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장 핫한 프로그램은 단연 JTBC 예능 <싱어게인>이다. 첫 방송된 11월 16일 3.5%로 시작해서 11회가 방송된 2월 1일 시청률은 11.7%였다. 여느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세상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무명 가수들이 토너먼트 방식으로 치열한 경쟁을 하며 올라간다. 다른 프로그램과 차이는 가수들이 이름 없이 숫자로만 불린다는 점이다. 10위 안에 들었을 때 이들의 이름은 호명된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질린 나로서는 그다지 눈길이 가지 않았다. 가수의 노래보다 사연에 집중하는 '감성팔이' 편집 방식, 탈락이냐 진출이냐 중요한 순간에 중간 광고를 넣거나 다음 회차로 넘어가는 진행 방식에도 질린 터였다.
 
그러다 유튜브의 이상한 알고리즘으로 인해 30호 가수의 < Chitty Chitty Bang Bang > 무대를 보게 되었다. 이효리가 2010년에 발표한 4집에 실린 이 곡은 중독성 있는 후렴구, 외계인 콘셉트의 독특한 뮤직비디오와 이효리만의 화려한 무대 퍼포먼스로 기억되었다. 하지만 30호 가수는 깊게 음미하지 못했던 가사의 의미, 가사의 맛을 살려냈다.
 
 JTBC의 <싱어게인>은 무명가수들에게 기회를 주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JTBC의 <싱어게인>은 무명가수들에게 기회를 주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 JTBC


심사위원을 관객으로 만들어버린 "장르가 30호" 
 
먼저 30호는 심사위원을 향해 "너의 말이 그냥 나는 웃긴다"라고 시작한다. 마치 너네들이 단지 대중들에게 이름이 더 알려졌을 뿐인데 왜 무명 가수들을 판단하냐는 외침 같았다. 매번 식상하고 하나마나한 반복된 평을 하는 이들에게는 "다 똑같은 말도 하지 마"라고 한다. 그리고서 "여긴 나만의 것 It's my world"라며 치열한 경연장이 아닌 자신만의 콘서트로 무대를 꾸며간다.
 
기타 연주가 장점인 가수가 기타는 메지 않고 다듬어지지 않은 조금은 괴상한 춤을 추면서 심사위원을 향해서는 '세이 예'하고 마이크를 내밀며 따라할 것을 주문한다. '저러다 심사위원 비위에 맞지 않아 탈락되면 어쩌려고 그래'라고 걱정할 때 쯤 "쉬지 않고 나는 계속 달려가 겁내지 말고 나를 따라와"라며 그런 걱정은 내려놓고 이 무대의 내 노래에만 집중하고 따라오라고 한다.
 
그 순간 이 가수의 매력에 푹 빠졌다. 김이나 작사가의 말대로 묘한 매력이 있었다. 댄스라고 해야할지 허우적거림이라고 해야할지 분명 그 자체만 떼어놓고 보면 우스꽝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멋지지 않다. 하지만 30호의 목소리, 표정, 가사, 몸짓 모두가 합쳐진 그 무대는 분명 멋지고 섹시하고 무엇보다 주객이 전도되어 통쾌하고 짜릿했다. 심사위원이 "그래 얼마나 잘하나 보자"라며 지원자를 압도하는 무대에서 "닥치고 내 무대나 즐겨, 난 나만의 노래를 할 테니. 무대의 주인공은 나고 너는 관객이야"라며 온 몸으로 외치는 것 같았다.
 
그렇게 그의 다른 영상도 찾아보게 되었다. 치열한 경연장에서 30호가 편곡하고 새롭게 만들어 내놓는 노래들은 모두 우리가 오디션에서 보고 기대하게 되는 스테레오타입과 거리가 멀었다. 박진영의 <허니>를 통해서는 심사위원들에게 "hey 거기 그래 자기 웬만하면 내게 오지"라며 거만한 느낌의 나쁜 남자 스타일로 매력어필을 한다. 나의 음악의 매력에 빠지면 "절대 후회할리 없지"라면서.
 
두 곡을 통해서 매력을 어필한 그에게 "장르가 30호"라는 별명이 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대를 잔뜩 안고서 세 번째 무대인 산울림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를 보았다. 분명 그만의 색깔로 잘 부른 멋진 무대였지만 산울림의 원곡의 강렬한 포스, 그리고 자우림이 2013년에 <나는 가수다>에서 편곡한 무대를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어느새 30호 무대를 보면서는 이번에는 또 어떻게 노래를 비틀고 자신만의 장르로 만들까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명가수들에게 함께 빛나는 별이 되어 소우주가 되고자 하는 외치는 듯한 이승윤의 무대

무명가수들에게 함께 빛나는 별이 되어 소우주가 되고자 하는 외치는 듯한 이승윤의 무대 ⓒ JTBC

 
무명가수들, 함께 빛나는 별이 되어 소우주가 되자

30호, 아니 10위 안에 들면서 이름을 밝힌 이승윤 역시 그런 시선을 느꼈을까. '30호가 장르'라는 그 틀 자체를 깨고 싶다며 6위로 올라서야 하는 그 중요한 무대에 BTS의 <소우주>를 들고 나왔다. 결론부터 말하면 사실 <소우주> 무대는 앞의 것만큼 신선하거나 강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가 더 이상 심사위원을 향해서가 아니라 함께 하고 있는 오디션 참가자, 그리고 이 오디션에도 나오지 못한 수많은 무명 가수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보내는 것 같아서 그 어느 무대보다 감동적이고 눈물이 났다.

무명가수들이 자신만의 만족으로 무대에 선다고 얘기하더라도 사람인 이상 많은 사람들이 들어주고 찬사를 해주길 바라는 마음은 같을 것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스타"가 되고 싶은 마음도 같다. 하지만 이승윤은 자신과 수많은 30호들에게 "이 밤의 표정이 이토록 또 아름다운 건 저 어둠도 달빛도 아닌 우리 때문일 거야"라고 얘기한다.
 
그렇다. 30호가 장르라서, 심사위원들에게 극찬을 받아서, 대중들의 수많은 클릭과 댓글로 빛났던 것이 아니다. 그 자체로 하나하나 소중한 별들이다. 방송이 끝나면 늘 그렇듯 대중은 다른 곳으로 관심을 옮길 것이다. 
 
그래서 이승윤은 30호가 아닌 이승윤으로서 대중을 만나는 게 두렵다고도 했다. 유튜브를 통해 본 그의 이전 영상들에서 '20대 이승윤'은 큰 무대에서도 자신감 있게 노래를 부르는 패기 넘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30대가 된 이후 찍힌 다른 영상에서 그는 조그마한 클럽 경연무대에 서는 것조차도 떨린다고 말하고 있었다. 묵묵히 자신의 음악을 하고 있지만 경쟁하고 평가받기 두려워졌던 것이다. 20대와 30대 그 사이에는 수많은 무대와 길거리에서의 외면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경험을 갖고 있는 이승윤은 <싱어게인>에서도 혼자서만 빛나는 스타로 남고 싶지 않으려 했다. 그는 6위 결정이 중요한 무대에서 라이벌을 택한 이유도 함께했을 때 서로 돋보일 수 있어서라고 했다. 스타를 더욱 밝혀주기 위해 어둠이 되어야 하는 무명가수들이 아닌 모든 가수들이 그 자체로 빛나는 소우주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싱어게인 이승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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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및 사회적경제 연구자, 청소년 교육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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