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마이클의 첫번째 베스트 앨범 `Ladies & Gentlemen` 표지

조지 마이클의 첫번째 베스트 앨범 `Ladies & Gentlemen` 표지 ⓒ 소니뮤직코리아


크리스마스 휴일을 보낸 후 맞는 월요일 오전, 갑작스러운 비보가 날아왔다. 영국 출신의 인기 팝스타 조지 마이클이 25일(영국 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진 것.

1980년대 팝 음악을 즐겨 듣던 분들이라면 조지 마이클, 그리고 그가 몸담았던 듀엣 왬(Wham!)의 작품들을 좋아하지 않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경쾌한 댄스/팝부터 복고풍의 로큰롤, 섬세한 감성의 발라드에 이르는 다양한 스타일의 작업물은 왬!, 그리고 솔로 데뷔 초기 시절의 조지 마이클을 최고의 팝스타로 만든 일등 공신이었다.

클럽 댄스 음악으로 출발한 왬!, 세계적인 인기 듀엣으로 성장

1982년 가을 선공개한 싱글 'Young Guns(Go for It!)', 이듬해 발표된 데뷔 앨범 <Fantastic>의 수록곡 'Wham Rap!(Enjoy What You Do)', 'Bad Boys', 'Club Tropicana' 등으로 4연속 영국 싱글 차트 Top 10에 진입하면서 앤드류 리즐리와 결성한 왬!은 시작과 동시에 영국 현지에선 스타 대접을 받게 되었다. 특히 당시로선 파격적인 랩을 대거 사용했던 이들 곡은 영국 댄스 클럽가를 중심으로 왬!의 입지를 다지는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클럽 댄스곡 위주의 음악 만으론 미국 시장까지 넘보기엔 뭔가 부족함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런 탓에 영국에선 2위까지 올랐던 'Bad Boys'는 미국 빌보드에선 60위에 머무는 등 전혀 다른 반응을 얻었다.

 듀엣 왬! 시절 최고의 히트 음반 `Make It Big` 표지

듀엣 왬! 시절 최고의 히트 음반 `Make It Big` 표지 ⓒ 소니뮤직코리아


불과 1년 만에 왬!은 몇 단계 진일보한 음악을 들고 전 세계 음악팬들을 놀라게 한다. 1984년 발매된 2집 <Make It Big>는 상업적·음악적인 모든 면에서 거의 완벽한 구성의 작품이었고 3곡의 빌보드 1위 배출 + 전 세계 1000만 장 이상의 판매량이라는 자랑스러운 결과물을 탄생시킨다.

이 과정에서 각기 다른 장르의 음악을 하나로 묶을 수 있었던 데엔 조지 마이클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1960년대 느낌을 살린 복고풍의 댄스 팝 'Wake Me Up Before You Go-Go'와 'Freedom', 당시로선 세련된 감각의 사운드를 들려준 신스 팝 'Everything She Wants', 불후의 명 발라드 'Careless Whisper' 등 절반 가까운 수록곡들이 세계 주요 국가의 인기순위를 휩쓸면서 왬! 전성기를 여는 것처럼 보였다. ('죽의 장막' 공산국가 중국에서 서양 팝스타로서 사상 최초 대규모 공연을 펼친 것도 이 무렵이었다)

하지만 조지 마이클의 비중이 워낙 컸던 탓에 이들 듀오는 1986년 3집 <Music From Edge of Heaven>을 끝으로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선공개 싱글들인 'Last Christmas', 'I'm Your Man', 그리고 'Where Did Your Heart Go'와  조지의 솔로 싱글 'A Different Corner' 등 전작의 연장 선상에 놓인 곡들 위주였지만 혼란기 탓인지 앞선 성공만큼의 큰 반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조지 마이클의 첫 솔로 음반 `Faith` 표지

조지 마이클의 첫 솔로 음반 `Faith` 표지 ⓒ 소니뮤직코리아


솔로 데뷔작 <Faith>의 대성공... 소속사 계약 분쟁으로 침체기

1987년 본격적인 솔로 활동에 접어든 조지 마이클은 첫 작품 <Faith>로 1980년대를 대표하는 팝스타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한다. (미국 1천만 장, 세계 2500만 장 판매)

