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을 하자는 소아외과의 안정원(유연석 분)의 말에 보호자는 걱정이 한가득이다. 미리 꼼꼼히 메모지에 질문을 적어 왔지만 대놓고 보기가 민망한지 주춤거린다. 정원은 메모지를 받아 엄마의 걱정을 하나하나 덜어준다.

1년 전 율제병원에서 간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가 심장에 이상이 생겨 다시 수술을 받아야 할 처지에 놓인다. 흉부외과의 김준완(정경호 분)으로부터 심내막증에 대한 설명을 듣는 아들의 얼굴에 근심이 어린다. 미처 확인할 새도 없이 급작스럽게 또다시 발생한 질병이다.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포스터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포스터 ⓒ tvN

 
개인 병원에서 출산 후 출혈이 멈추지 않는 산모가 율제병원으로 이송되어 온다. 산부인과의 양석형(김대명 분)과 레지던트 추민하(안은진 분)는 긴급히 수술에 들어간다. 자궁 하부 파열로 최악의 경우 자궁 적출까지 생각해야 했지만, 무사히 수술을 마치게 된다.

민하는 남편의 반응을 걱정하며 자궁 적출을 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석형에게 말한다. 석형은 남편은 아마도 산모의 생명을 가장 최우선에 두었을 것이라고 대답한다. 수술 과정과 결과에 대한 석형의 설명에 남편은 아내의 생명이 최우선이라며 자궁 여부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며 감사를 표한다.

수술을 앞둔 아이 엄마의 마음과 간이식 수술을 하고도 또 심장 수술을 해야 하는 아버지를 둔 아들의 마음이 어떨지 상상하는 것은 가히 어렵지 않다. 수술이 잘 될 것인지, 수술 후 괜찮을지 많이 걱정될 것이다. 출산 후 출혈이 멈추지 않는 아내를 수술실로 들여보낸 남편 마음은 더욱 간절할 것이다. 아내가 무사하기만을 얼마나 바랄 것인가.

이 같은 경우, 수술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의 고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엄마는 물어볼 것을 잊을까 싶어 미리 메모를 하고, 아들은 미처 알아채지 못한 질병에 당황스러울 뿐이다. 어쩌면 적출되었을지도 모를 자궁은 아내의 목숨 앞에 그리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환자의 나이가 77세이거나 78세라면 어떨까.

수술을 고민하는 고령의 환자와 보호자들

신경외과의 채송화(전미도 분)는 3년 전 유방암 수술을 하고 항암 치료를 받은 78세의 환자를 다시 만난다. 전이성 뇌종양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환자는 수술을 마다하고, 아들(정승길 분)과 딸은 수술 여부를 두고 말다툼을 벌인다. 수술을 받지 않을 경우 6개월 내 사망 가능성이 높다는 말을 듣고 한사코 수술을 거부하던 환자의 표정이 흔들린다.

선천성 질환을 가지고 있으며, 요즘 부쩍 힘이 들어 찾았다는 77세의 환자에게 준완은 심방중격결손을 진단한다.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에 딸은 힘들 것이라며 반대하지만, 환자는 단호하게 수술을 하겠다고 대답한다. 그는 "단 하루를 살아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말한다.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8화 한 장면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8화 한 장면 ⓒ tvN

 
어린 아들이나 장년의 아버지, 28세의 산모의 질병 앞에서 그 누구도 수술 여부를 고민하지 않는다. 수술은 당연한 것이며, 최우선적으로 고려되는 것은 최소한의 후유증으로 환자가 건강을 되찾는 것이다. 드라마의 이야기가 현실이 되더라도, 사정에 따라 비용이 걱정될 수는 있지만 수술 여부 자체를 고민하지는 않을 것이다. 

고령의 환자라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나이에 상관없이, 환자의 건강이 수술을 허락한다면 당연히 동의할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 속 자식들의 고민에 일정 부분 수긍이 간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고령의 환자의 경우, 수술이 그저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때, 건강과 체력이 수술을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만이 수술을 머뭇거리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 수도 있다. 큰 비용이 드는 수술이라면, 경제적으로 곤궁하다면 망설임은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지 솔직하게 따져 보자. 80세에 다다른 그들 곁에 죽음이 가까이 있음을, 이제 살 만큼 살았다는, 더 살더라도 크게 뭔가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암묵적인 이유들이 생명의 소중함을 조금은 차별적으로 대해도 괜찮게끔 만든다. 보호자들에게 그들의 치료와 생존을 위한 수술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들의 나이 앞에서 경제성과 효용성은 무시 못할 참고 사항이 된다. 이제 보호자가 된 자식들은 좀더 젊은 사람이었다면 당연했을 수술 앞에서 셈을 한다.

