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사이비>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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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을 쳐부수는 이들은 선하게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악과 선을 대립시키는 구도가 대중의 이목을 끌기 쉽고, 악을 쳐부숨으로써 뭔가 얻어내고 배우는 것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악과 싸우는 존재가 선하지 않더라도 그나마 덜한 악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악을 쳐부수고 남은 것이 성격만 다른 악이라면, 어떤 사람에겐 그것이 더 공포일 수도 있다.

연상호 감독의 <사이비>는 수몰 예정의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교회에 맞서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려낸다. 시골 마을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산 교회가 있다. 장로는 사람을 부리는 전직 사기범죄자이며, 목사는 이전 교회에서 쫓겨난 젊은이다. 목사는 잘 알지 못하지만 사실 장로는 사람들에게 기적을 외치며 돈을 거둬들일 작정으로 온 사람이다. 수몰 예정 지역의 보상금을 모두 타내서 집집마다 우려낸 뒤 마을을 뜨는 게 목적인 '악'이다.

악은 상대적이다

<사이비>내에서 그려지는 악은 상대적이다. 주인공은 노력해서 대학에 가려는 딸의 등록금을 빼앗아 술을 마시는 사람이다. 시골에서 동네 사람들과 노름을 하다가 안 되면 화를 내고, 자신의 가정에 폭력을 행사한다. 폭력을 휘두르는 주인공의 모습은 영락없는 악한으로 그려진다.

딸이나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데 아무 거리낌이 없는 주인공은 도덕성이 결여된 불한당으로 묘사된다. 목사에게까지 폭력을 휘두르자 마을 사람들은 그를 증오하고 그의 악행을 사탄 같은 행동으로 보게 된다. 하지만 주민들을 속여서 돈을 뜯어내는 장로에 맞서는 이는 주인공뿐이다.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안식을 위해 장로에게 돈을 바칠 때 그들에게 장로가 사기꾼임을 주장하는 사람은 주인공뿐이며 주민들은 이를 믿지 않는다. 심지어 행정 권력인 경찰 역시 별 관심이 없다. 다른 사람들의 증오 대상인 주인공이 아니면 추악한 사이비 목사의 추악함을 공격할 이가 없는 것이다. 장로와 주변 사람들을 욕하고 죽으면 끝이지 대체 이런 사기를 믿냐며 일갈하는 주인공의 분노는 돈밖에 모르는 장로의 선전보다 진실에 가깝다.

주인공은 장로의 꾐에 넘어가 장로의 말에 따라 시내에서 일하는 딸의 머리채를 붙잡는다. 강제로 딸을 끌고 가는 주인공의 모습에 부성애는 없다. 그는 자신이 딸에게 사랑받지 못함을 알고 있고, 별다른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행하던 폭력의 연장선상에서 딸을 끌고 가는 것이다. 하지만 딸에게 구원을 약속한 장로는 사기꾼이다. 주인공은 딸을 물건처럼 대하며 폭행하는 동시에 자신의 딸을 범죄자의 손에서 떨어뜨리기 위해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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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일관된 악을 보이는 캐릭터도 있다. 돈밖에 모르는 사기 수배범인 장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악한이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수하의 사람들과 마을에 왔다. 구원을 주겠다는 말도, 안식에 관한 이야기도 전부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장로가 부른 목사는 독특한 모습을 보여준다. 복잡한 과거를 안고 교회에서 쫓겨난 뒤, 장로에 의해 온 목사는 짐짓 순수해 보이는 인물이다. 후반부에 주인공과 대립하는 목사는 처음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마을에 왔다. 장로의 말에 넘어가 정말로 믿음을 펼치는 일을 하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돈을 마을 주민들에 돈을 갈취하기 위한 형식에 불과했음을 알게 된다.

'믿음에 따라 선을 행한다'는 또 다른 믿음

처음엔 억울한 희생자로만 보이던 그는 나중에는 장로와 주인공을 살해하기 위해 살인까지 주저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장로를 찾아가 주민들에게 돈을 돌려주라고 말하던 사람이 후반부에는 주인공에게 칼을 휘두르는 데에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된다. 자신의 믿음에 따라 선을 행한다고 여기는 그의 모습은 점점 극단을 향해 나아간다.

장로가 믿음에는 관심이 없는 추악한 사람임을 알게 되자 그는 사람을 시켜 장로를 살해한다. 그리고 장로를 발견한 주인공에게 대화를 시도한다. 어떻게든 자신의 방법으로 주인공에게 구원을 주려고 했지만 실패하자 목사는 악을 쓴다. 주인공을 진정시키고 딸의 이야기를 하다 칼을 쥐는 목사의 모습에서 그가 가진 선과 악의 모습이 혼란스럽게 나타난다.

영화는 광기에 미친 목사와 주인공의 대립에서 주인공이 살아남는 것으로 끝난다. 하지만 주인공이 광기에 빠진 악을 물리쳤다고 선이 아님이 드러난다. 딸을 착취하려 한 장로의 죽음을 확인하고, 타락한 목사가 경찰에 잡혀간 이후 주인공은 마을에 돌아온다.

하지만 주인공이 발견하는 것은 자살한 딸의 시체다. 낫을 들고 악과 싸운 주인공에게서 딸과 마을 사람들은 악을 읽었다. 구원을 약속한 장로와 목사의 이야기가 딸에겐 주인공의 폭력보다 따뜻하게 다가왔다.

영화는 악한 이들의 모습을 그대로 그려내고, 가정 폭력과 남편과의 갈등을 비롯한 현실적인 문제에 갈등하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주민들이 사기꾼 장로의 이야기에 구원을 받아 변해가는 모습까지도 그려낸다.

주민들은 장로의 말에서 평온과 안정을 찾고, 망해가는 시골 마을에는 기쁨이 들어선다. 비록 주인공에 의해 불에 탈 악한 교회의 전언이었을지라도 말이다. 아버지에게 돈을 빼앗기고 폭행당하던 주인공의 딸에게 장로의 제안은 구원이었다. <사이비>는 사기와 위선, 폭력적인 악 속에서 사람은 무엇을 믿어야하는지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다.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거짓 구원이 갖는 의미도 곱씹어 볼 만하다.

사이비 연상호 믿음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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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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