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문영> 스틸 사진.

말이 없는, 내면이 꼭꼭 닫힌 소녀 문영. <문영>의 김소연 감독은 이런 문영의 모습을 "치기 어리다"고 표현했다. ⓒ KT&G상상마당


"문영 역 같은 경우는 연기 경험이 부족하더라도, 실제 캐릭터와 유사한 과거, 유사한 취미를 공유하고 있는 배우를 캐스팅하고 싶었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아무 표정 짓지 않아도 내면의 상처가 드러날 수 있는 분위기를 가진 배우를 찾고 싶었는데, 연기 활동을 하는 친구 중 그런 배우를 찾지 못한다면 비전문 배우를 찾아 캐스팅하고자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만큼 문영을 캐스팅하는 데 굉장히 심혈을 기울이고자 했다." - 영화 <문영>의 감독 제작노트 중에서

'심혈을 기울인' 캐스팅의 끝에는 배우 김태리가 있었다. 첫 눈에 보자마자 '네가 아닌 문영은 생각할 수 없다'는 식의 드라마틱한 결정이 일어나는 일은 없었다. '문영'의 후보 중 김소연 감독이 마지막으로 만난 배우는 "단편 영화 촬영 경험도 몇 차례 없었고 연극영화과를 나오지도 않았으며 극단 막내 생활을 하는 그냥 예쁘장하게 생긴 친구"(제작노트)였다. 그가 돌고 돌아 '문영' 역에 낙점된 김태리다.

말이 없는 소녀 문영. 친구나 공놀이에도 심드렁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문영이 유일하게 관심을 보이는 일은 '캠코더 촬영'이다. 그 중에서도 지하철. 지하철이 들어오는 광경, 도시가 만든 지친 표정의 사람들의 모습을 문영은 캠코더에 담는다. 가끔 중년 여성들의 얼굴을 '줌인'해 그가 화면 밖으로 사라질 때까지 촬영하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문영은 지하철이 아닌 다른 공간을 몰래 담았고, 그의 캠코더 촬영이 발각되면서 희수를 만난다. 희수는 문영에게 자신을 몰래 찍은 영상을 CD로 구워달라는 엉뚱한 부탁을 한다.

 영화 <문영> 스틸 사진

배우 김태리의 다른 모습이 궁금했던 관객들은 2015년 영화 <문영>을 2017년 스크린으로 불러왔다. ⓒ KT&G상상마당


감독이 생각했던 '문영'의 이미지와 정반대되는 "사랑스럽고 순수해 보이며 잘 웃는" 배우. "사랑스럽고 순수해 보이는" 김태리가 본인의 겉모습과는 다른 "미성숙하고 상처가 많으며 치기 어린"(김소연 감독) 문영을 연기했을 때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는 차이(갭)가 시나리오 안이 아닌 화면 속에서 움직이는 새로운 문영을 만든다.

<문영>은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에서 '숙희'를 연기한 배우 김태리의 첫 작품이다. <아가씨>를 통해 '숙희'를 먼저 만난 관객들은 숙희가 아닌 김태리의 다른 모습을 보고 싶었다. 이들의 열띤 요청 덕에 2015년 영화인 <문영>을 2017년 스크린에서 볼 수 있게 됐다. 입이 아닌 눈과 손을 이용한 극적인 수화로 감정을 표현하는 문영은 김태리의 다른 이름이 될 법했다. '누구에게나 흑역사는 있다'는 말이 있지만 <문영> 속에서 김태리는 '흑역사 없는' 과거와 '넘치는 가능성'의 미래를 동시에 보여준다.

"문영에게 희수라는 친구를 소개시켜주고 싶었다"

지난 3일 서울 마포구에서 열린 <문영> 언론시사에 참석한 김소연 감독은 "문영에게 희수라는 친구를 소개시켜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밝은 성격의 희수는 세상과 통하는 문을 꼭 걸어잠근 문영의 친구가 돼준다. 이들 두 여성은 조금씩 서로를 깨고 지금껏 밟아보지 못했던 새로운 관계를 향해 나아간다. 자칫 진부하거나 혹은 영화의 무거운 톤과는 맞지 않을 것 같은 희수라는 캐릭터를 배우 정현은 부지런하게 설명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자신의 상처를 마주보고, 특별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서사는 흔하다. 다만 이 영화는 말하지 않는 문영이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을 찾아 가는 과정을 담았고 이는 영화의 흔한 줄거리를 특별하게 만든다. 12일 개봉.

 김태리 주연 영화 <문영> 포스터.

영화 <문영> 포스터. ⓒ KT&G상상마당



문영 김태리 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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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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