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벚꽃 관측 이래 이렇게 빨리 꽃이 핀 건 100년 만이라고 합니다. 언제 피었는지조차 모르는 틈에 만개한 벚꽃들이 봄을 알려온 것입니다. 만개한 꽃을 보고 있자니 가슴 한켠이 아려옵니다. 꼭 이맘때지요.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4월. 그렇습니다. 올해는 세월호 참사 7주기 입니다. 우리는 그날 이후 봄이 오면 다시 세월호를 길어 올립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 일찍 찾아온 봄, 영화를 통해 조금 서둘러 그날을 떠올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고자 합니다.[편집자말]
'트라우마'란 과도한 위험과 공포, 스트레스 상황에 대한
심각한 심리적 충격을 일컫는다. 타인이 죽음이나 상해의 위험에
놓이는 사건을 목격했을 때에도 사람들은 트라우마를 겪는다.

최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당신의 사월>은 주디스 허먼의 저서 <트라우마>의 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2014년 4월 16일, 제주도로 수학 여행을 가던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 등 총 476명을 태우고 인천 항을 떠난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침몰의 순간부터 벌어졌던 많은 사건들은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만의 일이 아니었다. 한 배의 침몰을 통해 우리는 시스템, 사회 그리고 국가의 침몰을 확인했다. 세월호의 침몰은 우리 사회 전체에 지울 수 없는 큰 상처를 남겼다. 

그리고 7년, 우리는 그 해 4월로부터 어디쯤 와 있을까? 타인의 죽음이나 상해의 위험에 놓이는 사건을 목격했을 때도 겪는다는 그 트라우마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치유되고 회복되었을까?

다큐 <당신의 사월>은 유가족이 아닌 그 시절을 견뎌내야 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우리 사회에 여전히 드리워진 세월호의 그림자를 살펴본다.

그 해 4월, 다른 곳에서 
 
 당신의 사월
당신의 사월 시네마 달

서촌에서 커피 공방을 10년째 하고 있는 박철우씨는 2016년 촛불 집회 때 세월호 유가족들을 도와 '심야 식당'을 했었다. 거리로 나온 사람들에게 밥 한 끼 대접하고 싶다는 세월호 유가족의 말에 선뜻 함께 하자며 나섰다. 평범했던 커피 가게 사장님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걸까. 
 
2014년 5월, 밤 11시가 넘은 시각 동네 아는 사장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의도에서 농성을 하던 유가족들이 밤새 걸어 청와대로 향하는데 뜨거운 국물이라도 준비하면 어떻겠냐는 요청이었다. 그렇게 그는 청와대 앞에서 유가족을 맞았다.

기사로만 접하던 세월호, 그리고 유가족들은 자신과는 상관없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추운 봄날의 새벽, 담요을 둘러쓴 채 묵묵히 걸어오는 그들을 보며 그들의 상처를 보듬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차마 따뜻한 물 한 잔 마시라고 말조차 걸 수 없었다. 그때부터 박철우씨에게 4월은 이전의 평범한 4월이 아니었다.

진도의 어부였던 이옥영씨는 세월호 좌초 소식을 듣고 배를 타고 현장으로 갔다. 사고현장 5~10m 근처까지 갔을 때 미역 양식줄에 꼬여 올라온 '무언가'를 확인하기도 했다. 어부의 잔인한 4월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당신의 사월
당신의 사월 시네마 달
 
중학교 선생님이었던 조수진씨는 옆 자리 선생님이 보여주는 컴퓨터 화면에서 세월호 사고를 만났다. 얼마 전 아이들과 함께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다녀왔기에 남의 일같지가 않았다. 사고 소식을 실시간으로 접하면서 '그래도 구하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상황은 비참하게 흘러갔고 교실에 들어가 아이들의 눈을 마주하기 힘들었다.

인천항이 가까운 학교에서는 뱃고동 소리가 들렸다. 그 뱃고동 소리에 자꾸만 세월호가 오버랩됐다. 교실이 마치 배 같았다. 아이들을 구하겠다고 돌아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선생님들이 떠올랐다. 

나라면 아이들을 구할 수 있었을까. 교사의 책임감이 무겁게 다가왔다. 조수진 선생님은 2017년 촛불집회에서 전교조 대표로 무대에 섰다. 5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집안 곳곳에 노란 리본을 비롯하여 세월호와 관련된 기억들을 붙여놓았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취지로 아이들과 함께 추모 수업을 하고 모임을 가진다. 선생님에게 세월호는 현재형이다. 자발적으로 추모 모임을 이끌어 가는 아이들을 보며 '희망의 씨앗'을 보았다. 버티니 '희망'이 보였다.

인권운동가이던 정주연씨는 사고 당시 진도 앞바다로 달려갔다. 정씨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그 앞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유가족들 곁에서 그들의 슬픔을 온전히 받아주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곁에서 지켜 본 유가족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거웠고 슬픔은 깊었다.

유가족만이 아니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로 고통에 시달리는 잠수사들이 있는데 그들을 'delete(삭제)' 버튼 누르듯 지워버리는 국가, 여전히 진실은 규명되지 않았는데 '지겹다'고만 하는 현실이 정주연씨는 안타깝다. 정씨 남편은 악몽을 꾸면서까지 그런 잠수사들의 모습을 남기려고 애쓴다. 잊지 않으려는 정씨 부부만의 방식이다.
 
 당신의 사월
당신의 사월 시네마 달
 
우리는 충분히 기억하고 애도했을까?

당시 고 3이었던 이유경씨는 수능이라는 현실 앞에서 가급적 세월호와 관련된 기사를 접하지 않으려 했다. 수능을 마치고 기억저장소에서 봉사 활동을 하며 이씨의 미래는 달라졌다. 시간이 흐르며 '유실'되어가는 세월호의 흔적들을 보며 기록관리학을 전공으로 택했다.   

영화는 세월호로 인해 삶의 시간이 변화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 평범한 사람들은 어쩌면 또 다른 우리들일 수 있다. 세월호가 좌초되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들은 아이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을 때 우리는 모두 트라우마를 겪었다. 그리고 그해 겨울 우리는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다.

<당신의 사월> 속 사람들은 아직도 저마다의 4월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들에게 노란 리본은 현재형이다. 우리의 노란 리본은 어디쯤 있을까. 시간이 흘렀다. 주디스 허먼은 저서 <트라우마>에서 '회복에는 기억과 애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는 세월호를 충분히 기억하고 애도했을까. 그래서 조금은 회복됐을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당신의 사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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