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포스터넷플릭스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이후 촉발된 '촛불'은 국가란 무엇인가에 관한 질문이다. 그건 이 사단을 일으킨 자들에 대한 준엄한 경고이기도 하고, 이런 상황을 막지 못한 자들의 뼈아픈 성찰이기도 하다. 광장은 지금 묻고 있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국가의 주인은 누구인가? 지금 시스템은 이에 부합한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3%> 역시 이런 질문을 던지는 드라마다. 배우들도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도 낯설지만 드라마가 보여주고 있는 이야기와 문제의식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건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에서 익숙한 레퍼런스가 떠오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앞서 던진 세 질문이 비단 한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지금 전 세계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3%>의 배경은 아마도 가까운 미래이며 가상 도시국가다. 이곳은 두 개의 거주 지역으로 엄격히 구분된다. 3%의 사람들이 사는 곳과 나머지 97%가 사는 곳. 전자는 특권을 누리고 후자는 빈곤에 허덕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구조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건 '절차' 때문이다.
여기서는 누구나 일정한 나이가 되면 '절차'를 밟게 되는데, 그 '절차'란 3%의 특권층을 선발하기 위한 시험제도로 보면 된다. 문제는 이 시험이 일생에 단 한번 주어질 뿐이고, 일단 '신분'이 정해지면 '이동'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런 설정은 지금 한국사회와 많이 닮았다. 이 드라마의 '절차'와 '신분'을 한국사회의 '수능'과 '수저론'으로 대체하고 비교해보라. 전혀 위화감이 없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드라마는 지금 한국사회 민주주의 수준에 관한 알레고리로 읽을 수도 있다.
이 드라마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절차'에 참여한 청춘남녀들이 3%에 들기 위해 경쟁하고 때로 사투까지 벌이는 이야기다. 이들이 입소하는 순간부터 3%에 든 자들이 '약속의 땅'으로 떠나기까지 과정이 그려지는데 여기에 주요 인물들의 개인사가 곁들여진다. 이른바 '제5열'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대의'라는 반체제 그룹을 둘러싼 이야기는 이 드라마에 또 다른 층위의 긴장감을 더한다.
청춘남녀들이 경쟁하는 드라마 이야기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미국 예능프로그램 '서바이버' 시리즈를 연상시킨다. 각종 미션을 수행하면서 생존자와 탈락자를 가리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서바이버' 못지않은 암투와 합종연횡이 벌어진다.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 대왕>의 클라이맥스를 그대로 따온 듯한 에피소드도 있다. 이 에피소드에서 일부 등장인물은 그야말로 인간성의 끝을 보여준다.
이런 이야기를 전개하는 한편으로 드라마는 '절차'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린다. 이 드라마에서 '절차'란 누군가에게는 무조건 믿고 지켜야 하는 것이며, 다른 누군가에게는 실체와 존재 이유가 의심스러운 것이다. 물론 이는 그저 표면적인 명분일 수도 있고 내면화한 신념일 수도 있다. 이 드라마는 '절차'를 책임지는 에제우키우라는 인물을 통해 시청자들이 이 문제를 판단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에제우키우는 말한다. '대의'가 말하는 불의나 불평등 따위는 상대적인 개념에 불과하며, 사람은 오로지 가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눌 수 있을 뿐이라고. 즉 '절차'란 기득권자들이 현재 구조를 공고히 지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며, '대의'가 목표로 하는 것 역시 정의가 아닌 또 다른 '절차'를 만들어 이를 지배하기 위한 야심에 불과하단 얘기다.
이를 통해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해 보인다. '절차'가 의미하는 기존 질서란 그 자체로 완전한 것이 아니며 문제제기를 통해 끝없이 손을 봐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조차 거저 얻어지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는 지금 한국사회에서 '촛불'을 켜고 있는 이들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이 글 서두에서 언급한 세 가지 질문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먼저 기존 질서가 누구를 위해 복무하고 있는 것인지, 과연 그것이 적절한 것인지 살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다음 할 일을 정하면 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지금 한국사회에서 '촛불'을 켜고 있는 이들은 드라마 <3%>의 결말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절차'를 의심하고 편법을 동원했던 이들은 선택받았고, '절차'를 존중하고 페어플레이를 했던 이들은 그렇지 못했다.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아니다. 결론은 사람의 일은 언제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는 것. 그저 뜻한 바를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단 얘기다. 과연 한국사회에서 '촛불'은 어떤 그림으로 귀결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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