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으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꿈을 향해 도약하는 이야기를 담은 tvN 드라마 <나빌레라>의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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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살 때부터 발레리노를 꿈꿔왔던 덕출. 하지만 발레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채 70세가 된다. 덕출이 그 나이가 되는 동안, 가정은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삼남매는 모두 성장해 독립한다. 직장에서 은퇴해 가장으로서의 무게를 덜어낸 후에야 그는 용기를 내 발레를 배우고자 한다. 하지만, 덕출이 '발레를 배우고 싶다'라는 뜻을 비쳤을 때, 그에게 돌아온 건 '아니, 할아버지가 무슨 발레를?'이라는 놀람과 비아냥 뿐이다. 발레를 하고 있고 발레를 했었던 채록과 승주(김태훈)마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덕출이 발레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가족들은 모진 말들을 쏟아낸다.
"자식들한테 민폐 끼치지 말아요! 그냥 집에서 텔레비전이나 보면서 동네 산책이나 하면서 그렇게 곱게 늙어가라구요!" (해남, 3회)
"어르신들은 산에 다녀해야 해요." (성숙, 4회)
이런 표정과 말 속엔 '연령차별주의'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연령차별주의는 개인을 나이에 따라 규정하는 것으로 특정 연령집단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과 고정관념, 그리고 이에 따른 차별적인 태도로 구성된다. 특히, '죽음'이라는 태생적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죽음을 연상시키는 노화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이에 노년계층은 '연령차별주의'에 따른 편견에 가장 쉽게 노출된다.
연령차별주의가 내재된 사회에서 노인은 개인으로 존중받지 못한다. 덕출 역시 마찬가지였다. 70대 노인이라면 텔레비전을 보며 동네 산책을 하고 등산을 하며 지내는 것이 '정상'이라는 편견 속에 이와 다른 덕출의 모습은 무시되고 폄하된다. 더구나 이런 연령에 따른 편견은 덕출 자신에게도 내면화되어 있었다. 덕출은 드라마 초반 발레를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애쓰고, 아내 몰래 발레 연습복을 빤다. 이는 덕출 스스로도 '내 나이에 발레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편견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들이었다.
누군가의 꿈이 찬반대상인가요? : 가족주의
가족들이 덕출을 개인으로 존중하지 않는 태도에는 연령차별주의뿐 아니라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집단주의적 가족주의도 한 몫 하고 있었다.
4회, 내면화된 연령차별주의를 극복하고 마침내 '정면돌파'를 시도한 덕출을 둘러싸고 가족들은 '가족회의'를 연다. 삼남매와 사위, 며느리까지 모두 모인 자리에서 이들은 덕출이 발레를 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를 따진다. 하지만 아무도 당사자인 덕출에게 왜 발레가 하고 싶은지, 그게 얼마나 간절한 것인지, 어떤 마음으로 발레를 하는지 등은 전혀 물어보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들 말한다.
"대체 언제 부터예요, 아버지. 말이 돼요? 발레요? 나만 반대야?" (성산)
"아버지 엄마랑 등산이나 다니세요. 나는 아버지 발레 좋아하는지도 몰랐는데." (성숙)
"아버지 사진 그게. 남들이 알면 뭐라 하겠어요?" (성산)
"아버지 연세에 발레가 가당키나 해요. 다치면 엄마만 고생인데." (성숙)
이런 말들은 사람을 가족 안에서의 역할로만 바라보는, 그러니까 집단으로서의 가족을 개인보다 더 중시하는 뿌리깊은 '가족주의' 태도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가족들은 덕출을 연로한 아버지로만 간주하고, 자신만의 꿈을 가진 한 사람으로 존중하지 않는다. 혹여 발레를 하다 다치기라도 하면 자칫 자신들에게 귀찮은 일이 생길까봐 전전긍긍할 뿐이다.
이런 가족들 앞에서 덕출은 입을 꾹 다물고 만다. 하지만 막내 아들 성관만은 이렇게 일침한다.
"아버지가 발레하는 게 뭐 어때서? 이게 가족회의 할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