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1편에서 이어집니다.

 영화 <아가씨>의 한 장면.

▲ 영화 <아가씨>의 한 장면 영화 <아가씨>를 이끌어 가는 건 두 여성 캐릭터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정우와 조진웅 두 남배우의 역할 역시 결코 무시할 수 없다. ⓒ CJ 엔터테인먼트


박찬욱 감독의 신작 <아가씨>가 여성 캐릭터가 주가 되고 여성적 감성이 물씬 담긴 영화라고 해석한다면, 그 안에서 남자 배우들 입지는 상대적으로 좁아진다고 생각할 수 있다. 분량의 많고 적음이 입지의 기준이라면 그럴 수 있지만, 이 두 배우, 그러니까 하정우(38)와 조진웅(40)에겐 다르다.

김민희와 김태리가 각각 아가씨와 하녀로 분하며 이야기의 중심을 이끌어 갔다면, 하정우가 맡은 가짜 백작과 아가씨의 후견인 코우즈키는 남성성의 상징으로 혹은 변태적 욕망으로 가득한 인물이다. 그 자체로 독립적 캐릭터성을 충분히 갖고 있다.

15일 오전(현지시각) 프랑스 칸의 팔레 드 페스티벌 인근 호텔에서 <아가씨>의 주역들을 만났다. 캐릭터와 이야기 흐름에 따라 세 편으로 구분한다. 이 기사는 그 두 번째 '남성 편'이다.

 배우 하정우.

▲ 배우 하정우 하정우가 보기에 이번 <아가씨>는 박찬욱 감독의 작품치고 "순화"된 작품이었다. 하지만 그 순화가 힘의 약화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정서적으로 더 가까워진 것 같다고 자평했다. ⓒ 이선필


① 칸 첫경험 조진웅, 유경험자 하정우

하정우 "기립박수가 길면 참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으로 줄여야 한다! 사람들과 하이파이브를 할 수도 없고, 계속 껴안고 있을 수도 없고(웃음). 박수를 받으며 한국 관객들은 이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증이 들었다. 어떻게 보셨나? 나만 재밌게 봤나? 개인적으론 박찬욱 감독님 영화가 순화됐다는 생각이 들더라. 뭐랄까…. 김민희-김태리의 베드신이 굉장히 정서적으로 가깝게 느껴졌다. 불편하지 않게 볼 수 있었다는 거지. 그게 놀라웠다."

조진웅 "기립박수 감사하지. 속으로 '저 관객들 모두가 이 영화를 다 좋아하진 않겠지?'라고 생각했다. 공식 일정이 끝나니 일종의 허탈감도 들더라. 물론 한국에 가면 또 홍보 일정을 소화해야겠지만,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 새벽 5시까지 술을 마셨다(웃음)."

② 변태 그리고 호색한

가짜 백작은 하녀와 짜고 아가씨의 재산을 가로채려 한다. 말끔한 외모에 화술 또한 뛰어난 이 인물은 철저히 자기 욕망에 충실한 사기꾼. 코우즈키 역시 자기 욕망을 극단적으로 실현한 인물이다. 한국 사람이지만 총독부에 요청해 일본 국적을 갖고 각종 변태적인 소설을 섭렵해간다. 이 두 캐릭터에 대한 배우들 해석이 궁금했다.

하정우 "어떤 외적 해석을 생각하기 보단 그냥 시나리오에 인물이 잘 나와있는 만큼 과감하게 표현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딱 사기꾼! 하고 1차원적으로 보이기보단 뭔가 연민이 들 수도 있는 인물로 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내 평소 모습이 일부 반영돼 있다. 박찬욱 감독님이 절 잘 관찰하신 거 같다. 아마 지금까지 했던 역할 중 가장 창피한 인물이 될 거 같다. 팬들 생각하면 좀 미안하기도 하지만 이번 작품은 날 위해 고른 거다. 박찬욱 감독님의 영화 세계도 궁금했고, 내 세계를 좀 더 확장시키고 싶었다. 백작 역할로 좀 더 자유로움을 스스로에게 선물하고 싶었다."