경제력과 체력이 빈약한 고령의 환자들은 자신의 건강에 대한 결정권조차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다. 보호자들은 결정권이 자신들만의 권리인 양 환자보다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고령의 환자는 수술에 있어서는 어린 아이 대우를 받지 못하면서도 판단과 결정에 있어서는 어린 아이 취급을 받게 된다. 착잡하지만 비난만 할 수도 없는 것은, 이러한 장면들이 불편하면서도 어딘가 익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수술을 하겠다고 선뜻 말하지 못하는 할머니와 단호하게 수술을 하겠다는 할아버지, 그들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걸까. 얼마 남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는 삶에 지불될 목숨값을 저울질하면서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 것일까.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8화는 노화와 부모·자식 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우리가 놓치지 않고 살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노년을 괴롭히는 질병들

치매 증상을 걱정하던 정원의 엄마 정로사(김해숙 분)는 수두증을 진단받는다. 수두증은 뇌 속에 뇌척수액이 고이는 질병으로 로사가 보인 불안한 걸음걸이, 두통, 치매와 비슷한 건망증 등이 증상으로 나타난다. 로사는 치매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며, 기쁘게 수술을 받아들인다. 받아야 할 수술에 대한 걱정보다 치매가 아니란 사실에 기뻐하는 로사의 모습은 치매가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노화와 함께 찾아오는 병증 중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 하는 것이 치매이다. 치매는 '정신줄을 놓는다'라는 속된 표현이 있을 만큼 지능·인지·기억 등에 장애가 오는 대표적인 노인성 증상이다. 무엇보다 치매가 두려운 이유는 자신이 의식도 못하는 이상한 행동으로 긴 시간 가족들을 괴롭히게 될 것이라는 데 있다. 

치매 이외에도 노년을 괴롭히는 질병은 다양하다. 로사의 수두증이나 77세 환자의 심방중격결손처럼 낯선 질병도 있고, 암이나 심장질환처럼 익숙한 질병도 있다. 송화의 엄마가 진단받은 파킨슨병은 치매만큼이나 흔한 노인성 질환 중 하나이다. 

파킨슨병은 뇌에 문제가 생긴다는 점은 치매와 같지만, 정신적인 측면에서 이상을 보이는 치매와 달리 신체적 능력에서 이상을 보이는 병이다. 움직임이 느려지거나 근육이 강직되고 몸이 떨리는 등의 운동성 장애 증상이 주로 나타난다. 너무 늦게 발견되거나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다면 환자의 일상 생활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파킨슨병은 진행이 늦고 초기 증상만으로 감별해내기 어려워 조기에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엄마와 통화를 자주하던 송화가 신경외과 교수임에도 증상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어떤 질병인지 조금은 알려져 있지만, 치매만큼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엄마의 병을 알아채지 못한 의사 송화

송화는 엄마가 파킨슨병을 진단 받자 망연자실하며 눈물을 흘린다. 빼곡한 수술 일정, 제자들의 논문 지도, 진료 외의 다른 병원 업무 등으로 바쁜 송화였다. 착하고 거절을 못하는 성격 탓에 이런저런 사소한 부탁도 줄을 이었다.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8화 한 장면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8화 한 장면 ⓒ tvN

 
지난 7화에서 송화는 엄마가 병에 대한 걱정이 과하다고, 엄마랑 일 이야기를 하면 화가 난다고 간담췌외과의 이익준(조정석 분)에게 이야기했다. 바쁜 일정에 쫓기던 송화는 신경계 질환을 가진 숱한 환자들을 치료하면서도 정작 엄마의 병은 살피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을 돕느라 바뻐, 정작 자신의 도움이 필요했던 엄마의 병을 놓친 송화는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깨달았을 것이다. 

