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성덕>의 한 장면.
부산국제영화제
전교 1등의 성적을 유지하면서도 한 가수의 열성적인 팬으로 활동하던 때가 있었다. 부산에서 살지만 서울 공연을 밥 먹듯 찾아간 건 물론이고, 팬미팅이 있을 때마다 한복을 입고 등장해 결국 그 스타의 눈길을 받았던 한 학생은 훗날 자신의 과거에 분노하며 영화 하나를 세상에 내놓게 된다.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다큐멘터리 경쟁 부문에 초청된 <성덕>은 그간 봐왔던 다큐멘터리와는 다소 결을 달리 한다. 감독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는 점에서 자전적 다큐로 분류할 수 있겠지만 진지하고 무겁거나 때로 사회적 고발에 이르렀던 여러 다큐와 달리 분위기가 경쾌하면서 발랄하다.
말 그대로 '성공한 팬'을 뜻하는 영화 제목처럼 오세연 감독은 한때 같은 팬들의 부러움을 사던 존재였다. 좋아하던 스타가 그의 존재를 알고 눈길을 줬고, 함께 사진까지 찍었으며 한 예능 프로에 출연하게 되기도 했다. 밤잠 설치며 혹은 그 스타의 노래를 들으며 그에게 편지를 쓰던 감독은 자신의 과거를 '흑역사'라 칭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 스타가 바로 성폭행 혐의로 대법원까지 가서 징역 판결을 확정받은 가수 정준영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이들의 우상이던 그는 그 사랑과 믿음을 저버리고 범죄자가 됐다. 남겨진 팬들의 심정은 어떨까. 영화는 그 단순한 물음에서 시작해서 자신과 자신 주변 팬들에게 묻기 시작한다. 대체 왜 화가 나는 것이고, 왜 부끄러움은 팬들의 몫이어야 하는지 말이다.
시작부터 영화와 전혀 상관 없지만 제목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사찰인 성덕사가 등장한다. 정준영의 팬, 승리의 팬, 강인의 팬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스타들의 팬을 하나하나 만나다가 혐의가 범죄로 확정이 됐음에도 팬임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의 심정을 이해해 보려 하기도 한다. <성덕>은 그간 우리가 애써 외면하거나 무시했던 팬덤의 생리를 아주 가까이에서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단 중요한 텍스트가 될 것이다.
나아가 감독은 정준영의 성폭행 사실을 처음 보도한 기자까지 만나 출연시키기에 이른다. 스포츠서울 박효실 기자는 그 보도로 인해 숱한 팬덤의 공공연한 공격을 받아야 했다. 해당 보도 직후 30분 만에 혐의가 없다는 식의 보도와 해명 자료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당 보도는 사실이었고, 다른 팬과 마찬가지로 해당 기자를 저주했던 오세연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직접 기자를 출연시켜 진심 어린 사과를 전한다.
감독의 모친이 직접 출연해 조민기의 팬임을 밝히는 대목에선 뭉클한 감정마저 든다. 앞서 물의를 일으킨 스타처럼 조민기 또한 큰 범죄를 저지른 혐의였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감독의 모친은 "그게 가장 나쁜 짓"이라며 "죄 값을 받지 않고 자신이 선을 정해놓고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생각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며 분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