노골적인 성적 표현으로 일찌감치 국내에선 금지곡 처분을 받은 'I Want Your Sex'를 시작으로 엘비스 프레슬리의 현대식 재림 'Faith', 'Father Figure', 'Monkey', 명 발라드 'One More Try'와 'Kissing a Fool'을 연이어 히트시키면서 듀엣 시절의 대표작 <Make It Big>을 훨씬 뛰어넘는 성과를 달성한다. (총 4곡의 빌보드 1위 배출)

많은 비평가가 <Faith>를 1980년대의 걸작 중 하나로 언급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전통미 +미래지향의 두 가지 측면을 모두 아우르는 높은 음악적 완성도를 보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3년의 세월을 보낸 후 1990년에 나온 솔로 2집 <Listen Without Prejudice Vol. 1>은 전작만큼의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워낙 <Faith>가 이룬 업적이 컸기 때문에 장엄한 분위기의 빌보드 1위곡 'Praying For Time', 조지 마이클식 댄스팝 'Freedom '90' 등의 완성도 높은 곡들로 채워졌음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의 기대감을 100% 만족하게 하기엔 부족했다.

그리고 1991년 말 깜짝 공개된 엘튼 존과의 듀엣 라이브 싱글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조지의 마지막 빌보드 1위곡) 이후 조지 마이클은 소속사 소니 뮤직과의 계약 분쟁 소송을 겪으며 하락세를 맞게 된다.

1992년 프레디 머큐리(퀸) 추모 공연을 녹음한 또 다른 라이브 EP <Five Live>(1993년)를 시작으로 솔로 3집 <Older>(1996년)를 통해 그의 R&B, 소울 등 미국 흑인 음악에 영향을 밭은 작품들로 재기의 기지개를 켜지만 1980년대만큼의 반향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다행스럽게도 소니뮤직과의 법적 분쟁을 잘 마무리 지으면서 공개한 첫 번째 베스트 앨범 <Ladies & Gentlemen: The Best of George Michael>(1998년)에 이어 1999년엔 올드팝 커버 앨범 <Songs from the Last Century>로 더욱 성숙한 음악을 구사, 20세기의 대미를 멋지게 장식했다.

 조지 마이클 생전 마지막 공연실황 음반 `Symphonica` 표지

조지 마이클 생전 마지막 공연실황 음반 `Symphonica` 표지 ⓒ 유니버설뮤직코리아



우울증, 마약 등으로 인한 건강 악화+활동 중단... 갑작스런 죽음


오랜 기간 그의 발목을 잡은 계약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정작 2000년대 이후 조지 마이클의 활동은 지지부진했다. 무려 8년 만에 신곡들로만 채워진 <Patience>(2004년)로 여전히 녹슬지 않은 감각을 선보였지만 더는 예전 같은 대중들의 환호는 이어지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이 음반은 그의 마지막 스튜디오 음반이 되고 말았다.

이 무렵부터 진행된 약물 중독, 우울증 등으로 더더욱 조지 마이클의 음악 활동은 사실상 중단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몇 곡의 싱글, 개인 통산 첫 라이브 앨범 <Symphonica>(2014년)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는 듯했지만 25일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이전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런저런 이유에 따른, 몇 년으로 한정된 짧았던 전성기는 조지 마이클이란 음악인이 지닌 역량을 모두 보여주기엔 부족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로큰롤, 댄스, 팝, 발라드, 재즈, R&B 등 현존했던 다양한 장르를 자신의 이름으로 아우르는 데 성공했던 일련의 작품들은 지금도 많은 음악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으며 기억되고 있다.

더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여전히 믿어지지 않는 상황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왬!, 그리고 조지 마이클의 음악을 사랑했던 팬의 한 사람으로서 다시 한번 그의 명복을 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상화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jazzkid)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조지 마이클 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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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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