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한 장면
JTBC
가정을 지키려는 선우의 노력이 정상가족에 대한 집착이었음은 이미 내비쳐졌다. 부모 죽은 "불쌍한 기집애"라는 꼬리표를 떼기 위한 알리바이에 완벽한 화룡정점이 바로, 성공한 결혼, 정상 가족이었던 것이다. 의사라는 완벽한 커리어만으로 성에 차지 않았던 이유는, 파국으로 끝난 부모의 불행한 결혼을 절대 상속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을 것이다. 아이에게 부모는 더할 수 없는 배경이다. 아이는 배경을 절대 선택할 수 없지만, 사회는 이를 자연처럼 받아들인다. 불행한 부모에게, 나쁜 부모에게, 비정상 부모에게 제대로 된 아이가 나올 리 없다는 유구한 미신은 평생토록 인간을 옭아맨다.
부모가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 아이가 구성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 나쁜 부모에게도 선량한 아이가, 불행한 부모에게도 행복한 아이가 존재하는 예는 연구로도 실체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부모와 자식만으로 구성된 혈연 가족만이 정상 가족이며, 부모만이 아이를 온전히 양육할 수 있다는 공고한 가족주의는 사회가 승인한 판타지일 뿐이다.
저토록 유능한 커리어우먼조차 근대 이후 여성을 집으로 들여보내기 위해 고안된 가부장의 가족제도에 인질이 된 셈이다. 선우에게서 '부모 잃은 불쌍한 기집애'라는 낙인을 지우지 않았다면, 가족만이 정상성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사회가 강요하지 않았다면, 선우는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 다경(한소희 분)은 어떤가? 다경은 이 드라마에서 가장 상식적이지 않은 캐릭터다. 드라마는 다경을 통해 대체 뭘 이야기하려는 것일까? 한 젊은 여자, 게다 맨손으로 자신의 명예를 쌓아올린 선우와 달리, 부자인 아버지의 명망과 부라는 든든한 배경을 노력 없이 거머쥘 유일한 상속녀인 다경이, 대체 뭐가 아쉬워서 저토록 지질한 남자 태오와 사랑에 빠진단 말인가.
드라마는 다경이 혼외 임신이라는 악수를 두어가며 태오에 집착하는 이유를 전혀 설명해내지 못하고 있다. 가진 것이 많아 잃을 게 없는 상속녀의 사랑이라면 보다 거침없던가, 차라리 악랄해야 하는 것 아닌가? 고작 태오 따위의 남자에게 "확실히 내조할게"라며 순애보를 쓴다고?
앞선 세기의 여성들은 결혼 하지 않을 권리가 없어 결혼을 해야 했다. 결혼하지 않는다면 자신을 지킬 아무런 수단이 없었기에, 결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물론 지금도 이성애 가족주의는 여전히 어떤 이데올로기보다 강력하게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적지 않은 여성들이 이 공고함에 균열을 내기 위해 용감히 다른 길을 내고 있다. 하물며 모든 자원을 갖춘 다경과 같은 여성이 고작 내조하는 삶을 염원한다고 드라마는 우겨대고 있는 것인가? 날 수 있는 모든 준비가 되어있는 새가 날개 죽지를 고이 접고 새장에 갇히겠다면, 그것도 사랑이라면, 드라마는 기만적 순애보에 기대지 말고, 그 사랑에 납득할 근거를 대야 한다.
이쯤 되면 드라마는 다경의 어리석기 짝이 없는 선택을 젊은 여자의 '순수한' 사랑이라고 생떼를 쓰며, 무책임한 태오를 키다리 아저씨라 우기는 격이다. 든든한 부모라는 더할 나위 없는 빽을 둔 젊은 여성이, 고작 유부남과의 불투명한 미래에 온 몸을 투척한다는 설정은 너무나 비상식적이다. 네거리에 서서 물어보자. 어떤 여자가 다경과 같은 선택을 하겠는가. 뭐 혹시 다경도 저런 못난 남자에게 집착하는 트라우마가 있다고 뒷 얘기를 설정한 셈인가? 오호, 무리수다. 모든 여성을 트라우마에 끌려다니는 노예로 설정하는 드라마라면, 진짜 막장이라는 혐의를 지우기 힘들 텐데.
현서가 다른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는 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