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 드라마 <보쌈-운명을 훔치다>의 한 장면
MBN 드라마 <보쌈-운명을 훔치다>의 한 장면MBN
 
MBN 사극 <보쌈 - 운명을 훔치다>의 여성 주인공은 후궁 윤소의(소의 윤씨)와 광해군 사이에서 태어난 옹주다. 1623년 인조 쿠데타(인조반정)로 광해군이 폐위됐기 때문에 그는 폐옹주로 불린다.
 
수경(권유리 분)이라는 이름을 가진 드라마 <보쌈> 속의 이 옹주는 광해군이 임금 자리에 있을 때 결혼했다가 첫날밤도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남편을 잃게 됐다. 원래는 남편의 동생인 이대엽(신현수 분)을 좋아했지만 왕실과 시댁의 밀약 때문에 그 형과 결혼했다가 그런 일을 겪게 된 것이다.
 
그 뒤 홀로 살게 된 옹주는 몰락 양반 출신의 전문 보쌈꾼인 바우(정일우 분)에게 납치된다. 돈벌이를 목적으로 보쌈해온 여성이 옹주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경악을 금치 못한 바우는 옹주를 자루에 넣고 집을 나선다. 옹주를 시댁으로 데려다주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바우는 훨씬 더 경악할 만한 일을 옹주의 시댁 앞에서 목격한다. 옹주의 행방을 찾던 시댁이 서둘러 며느리 장례식을 치르고 있었던 것이다. 광해군(김태우 분)이 옹주를 대궐로 부르자 당황한 시댁이 옹주의 죽음을 선포해버린 것이다.
 
시집 어른들은 옹주가 수절을 위해 목숨을 끊었노라고 공표했다. 문상객들은 역시 옹주는 다르다며 칭찬을 했다. 열녀문이 내려올 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렇게 옹주는 법적으로 죽은 사람이 됐고, 집으로 돌아가기 힘든 처지가 됐다. 할 수 없이 바우는 자루를 도로 메고 자기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 뒤 시댁 사병들이 옹주의 목숨을 노리고 비밀 수색에 들어간다. 옹주와 바우의 운명은 색다른 상황에 직면한다. 이것이 지난 2일의 제2회까지 방송된 내용이다.
 
광해군이 쫓겨난 지 20년 뒤에야 결혼 문제 논의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옹주는 광해군 다음인 인조 시대를 기록한 <인조실록>에 등장한다. 광해군이 폐위된 지 20년 뒤이자 그가 사망한 지 2년 뒤의 기록인 음력으로 인조 21년 4월 18일자(양력 1643년 6월 4일자) <인조실록>에 이 옹주가 나온다.
 
<인조실록>에 나오는 이 폐옹주는 윤숙의(폐숙의 윤씨)와 광해군의 딸이다. 광해군 10년 7월 8일자(1618년 8월 27일자) <광해군일기>에 이날 종2품인 숙의 윤씨가 정2품 소의로 승진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광해군의 후궁 중에서 윤씨는 한 명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실록에 나오는 윤숙의와 윤소의는 동일인이다. 따라서 <인조실록>에 등장하는 윤숙의의 딸은 윤소의의 딸과 같은 사람이다.
 
 MBN 드라마 <보쌈-운명을 훔치다>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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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날짜 <인조실록>에 폐옹주가 거론된 것은 그의 결혼 문제 때문이다. 이 기록에는 부모가 아닌 외삼촌의 보호 속에 성장한 옹주의 결혼을 지원하고자 옹주의 4촌인 인조 임금이 혼수 비용의 지급을 명령하는 대목이 나온다. 광해군이 쫓겨난 지 20년 뒤에야 결혼 문제가 논의됐던 것이다.
 
옹주의 어머니인 윤소의는 광해군이 실각된 지 이틀 뒤인 인조 1년 3월 14일(1623년 4월 13일)에 처형을 당했다. 이 날짜 <광해군일기>는 "광해의 궁인들을 처형(원문은 誅)했다"면서 "윤씨는 더러운 행동을 이유로 사사(賜死)시켰다"고 말한다.
 
