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레이디 인 더 밴>
넷플릭스
금방이라도 서버릴 것 같은 노란색 밴을 끌고 나타난 셰퍼드 할머니. 셰퍼드가 찾은 곳은 '캠든타운의 크레센트 거리'다. 조용하고 깔끔한 주택들이 줄지어 있는 곳. 주민들은 모두 옷을 깔끔하게 차려입었으며 점잖고 상냥하다. 베넷은 자신이 살고있는 크레센트가와 그 곳 주민들을 이렇게 설명한다.
"크레센트가의 집들은 빅토리아 시대 중산층을 위해 지은 집들이었다. 그래서 진보성향을 지녔지만 새로 얻은 부에 완전히 적응 못한 나름 미안함 같은 게 있는 것 같았다. 셰퍼드 부인을 어느 정도는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녀의 존재로 인해 일면 면죄부를 받기라도 하는 듯이."
주민들의 위선적인 모습은 베넷을 대할 때도 잘 드러난다. 이웃들은 베넷에게 베넷이 쓴 희곡작품을 잘 보았다며 정말 훌륭한 작품이라고 치켜세우지만 그가 사라지면 '무슨 작품이었더라? 기억이 안 나'라며 냉소적으로 돌변한다. 나쁜 사람들은 아니지만 더 기대할 게 없는 이웃들이다.
마찬가지로 주민들은 홈리스 할머니의 존재를 반기지 않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싫어하는 척은 못한다. 되도록 우아하고 천박하지 않게, 홈리스 할머니를 다른 곳으로 보내려고 보이지않 게 애쓴다. 물론 할머니에 대한 동정도 아끼지 않는다. 동정이라지만 그건 호기심에 가깝다. 나이 들어서 낡은 밴에서 생활해야 되는 할머니의 기구한(?) 사연이 궁금할 뿐이다.
셰퍼드 할머니 곁을 지나가며, 왜 냄새가 나냐고 자신의 엄마에게 물어보는 아이에게 엄마는 '가난해서 그런 거다'라고 말한 뒤 아이의 소매를 이끌고 집으로 들어간다. 딱 거기까지다.
세상 당당하고 뻔뻔한 홈리스 할머니
셰퍼드 할머니는 조금 뻔뻔스러운 구석이 있다. 자신을 향한 도움의 손길에 오히려 당당하게 큰소리로 요구한다. 싫은 것은 싫다고 거절한다. 할머니의 그런 모습에 '도움 받는 형편에 무척 뻔뻔하시다'라고 생각하는 건 나뿐일까. 도움 받는 사람은 겸손해야 하며 주는대로 군소리없이 받아야 한다는 것은 어디에서 비롯된 생각일까. 하여튼 셰퍼드 할머니의 그런 뻔뻔함이 낯설지만 꼭 밉지만은 않다.
셰퍼드 할머니의 '국보급' 뻔뻔함을 잘 보여주는 일화. 도로에 주차해놓은 할머니의 밴이 견인될 위기에 처한다. 베넷이 걱정하자 할머니는 '사유차도에 세우면 된다'며 해결책(?)을 제시해준다. 그리하여 베넷의 집 마당에 자신의 노란 밴을 떡하니 주차하고, 그렇게 베넷과 셰퍼드 할머니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왠지 셰퍼드 할머니가 싫지 않은 베넷은 셰퍼드 할머니의 모습을 관찰하며 글로 쓰기 시작한다.
베넷은 냉정한 관찰자다. 베넷은 할머니를 지나치게 동정하지도, 과한 호기심을 보이지도 않는다. 그저 할머니가 해달라는 것, 원하는 것만 해줄 뿐이다. 글을 쓰기 위해 할머니를 이용한다는 죄책감에 가끔 시달리지만, 어느 순간 할머니를 글감의 소재가 아닌 진정한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베넷에게는 셰퍼드 할머니 연배와 비슷한 어머니가 있는데, 베넷은 셰퍼드를 보며 어머니를 떠올린다. 베넷에게 셰퍼드 할머니와 항상 비교된다. 어머니는 교양을 갖추었고 활동적이며 적극적이다. 베넷의 어머니는 셰퍼드의 처지를 한심스러워하며 걱정하지만, 오히려 나중에 건강이 악화되어 요양병원에 입원하게 되는 쪽은 어머니다. 어머니는 급기야 나중에 아들까지 알아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