각을 할 수 있는지 그 연결 고리가 약하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또한 스스로 간첩이라 주장하거나, 평창 올림픽에 참여한 북한 선수단을 무작정 찾아가 만나려는 시도들이 자칫 김씨의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라는 주장도 그렇다.
"남한에선 북에 대해 잘 모르니까. 아주 어렵게 살던 고난의 행군 시절이 있었다. 그때 생활을 이어가게 할 유일한 방법이 중국 밀수였다. 국경 근처에서 중국 제품을 밀수하거나 탈북해서 중국 사람과 결혼한 경우가 꽤 있었다. 북한은 자유롭게 여행이 가능한 체제가 아니잖나. 중국만이 유일한 탈출구였지. 그래서 중국에 간 이후 남쪽으로 밀입국도 가능하다 생각한 거다. 두 달간 중국에 머물 때 조선족이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밀항하는 걸 봤거든. 당연히 가는 게 두렵지. 근데 몰래 2개월만 돈 벌면 병원비를 낼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아줌마다 보니 그런 정치나 체제를 잘 몰랐다. 관심도 없었고." (김련희씨)
그렇게 남한으로 갈 준비 중 뒤늦게 북한으로 돌아가기 힘들다는 사실을 인지했지만 이미 브로커에게 여권을 뺏긴 뒤였다. 결국 김씨는 의사에 반해 남한에 들어오게 됐다. 그때가 2011년 9월이었다.
"저 또한 그런 의심이 들었다. 너무 순진한 생각 아닌가 싶었다. 근데 한편으로 련희씨 입장에선 오히려 한민족이니 더 이해해줄 수 있겠다 싶은 거지. 남한과 북한 사람은 기질적으로 많이 다르더라. 우린 계산하고 따지는 데 익숙하지만 북한 사람은 재지 않는다. 련희씨가 말 그대로 간첩이라고 하자. 입국하자마자 북한으로 보내 달라고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세상에 어떤 간첩이 그렇게 행동할까. 그리고 신문에 기사가 났다고는 하지만 상황이 나아지질 않으니 더 격하게 알릴 수밖에 없다고 본다. 심지어 자살 시도까지 했는데 못 갔잖나. 조용히 지냈으면 아마 북에 가는 걸 포기하고 정착을 결심했다고 주변에선 짐작하겠지." (이승준 감독)
"어려운 현실에서 나아갈 힘 나누길 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