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부탁해"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
엣나인필름
영화의 내용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지만 특별히 언급하고 싶은 게 있어 다시 옮겨본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단짝친구 다섯은 (수도권에서 국내 3번째 대도시임에도 변방 취급받는 인천 바닷가 출신의) 이제 각자의 인생을 출발해야 한다. 다섯 중 특히 태희, 효주, 지영의 캐릭터들은 꽤나 대조적으로 유형화되어 있다.
요즘에는 중3에서 고1 시기에 대입 코스를 비롯해 사실상 계층 사다리가 정해진다고 하는데, 이 시절에는 아주 조금 더 유예기간이 있었던 기억이긴 하다. 그렇지만 이제 셋은 학창시절 크게 의식하지 않았던 각자의 조건과 미래의 출발선 차이를 깨닫게 될 시점이다. 영화를 첫 개봉 당시에 봤을 때는 감독이 보여주려 한 IMF 이후 가파르게 진행되던 한국사회 계층 간 이동의 어려움과 차별이 그렇게 진하게 다가오진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영화를 다시 보니 그 지점이 유독 진하게 묻어난다.
어떻게 보면 가장 관객 일반과 공통점이 많은 존재는 이요원이 맡은 '효주'다. 효주는 증권회사에 들어간다. 친구들 중 가장 '출세'한 셈이다. 효주는 이참에 필사적으로 'in-서울'에 진입하려 애쓴다. 영악하고 이기적으로 보일 만큼 그녀는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한다. 자기만 바라보는 남자친구를 마구 대하고, 제멋대로의 행동 때문에 단짝이던 지영과도 점점 멀어져 간다. 효주는 그렇게 신분상승을 도모하지만 대학을 나오지 않은 결정적 약점은 효주가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는 방탄유리 같은 벽이었다.
옥지영이 맡은 '지영'은 효주와 가장 친했었지만 점점 갈라서는 존재다. 사실 다섯 친구의 조합은 원래 효주와 지영, 둘 사이에서 출발한 관계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둘의 우정이 식어가는 전개는 영화가 배후에 품은 시대상 묘사의 핵심인 셈이다. 지영은 절박한 상황이다. 부모는 부재한 가운데 병들고 쇠약한 조부모만이 유일한 가족인데 이들이 사는 집은 지붕이 내려앉기 시작한다. 세입자로서 건물주에게 수리를 요구해도 외면당할 뿐이다. 지영은 또래들처럼 꿈이 있지만, 물려받은 빈곤의 굴레에 짓눌려 꿈꾸는 것을 거듭 거부당하며 일그러져간다. 효주는 그런 지영에게 잘난 척 충고하지만 이제 학창시절처럼 둘 사이에 동등한 우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친했던 둘은 이제 적개심을 품는 단계에 이른다. '관계의 종말'은 채 1년도 걸리지 않았던 셈이다.
배두나가 담당한 '태희'는 모든 게 어중간하다. 태희는 효주처럼 필사적으로 신분상승을 꾀하지도, 그렇다고 지영처럼 생존에 몸부림치는 상황도 아니다. 그런 조건 때문에 태희는 친구들 사이에서 완충지대 역할을 담당한다. 모임 연락도 태희가 하고 서로 싸운 효주와 지영은 마치 편을 들어달라는 듯 태희에게 엇갈려 연락하곤 한다. 그런 태희는 속된 말로 '오지랖'이 넓다. 그녀는 뇌성마비 시인을 위한 타이핑 봉사활동도 열심히 해낸다. 그렇지만 부모세대의 눈에 (이제 신자유주의 정글로 본격 진입하던 당대 사회현실에서) 태희는 딱 실속 없고 자기 것 못 챙겨먹는 못나빠진 존재일 뿐이다.
여기에 화교 출신 쌍둥이 자매가 가세한다. 비류와 온조(백제의 시조로 고구려 왕위 계승에서 밀려나 인천과 서울 쪽에 자리를 잡았던 바로 그!)다. 둘은 앞선 셋이 각자 처한 상황과 동떨어져 있는 존재다. 인천 차이나타운을 배경으로 이 둘은 한국사회 변방에서 자신들의 생존을 알아서 해결하는 비주류 라이프에 해당한다. 형편이 여유롭다거나 믿는 구석이 따로 있어서가 아닌, 어차피 다른 친구들과 동일하게 출발할 조건을 부여받기 힘든 조건인 셈.
그래서 오히려 온전히 독립적으로 살아간다. 10여 년 후 불거질 한국사회 내 이민자와 소수자 문제를 내다본 것일까? 다섯 명의 동창생들을 통해 한국사회 내 각자의 생존 방법론과 정체성 고민에 이르기까지 영화는 그 핵심 줄기인 청춘의 방황과 부유와 연계해 정교하게 설정해두고 있었다. 이 영화가 미래 예언적인 작품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한국사회가 그렇게 더 나빠진 것일까? 그 답은 영화를 만들어질 당시에는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20년이 지나니 이 영화는 이후 한국사회가 크게 바뀌진 않은 상태로 흘러왔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3_그 고양이들의 또 다른 귀환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