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세 5집은 80년대 말과 90대 초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한 발라드 명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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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세 5집이 발매된 1988년 9월은 '가왕' 조용필이 건재했고 주현미, 현철 등 트로트 가수들이 장년층을 중심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여기에 김완선과 소방차, 박남정이 '댄스 3대장'으로 활약하며 젊은 층을 중심으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 우리네 삶을 때로는 흥겹고 때로는 구슬프게 부르는 트로트와 신나는 노래와 흥겨운 춤이 어우러진 댄스 곡들 사이에서 발라드는 상대적으로 심심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문세라는 가수는 예외였다. 이문세는 시적인 가사와 서정적인 멜로디, 그리고 풍부한 감성을 앞세워 트로트는 지나치게 어른스럽고 댄스는 적응하기 힘들었던 대중들을 자신의 팬으로 끌어 들였다. 개인적으로도 이문세 5집은 막 라디오를 듣기 시작하던 초등학교 5학년 시절 오락실 안가고 만화잡지 '보물섬' 안 사며 힘들게 모은 용돈으로 구입했던 생애 첫 번째 '내돈내산' 앨범이었기 때문에 더욱 애착이 큰 앨범이다.
당시 대부분의 앨범이 그런 것처럼 이문세 5집 역시 타이틀곡은 1번 트랙 <시를 위한 시>였다. <시를 위한 시>는 국민적인 히트를 기록했던 3·4집의 타이틀곡 <난 아직 모르잖아요>와 <사랑이 지나가면>에 비하면 그리 크게 히트하진 못했다. 하지만 한 남자가 죽음을 맞으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담담하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 노래 <시를 위한 시>는 아름다운 가사와 애절한 멜로디가 이문세의 목소리에 실려 애틋함을 극대화한 명곡이다.
이문세 노래 중에서 가장 신나는 노래이자 10대부터 4~50대까지 모두 흥얼거릴 수 있는 국민가요가 된 <붉은 노을>도 이문세 5집에 들어 있다. 지난 2008년 빅뱅은 <붉은 노을>을 리메이크하면서 '난 너를 사랑하네'로 시작되는 후렴구만 집중적으로 인용했다. 하지만 <붉은 노을>의 진짜 매력은 코러스와 경쾌한 키보드 소리, 그리고 잔잔하게 시작했다가 노래의 진행에 따라 점점 강렬해지는 이문세의 노련한 보컬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중반부가 아닐까 싶다.
지난 2004년 이수영이 리메이크했고 동명의 뮤지컬로 제작되며 또 한 번 큰 사랑을 받았던 <광화문연가>도 이문세 5집을 대표하는 곡이다. <놀면 뭐하니?> '겨울노래 구출작전'편에서는 <옛사랑>에 밀렸지만 사실 '눈 내린 광화문 네거리',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같은 가사가 등장하는 <광화문 연가>야 말로 제대로 된 겨울 노래다. 덕수궁, 정동길 같은 실존하는 지명이 구체적으로 등장하는 것도 노래를 듣는 또 하나의 재미다.
B면으로 넘어가 첫 번째로 들을 수 있는 곡은 많은 대중들이 라일락 꽃향기를 궁금해 했던 바로 그 노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이다. 경쾌하게 진행되던 전주가 갑자기 느려지며 애절한 발라드로 변하는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은 5분27초의 긴 호흡이 돋보이는 대곡이다. 특히 '내가 사랑한 그대는 아냐' 이후로 이어지는 묵직한 후주(後奏)는 길고도 묘한 여운을 남긴다. 장재인이 리메이크해 젊은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곡이다.
<시를 위한 시>를 시작으로 <붉은 노을>을 거쳐 <광화문 연가>를 지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까지. 베스트 앨범에나 들어 있을 법한 이문세를 대표하는 명곡들이 5집 앨범에 모두 수록돼 있다. 물론 이런 대단한 히트곡들 사이 사이에 들어간 <안개꽃 추억으로>, <이 밤에>, <기억의 초상>, <끝의 시작> 같은 노래들도 그냥 넘기기 아까운 이문세-이영훈 콤비가 만들어 낸 명곡들이다.
노래 부르기 위해 암 조직 제거도 포기한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