더러울 예(穢)가 들어간 예행(穢行)을 이유로 사약을 내린 점을 볼 때, 성적 스캔들이나 그 정도 수준의 문제점이 윤씨 사형의 명분이 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쿠데타 이틀 뒤에 사형을 집행한 점을 보면, 광해군의 측근이라는 점이 실질적 이유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아버지 광해군은 돌아올 수 없는 유배를 떠나고 어머니 윤씨는 사형을 당했으니, 이때부터 옹주는 사실상 천애고아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그를 외가 식구들과 왕실이 보살폈다. 위 <인조실록>에 따르면, 외삼촌이 옹주를 보호하고 왕실이 생활비를 공급했다고 한다. 이렇게 살았던 옹주의 결혼이 1643년에 추진됐던 것이다.
 
인조 쿠데타 당시 만 4세였던 옹주

드라마 <보쌈> 속의 옹주는 아버지 광해군이 임금 자리에 있을 때 결혼했다가 남편을 잃었다. 하지만, 실제의 옹주는 아버지가 자리를 빼앗긴 지 20년 뒤에야 결혼 문제에 직면했다. 광해군이 왕위에 있을 때 결혼 문제가 거론되지 않은 것은 옹주의 나이가 너무 어렸기 때문이다.
 
왕실에서는 갓 태어난 왕족의 태를 보존하고 그 장소에 태실비를 남겼다. 폐옹주의 것으로 추정되는 태실비에 따르면, 옹주가 태어난 날은 명나라 연호로 만력 47년 6월 23일, 서기로는 1619년 8월 2일이었다.
 
이는 인조 쿠데타 당시의 옹주가 만 4세였음을 의미한다. 아버지가 임금이었을 당시의 옹주의 나이는 '소녀시대'에도 근접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아버지 재위기에 결혼했다가 남편을 잃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개연성이 낮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불가능한 일이 드라마 <보쌈>에서 다뤄지고 있는 것이다.
 
결혼이 거론되던 1643년에 옹주는 만 24세였다. 스무 살만 넘어도 노처녀로 불리던 시절이었으니, 꽤 늦게 결혼을 한 셈이다. 광해군이 눈을 감을 당시에 그의 나이는 22세였다. 죽기 직전의 광해군 역시 딸의 결혼 문제를 고민했을 수도 있다.
 
광해군이 폐위된 지 20년 뒤에, 또 그가 사망한 지 2년 뒤에 폐옹주의 결혼이 거론됐다는 사실은 드라마 <보쌈>의 스토리가 실제 역사와 크게 동떨어짐을 의미한다. 드라마에 허용되는 일반적인 상상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MBN 드라마 <보쌈-운명을 훔치다>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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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보쌈>은 옹주가 이이첨의 아들과 결혼했다는 설정을 제시한다. 하지만 이이첨은 광해군이 폐위된 1623년에 세상을 떠났다. <광해군 일기>에 따르면, 윤소의가 사사된 날에 이이첨 역시 사형을 당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이첨이 폐옹주를 며느리로 맞이할 기회는 생길 수 없었다. 이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서 <보쌈> 제2회에 묘사된 것처럼 며느리의 장례식을 치러줄 기회는 더욱 더 있을 수 없었다. 옹주의 실제 남편은 박징원이라는 사람이었으니, 옹주와 이이첨을 며느리와 시아버지의 관계로 연결시킬 고리는 전혀 없다고 볼 수 있다.
 
<보쌈>은 광해군의 옹주가 결혼 문제에서 파행을 겪은 뒤에 발생한 일들을 다루고 있다. 그 정도로 이 드라마에서는 옹주의 결혼 문제가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옹주의 결혼을 인조시대가 아닌 광해군 시대 사건으로 설정했다. 광해군 시대에 만 4세 밖에 안 된 옹주가 광해군 시대에 결혼도 하고 남편도 잃은 데 이어 가짜 장례식까지 겪었다는 상당히 엉뚱한 설정에 근거한 드라마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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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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