로사나 송화의 엄마처럼 몸의 변화를 알아채더라도 노인들은 제대로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그것이 노화의 영향인지 질병이 생긴 것인지 판단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자식들 도움없이 선뜻 병원 진료를 받기 위해 나서기란 힘든 일이다. 바쁜 자식에게 괜한 부담을 주는 것 같아 이상을 말하는 것을 망설이는 부모도 많을 것이다. 늙어가는 것이 잘못은 아니건만 어서 죽지 못한 것이 꼭 죄인 것 같기도 하다.

노화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임에도 두렵고 부담스러운 일이다. 정신과 마음은 그대로인데 체력과 건강이 먼저 약해진다. 경험과 지식은 축적되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점점 적어진다. 무료한 시간들이 늘어나지만 채우기가 버겨워진다. 미루고 포기하며 하지 못했던 일이 아쉽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 

그러나, 시간은 공평하다. 태어난 순간부터 우리는 나이를 먹는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예외없이 노인이 된다. 노화가 데려오는 변화는 속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피할 수도 없다. 여전히 과학은 시간을 거스르지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피할 수 없다는 이유로 늙는 것을 두려워 해야 할까. 

송화가 그러했듯 정원 역시 엄마의 변화를 알아채지 못한 자신을 자책한다. 어떻게 자식이 엄마의 병을 모를 수 있냐고 스스로를 힐난한다. 로사는 정원에게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몰라. 너무 맘 쓰지마"라고 말한다. 이미 일어난 어찌할 수 없는 일에 괜한 자책과 후회를 하지 말라는 말이다. 갑작스런 수술처럼 노화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일 뿐이다. 

"하루하루를 화양연화처럼 살아"

공평한 시간은 살아 있는 모두에게 동일한 하루를 제공한다. 그 하루를 채우는 것은 그저 자신의 몫일 뿐이다. 정원은 로사에게 "하루하루를 화양연화처럼 살아"라고 말한다. '화양연화'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뜻한다. 정원이 로사에게 전하는 이 말은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8화가 시청자 모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일 터이다.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8화 한 장면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8화 한 장면 ⓒ tvN

 
하루가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수술을 앞둔 아이나 출혈이 심한 초산을 한 28세의 산모나 심장 수술을 해야 할 51세의 중년에게나 마찬가지이다. 자식도 본인도 수술을 고민하는 80세에 이른 고령의 환자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죽음에 좀더 가까워진다는 것이 하루를 빛나게 보내지 못할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미래의 시간을 고려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보다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오늘이며 지금이다. 로사의 말처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미리 알았으면 더 좋았을 병을 뒤늦게 알게 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잠시 자신의 부주의를 탓할 수는 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 앞에 나이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송화는 전이성 뇌종양을 앓는 78세 환자의 아들을 병원 장례식장에서 우연히 마주친다. 그는 이제 50세가 된 30년지기 친구가 갑작스럽게 죽었다고 말한다. 고생만 하다 이제 겨우 큰돈을 만졌는데 써보지도 못하고 죽었다면서, 인생 모르겠다는 말을 하며 그는 친구의 죽음에 눈물 짓는다. 

이후, 송화는 수술을 결정하고 입원한 엄마를 보살피는 아들을 입원실에서 다시 만난다. 비용 문제를 고민하며 엄마의 수술 여부를 두고 동생과 다투었던 그였다. 친구의 죽음 앞에서 그가 깨달은 것은 무엇일까. 엄마는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 아닐까. 엄마의 나이 앞에서 아들은 엄마의 지금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아들은 죽음이 언제든 자신도 데려갈 수 있음을 절실히 깨달았을 것이다.

뒤늦은 후회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죽음도 노화처럼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은 죽기 전까지 무엇을 할지에 대한 선택 뿐이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작 해야 할 것과 살펴야 할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삶은 죽음과 노화를 펄럭이며 늘 우리에게 묻는다. 

엄마의 병을 이야기하며 눈물 흘리는 송화를 바라보는 익준의 마음도 아프다. 친구 사이가 편하다는 송화의 의사를 익준은 무시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송화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을 찾는다. 위경련으로 쓰러진 민하를 위해 석형은 그가 시작을 제안한 밴드 연습을 빠진다. 그 빈 자리를 채운 것은 뜻밖에도 로사이다. 
 
서울로 돌아오는 고속버스에서 익순(곽선영 분)과 준완이 마주친다. 아직 서로를 잊지 못하고 있는 그들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8화 한 장면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8화 한 장면 ⓒ tvN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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