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방송된 KBS1 월화드라마 <달이 뜨는 강> 16회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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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사극 <달이 뜨는 강>의 온달 장군과 비슷한 시기에 왕실 사위로 주목을 받은 이가 있다. 선화공주와 더불어 '서동요' 주인공으로 유명한 백제 무왕이 바로 그다.
온달이 고구려 평강태왕의 사위로 인정된 해는 안정복의 <동사강목>에 의하면 577년이고, 그가 신라군과의 아차산 전투에서 전사한 해는 <삼국사기>에 의하면 영양태왕(재위 590~618) 즉위 직후다.
이름이 부여장인 백제 무왕이 왕이 된 해는 600년이다. 무왕이 선화공주와 결혼한 시점은 그가 왕자였을 때이므로, 두 사람의 결혼은 600년 이전의 일이다. 온달은 590년에 전사하고 무왕은 600년 이전에 결혼했다는 것은 온달과 무왕이 동시대 인물임을 의미한다. 이들이 각각 고구려 부마 및 신라 부마로 세상의 이목을 끈 시점은 거의 비슷하다.
신라를 자주 침공한 무왕
그런데 결혼 뒤에 두 사람의 길은 전혀 달랐다. 온달은 처남인 영양태왕이 즉위한 직후에 '우리 땅을 되찾아오겠다'며 신라와의 전쟁에 자원했다. 그랬다가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의자왕의 아버지인 무왕의 경우는 달랐다. 무왕 시대를 정리한 <삼국사기> 백제본기 무왕 편에는 전쟁에 관한 기사가 많다. 무왕 편에 기록된 전쟁 14건 중에서 1건은 고구려의 백제 침공이고, 나머지는 백제와 신라 사이의 전쟁이다. 나머지 13건 중 2건은 신라가 일으킨 것이고 11건은 백제가 일으킨 것이다. 무왕의 집권 기간인 600~641년에 백제가 신라를 자주 침공했던 것이다.
왕조시대의 전쟁은 현대적 개념의 국가 대 국가의 싸움이라기보다는 왕실 대 왕실의 싸움인 측면이 훨씬 농후했다. 왕실이 노동력과 토지를 확보할 목적으로 백성들을 동원해 벌인 것이 고대의 전쟁이다. 이런 시대에 무왕은 처가인 신라 왕실을 자주 침공했던 것이다.
그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장인인 신라 진평왕(재위 579~632년)에게 남자 후계자가 없었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 진평왕이 천명·선화·덕만(선덕여왕) 세 공주만 두고 있어 진평왕의 사위에게도 기회가 있었다는 사실이 힌트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