조진웅 "전작 <암살>에서 신흥무관학교 출신 독립 운동가였다. 조진웅이라는 배우가 받아들이기 힘든 캐릭터긴 하다(웃음). 일본인인 척 하는 조선인이라니. 코우즈키를 미화시켜 말하면 <암살> 속 염석진일 것이다. 독립될 줄 몰랐기에 자기 욕망을 쫓은 인물들이 분명 그 시대에 있었을 거다. 코우즈키는 자기 욕망을 지성적 욕구로 발전시켜버린 거다. 일종의 합리화지. 내가 일본어를 전혀 못해 선생을 끼고 교육을 받았다. 처음엔 잘 못하다가 오기가 들어서 계속 연습했다. 어느 순간 일본어 선생님이 자기네 동네에 있는 꼬장꼬장한 주차장 주인 할아버지랑 똑같다고 하더라."

 배우 조진웅.

▲ 배우 조진웅 일본어를 전혀 못하는 그에게, 이번 작품은 또 하나의 도전이었다. 일본어 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을 때까지, 그가 얼마나 공을 많이 들였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 이선필


③ 배우들이 바라본 박찬욱 감독

하정우 "감독님 세계를 경험하고 싶었다. 예술가 범주에 감독과 배우를 넣을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감독은 기본적으로 자기가 갖지 못한 상반된 모습과 세상을 표현하려는 욕구가 있는 거 같다. 박찬욱 감독님은 좋은 감독 이상으로 좋은 사람이다. 그런 분이 또 다른 세상과 욕망을 작품으로 표현하시려는 게 아닐지. 박찬욱 감독님과의 작업이 앞으로 내게도 좋은 영향으로 작용할 것 같다."

조진웅 "감독님이 상당히 양반이다. 아름다운 선비 같다. 화내는 일이 없고 화내는 일을 만들지 않는다. 내가 촬영 때 늦은 적이 있다. 드라마 촬영 때문에 늦었는데 진짜 죽어 마땅한 일이다. 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지 않나. 어쩌나! 죄송하다고 말해야지. 죄송하다고 하는데 감독님이 오히려 '힘들지 않아?'라고 말해주셨다. 내가 감독이라면 한 커트, 한 시간이 아까울 거 같은데. 그렇게 박 감독님은 현장을 아우른다. 내겐 공부가 된 부분이다. <아가씨> 현장을 즐기기 바빴다."

④ 여전히 연기가 배고프다

하정우 "아까 창피할 수 있는 캐릭터라 말했는데 대중이 요구하는 연기만 할 수는 없다. <추격자> 때도 그랬다. 주변에선 다 반대했다. 내가 배우를 꿈꾸기 시작하면서 좋아하는 배우들의 선택을 보고 그 이유가 항상 궁금했다. 지금도 다 이해할 순 없겠지만 자신의 가치관대로, 느낌대로 가는 게 맞는 거 같다. 배우로서 성장할 수 있는 캐릭터를 하고 싶었다. <추격자>를 택했을 때도 역시 확고함이 있었다. <아가씨>를 통해 1센티미터라도 성장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조진웅 "내가 'zany'(제이니)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어릿광대라는 뜻으로 쓰이는데, 예전엔 무시해도 좋은 사람이 바로 광대지 않나. 못 웃기면 사자의 밥이 되기도 했던. 우리가 시대를 잘 타고나서 스타라고 얘기하는데, 사실 실수를 하면 더 이상 뒤로 갈 곳이 없다. 우리는 스포츠 선수가 아니다. 스포츠 경기는 관객이 없어도 진행되지만, 연극은 관객이 없으면 진행될 수 없다. 늘 연기를 잘 하는 게 꿈이다. 시간과 돈을 내어준 분들에게 재미를 보여주지 못하면 끝이지. 그 생각으로 연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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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 조진웅 칸영화제 아가씨 박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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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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