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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6억 원이라는 거액의 상금을 차지하기 위해 어른들이 목숨을 걸고 서바이벌 게임을 벌인다는 내용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은 가상의 경쟁 세계 속에서 인간이 어디까지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특히 배우 박해수가 맡은 조상우는 그 정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극한의 경쟁 속에 인간성을 점점 잃어가는 조상우는 가깝게 지냈던 외국인 노동자 알리(아누팜 트리파티 분)를 속이고 구슬치기 게임에서 비겁하게 승리하는가 하면, 유리다리를 건널 때는 살기 위해 앞에 있는 사람을 밀어버리기까지 한다. 그러나 꽤 많은 시청자들은 조상우의 이기적이고 잔인한 선택에 공감했다. 그만큼 우리가 비인간적인 생존 경쟁이 익숙해진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리라. 박해수는 이러한 반응에 대해 알고 있다면서도 "마음이 씁쓸했다"고 털어놨다. 9월 29일 오후 온라인 화상 인터뷰로 그를 만났다.
지난 9월 17일 첫 공개된 <오징어 게임>은 전 세계적 인기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 스트리밍 차트 1위에 오른 최초의 한국 콘텐츠인 <오징어 게임>은 현재 미국, 영국, 프랑스를 비롯해 전 세계 80여 개국에서 연일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흥행 질주를 이어가고 있다. 박해수는 "한국 콘텐츠이지만 소재가 (한국에) 국한돼 있지 않아서 좋아해주시는 것 같다"며 드라마에 전 세계인이 공감할 만한 요소가 많았다고 인기 요인을 분석했다.
"전 세계적 공통 분모가 있는 인간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단지 한국의 어린 시절 놀이여서가 아니라, 세계 각국 사람들에게도 순수했을 때 했던 놀이가 있을 거다. 그게 어른들의 잔혹한 생존게임이 된다는 설정이 신선했고 그 와중에 여러 인간들의 심리적 변화, 서사, 재미가 인기를 끌지 않았나 싶다. 독특한 색감이나 배경도 시선을 끌었던 것 같다."
특히 거대한 규모의 알록달록한 세트는 게임의 잔혹함과 대비되며 더욱 눈길을 끈다. 실제로 촬영 당시에도 배우들 역시 세트장에 완전히 매혹됐었단다. 박해수는 "매번 세트장에 들어갈 때마다 사진 찍기 바빴던 기억이 난다. 한참 세트장을 돌아다녀보기도 했다"며 "제작진들이 고민을 엄청 많이 하셨다. 배우들이 연기하기에 적합하게, 그 공간에 진짜 들어와 있는 것처럼 만들어주셨다"고 치켜세웠다. 그러면서도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세트로 구슬치기 게임을 했던 골목길을 꼽았다.
"스태프들이 (모든 세트에) 신경을 많이 쓰셨는데 그중에서도 저는 캐릭터로서도 그렇고, 배우 박해수로서도 그렇고 골목길 세트장이 너무 좋았다. 거기서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노을이 진다. 그 조명까지도 신경을 쓰셨던 거다. 저녁에 엄마가 밥을 짓고 아이들에게 '들어오라'고 부르기 직전까지의 색감을 구현한 콘셉트였다. 그런 이야기가 담긴 세트가 되게 짠하면서도 너무 멋있더라. 드라마에서도 제일 멋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극 중에서 박해수가 맡은 조상우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수석 입학하고 증권회사 투자 팀장까지 오른 수재였지만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60억여 원의 빚을 지게 되는 인물이다. 부모님의 집과 자그마한 생선가게까지 빚쟁이들에게 넘어갈 위기에 처해 경찰에 쫓기던 그는 마지막 기회를 붙잡으려 게임에 참여한다. 박해수는 스스로 조상우에게 "면죄부를 주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점점 변해가는 상우의 심리를 이해하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만큼 간절했고 절박했으니까. 그의 심리를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대해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고 그 변화를 보여주는 데 깊이 고민했다. 처음에는 '상우라면 그랬지 않았을까' 했지만 어느 부분부터는 '나였어도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그게 꼭 상우만의 선택이었을까' 그런 생각도 많이 하게 되더라. 면죄부까지는 아니더라도 공감을 할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 있었다."
마지막 게임을 앞두고 조상우는 어떻게든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는 성기훈(이정재 분)과 대립하게 된다. 팬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성기훈보다 조상우에게 더 공감한다는 반응도 꽤 많았다. 박해수는 본인 역시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면서도 "그렇기에 성기훈의 메시지가 좋았다"고 강조했다.
"제 마음 속에서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더라. (조상우에) 공감한다는 건 어떻게 보면 슬픈 현실이지 않나. 어쩔 수 없이 우리 모두가 경쟁사회에 놓여있으니까 그런 (이기적인) 선택이 이해가 간다는 거니까. 저도 그랬다. 조상우를 이해하는 게 어렵지 않았던 건, 시대가 그만큼 경쟁이 심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공감하는 부분들도 그래서인 것 같다. 씁쓸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그러나 성기훈은 우리가 놓지 말아야 하고 잃지 말아야할 것에 대한 메시지를 계속 던지는 것 같아서, 저는 그게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