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성덕>을 연출한 오세연 감독.
부산국제영화제
역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영화 중 이처럼 큰 웃음과 박수가 터진 경우가 또 있었을까. 대학교를 휴학한 채 고스란히 지난 2년을 투자한 오세연 감독의 첫 영화 <성덕>은 말 그대로 팬덤이 직접 팬덤 문화 내부로 깊숙하게 들어가 스스로를 바라본 성찰의 결과물이라 볼 수 있다. 지난 9일 공식 첫 상영을 마친 오세연 감독을 직접 만났다.
10일 오후 부산 해운대 영화의 전당 인근에서 만난 그는 "첫 상영이라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는데 생각보다 더 뜨거운 반응이라 놀랐고, 오히려 제가 더 감동받았다"는 소회부터 전했다. 그 열기는 어쩌면 상처받은 팬덤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그의 영화가 전달했기 때문일 것이다.
흑역사를 백역사로
시작은 분노의 감정 때문이었다. 중학생 때 전교 1등을 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고, 그러면서도 한복을 입고 다니며 정준영 팬미팅 자리에 나타나는 행동으로 눈도장을 찍었다. 한 예능 프로에 나가 정준영을 향한 마음을 고백하는 장면이 영화에도 나오는데 감독 스스로도 "성격적으로 정준영에게 영향받은 게 컸다"고 고백할 만큼 마음을 다해 좋아했던 대상에게 큰 배신감을 느낀 셈.
"2019년 3월 단톡방 사건이 터졌을 때는 이것에 대해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바로 못 했다. 정신 차리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1개월이 지난 뒤 주변 친구들이 성덕이니까 한번 영화로 해보라고 하더라. 그때까지 분노를 삭일 길이 없어서 다른 팬들을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범행이 사실로 밝혀졌음에도 여전히 정준영의 남은 팬들이 있다는 게 충격이었다. 왜 저러지? 같이 만나봐야겠다 싶었다.
남아 있는 팬들이 박사모와 비슷하게 보여서 박근혜 지지자분들을 만나는 식으로 영화가 좀 확장성을 가졌으면 했는데 만들다 보니 그것보단 (분노하며 지지를 철회한) 팬 이야기에 집중하고 싶더라. 기획과 구성을 오래 준비하진 못했다. 재판이 곧 있었기에 시급하게 찍을 일이 많았고, 주변 친구들도 마음이 변하기 전에 찍어야 했다. 거칠게 쓴 기획안이 다행히 여러 제작지원 사업에 선정되면서 시작해볼 수 있었다."
십시일반 모인 제작지원금에 사비를 조금 보태 제작비를 마련했다. 아무리 분노했다지만 소위 흑역사라 할 수 있는 자신의 과거를 드러내며 영화를 공개한다는 게 적잖은 부담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오세연 감독은 "약간 수치심이 좀 있긴 하지만 본능적으로 재밌겠다는 걸 알았던 것 같다"며 말을 이었다.
"남의 고통은 나의 기쁨이라는 말이 있잖나. 제 고통으로 관객분들이 웃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날 봤을 때도 웃겼거든. 흑역사를 백역사로 만들어버리자는 생각이었다. 친구들도 좋아했다. (배우 조민기의 팬이던) 엄마도 직접 영화에 출연하셨잖나. 비범한 분이다. 막 웃으시며 재밌겠다고 하셨다(웃음).
사실 영화 준비과정에서 어떤 방해나 비난은 없었다. 작은 영화이기도 하고. 근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하기로 결정하며 SNS에 그 사실이 알려지다 보니 한 팬에게 장문의 메시지가 왔다. 정준영에 대한 이야기라는 건 전혀 알리지 않았는데 영화 스틸 이미지에 제가 그린 그림을 보고 알아채신 분이었다. 그 그림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며 꼭 <성덕>을 보고 싶다고 하시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