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방송된 KBS1 월화드라마 <달이 뜨는 강> 16회의 한 장면.
지난 6일 방송된 KBS1 월화드라마 <달이 뜨는 강> 16회의 한 장면. KBS
 
KBS 사극 <달이 뜨는 강>의 온달 장군과 비슷한 시기에 왕실 사위로 주목을 받은 이가 있다. 선화공주와 더불어 '서동요' 주인공으로 유명한 백제 무왕이 바로 그다.

온달이 고구려 평강태왕의 사위로 인정된 해는 안정복의 <동사강목>에 의하면 577년이고, 그가 신라군과의 아차산 전투에서 전사한 해는 <삼국사기>에 의하면 영양태왕(재위 590~618) 즉위 직후다.

이름이 부여장인 백제 무왕이 왕이 된 해는 600년이다. 무왕이 선화공주와 결혼한 시점은 그가 왕자였을 때이므로, 두 사람의 결혼은 600년 이전의 일이다. 온달은 590년에 전사하고 무왕은 600년 이전에 결혼했다는 것은 온달과 무왕이 동시대 인물임을 의미한다. 이들이 각각 고구려 부마 및 신라 부마로 세상의 이목을 끈 시점은 거의 비슷하다.

신라를 자주 침공한 무왕

그런데 결혼 뒤에 두 사람의 길은 전혀 달랐다. 온달은 처남인 영양태왕이 즉위한 직후에 '우리 땅을 되찾아오겠다'며 신라와의 전쟁에 자원했다. 그랬다가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의자왕의 아버지인 무왕의 경우는 달랐다. 무왕 시대를 정리한 <삼국사기> 백제본기 무왕 편에는 전쟁에 관한 기사가 많다. 무왕 편에 기록된 전쟁 14건 중에서 1건은 고구려의 백제 침공이고, 나머지는 백제와 신라 사이의 전쟁이다. 나머지 13건 중 2건은 신라가 일으킨 것이고 11건은 백제가 일으킨 것이다. 무왕의 집권 기간인 600~641년에 백제가 신라를 자주 침공했던 것이다.

왕조시대의 전쟁은 현대적 개념의 국가 대 국가의 싸움이라기보다는 왕실 대 왕실의 싸움인 측면이 훨씬 농후했다. 왕실이 노동력과 토지를 확보할 목적으로 백성들을 동원해 벌인 것이 고대의 전쟁이다. 이런 시대에 무왕은 처가인 신라 왕실을 자주 침공했던 것이다.

그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장인인 신라 진평왕(재위 579~632년)에게 남자 후계자가 없었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 진평왕이 천명·선화·덕만(선덕여왕) 세 공주만 두고 있어 진평왕의 사위에게도 기회가 있었다는 사실이 힌트를 제공한다.
 
 지난 6일 방송된 KBS1 월화드라마 <달이 뜨는 강> 16회의 한 장면.
지난 6일 방송된 KBS1 월화드라마 <달이 뜨는 강> 16회의 한 장면. KBS
 
서열 1위인 천명공주의 남편은 당숙인 김용수·김용춘이었다. 두 사위 중에서 진평왕이 관심을 보인 쪽은 김용춘이다. <삼국사기>나 <화랑세기>에 따르면, 진평왕은 김용춘을 높이 평가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따르면, 제2대 남해왕(남해차차웅)은 '내가 죽은 뒤에는 아들과 사위를 막론하고 나이 많고 어진 사람이 자리를 잇게 하라'는 왕명을 남겼다. 이에 따라 신라 부마는 고구려·백제 부마와 달리 왕위계승권을 갖게 됐다.

사위를 아들'처럼'이 아니라 아들로 인정하라는 왕명이 있었기 때문에, 김용수·김용춘에게도 기회가 있었다. 왕족으로 태어난 데다가 왕실 근친혼에 따라 부마 자격도 얻었으므로, 이들이 왕이 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진평왕의 사위는 신라뿐 아니라 백제에도 있었다. 무왕 역시 남해왕의 유언에 따라 신라 왕위계승권을 갖고 있었다. 신라 왕실을 기반으로 진평왕의 신임을 받는 김용춘보다는 불리했지만, 무왕 역시 형식적으로는 자격 보유자였다.

역사학자 신채호는 무왕의 잦은 신라 침공을 김용춘에 대한 경쟁의식과 관련시켜 해석했다. 동서관계인 김용춘의 입지를 약화시킬 목적으로 자주 침공했다고 본 것이다.

<조선상고사>에서 신채호는 "그(무왕)는 즉위 후에 김용춘을 죽이기 위해 병력을 동원하여 신라를 쳤다"며 "김용춘은 처음에는 뒤에 숨어 진평왕의 진영에서 참모 역할을 하다가 나중에는 내성사신(궁중 사무 관장)으로 대장군을 겸직하고 전쟁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설명한다.

"이로 인해 상호 간의 악전고투가 거의 매년 벌어지니 이것이 이른바 동서전쟁"이라고 신채호는 규정했다. 무왕이 동서 김용춘을 약화시키고자 신라를 자주 침공했다는 것이다.

<화랑세기> 제13세 용춘공 편에 따르면, 덕만공주가 후계자로 지정될 당시 진평왕은 김용춘에게 '덕만을 보좌해달라'고 부탁했다. 왕이 될 수도 있었던 김용춘은 이로써 처제의 정치 고문으로 만족해야 했다. 무왕의 잦은 침공이 김용춘의 위상을 약화시켰을 가능성을 생각게 만드는 대목이다. 어떻게 보면, 선덕여왕의 즉위는 '백제 형부'의 지원 덕분인 측면도 없지 않다.

무왕이 자주 전쟁을 일으킨 이유

남해왕이 사위를 아들처럼이 아니라 아들로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한 것은 왕실 보존을 위해서였다. 강력한 이주민집단의 수장인 석탈해를 사위로 맞이한 뒤 아들과 똑같은 지위를 부여한 것은 석탈해 세력으로부터 왕실을 지키기 위한 측면이 컸다. 신라 왕실이 또 다른 이주민 집단의 수장인 김알지를 양자로 들여 왕족 지위를 부여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박혁거세 왕실에 편입된 석씨는 왕실 일원으로 살면서도 자기들의 정체성을 유지했다. 사위가 아닌 양자로 편입된 김알지의 후손들 역시 김씨의 정체성을 간직했다. 이는 세 혈통의 통합이 완전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이것이 왕실을 파탄으로 이끌지는 않았다.

왕의 성이 바뀌는 것은 역성(易姓)이었다. 왕조시대에 역성은 곧 혁명이고 왕조 전복이었다. 하지만 석탈해 후손과 김알지 후손의 왕위 등극은 그렇게 해석되지 않았다. 석·김의 후손이 왕이 돼도, 세상은 박혁거세 왕실이 계속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고대 문화가 있다. 성(姓)과 씨(氏)를 분리해 둘 다 사용했던 문화가 그것이다.

'낚시' 하면 생각나는 강태공은 강(姜)이라는 성 외에 여(呂)라는 씨도 있었다. 사마천이 지은 <사기>의 강태공 편(정식 명칭은 '제태공 세가')에 따르면, 강태공 집안의 명칭은 크게는 '강'이지만 작게는 '여'였다. '강'이라는 성을 가진 가문 속에 '여'라는 씨를 가진 그룹이 존재했던 것이다.

하나의 친족집단 내에 소그룹을 두는 고대 동아시아 문화는 박·석·김 3씨가 박혁거세 왕실에서 공존했던 신라 역사를 이해하는 데도 힌트가 된다. 석씨 그룹과 김씨 그룹이 독자적인 왕실이 아니라 전체 신라 왕실의 일원이라는 관념이 있었기 때문에, 박·석·김의 왕위교체가 역성혁명으로 인식되지 않았던 것이다. '한 지붕 세 가족'인 신라 왕실이 파탄으로 내몰리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여기에 있다. 남해왕의 유언이 오래도록 효력을 유지한 것은 그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남해왕이 예측하지 못한 변수

그런데 무왕이란 인물은 남해왕이 예측하지 못한 변수였다. 남해왕이 생각한 것은 신라 땅에 들어온 외래집단 수장을 왕실 가족으로 편입시키는 것이었다. 자기 왕실을 별도로 둔 상태에서 신라 사위가 된 무왕의 사례는 남해왕 시대에 예측하지 못한 이변이었다.

이 이변을 통제하지 못한 까닭에 7세기 전반의 신라는 동서전쟁이라는 전혀 새로운 상황에 직면해야 했다. 왕위계승권은 갖고 있지만 이를 현실화시키기 힘든 무왕의 연이은 도발은 신라왕실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이는 다음 시대인 의자왕 집권기에 백제와 신라의 항쟁이 격화되는 원인이 되고,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여 백제를 멸망시키는 파국으로 이어졌다.

온달이 고구려 부마가 되고 무왕이 신라 부마가 된 시점은 거의 비슷했다. 두 사람 다 극적인 과정을 거쳐 그런 지위에 도달했다. 온달은 공주의 가출과 왕실의 외면 속에 신분적 차이를 극복했고, 무왕은 신라 수도에 잠입해 선화공주에 대한 헛소문을 퍼트리고 공주를 자기 나라로 데려갔다.

두 사람은 극적으로 결혼했다는 점은 비슷하지만, 결혼 이후의 행보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온달은 왕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반면, 무왕은 동서 김용춘과의 경쟁에 몰입했다. 거의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두 부마가 상당히 대조적인 행보를 보였던 것이다.  
달이 뜨는 강 바모 온달 평강공주 백제 무왕 서동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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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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