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텍스트(Text)에는 맥락(Context)이 있습니다. 문화 콘텐츠도 마찬가지입니다. 100% 정치적인 예술이 존재할 수 없듯이, 100% 순수한 예술도 없습니다. 문화 공연을 때로는 인문학적으로, 때로는 사회과학적으로 읽어봅니다. 마음에 안 들면 신랄하게 태클도 걸어보고, 재미있으면 '우쭈쭈' 칭찬도 합니다. 공연을 철학적으로 혹은 정치·사회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항상 성공하지는 않을 겁니다. 시도가 비록 재미(Fun)는 없더라도, 최소한 '뻔'한 리뷰는 쓰지 않으려 합니다. [편집자말]
 뮤지컬 <신과 함께 가라> 공연 장면

▲ 길 위에서 수도원장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길 위에 내던져진 세 명의 수도사. 이들 각자가 길을 걸으며 겪는 에피소드가 뮤지컬 <신과 함께 가라>의 전체 이야기이다. 이들은 방황하고 흔들리고 갈등하면서도, 결국 마음의 소리를 따라 사명을 완수한다. 마치 우리네 삶처럼.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노래로 신을 찬미하고, 노래로 기도하는 칸토리안 수도회. 노래하는 때 이외에는 말을 아끼는 칸토리안 수도회는 교황청으로부터 파문당한 지 오래이다. 그 위세도 줄어 이제는 단 두 개의 수도원만 남았다.

여느 날처럼 조용한 아침을 맞이하던 수도회. 하지만 수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망과 함께 남겨진 건 막대한 빚뿐이었다. 더는 수도원에 있을 수 없게 된 벤노, 타실로, 아르보 세 수도사는 수도원장의 유언을 따르기로 한다. 수도회의 규범집을 챙겨 마지막 남은 칸토리안 수도원이 있는 이탈리아 몬테체볼리로 떠나는 세 수도사. 노래하는 것 말고는 세상 물정을 영 모르는 이들의 세상 밖 나들이는 그렇게 시작된다. '신과 함께' 떠난 이들이 걷는 길 끝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신과 함께-저승편>(관련 기사 : 39살까지 한 번도 못해 본 남자, 지옥행 면할까)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뮤지컬 <신과 함께 가라>(아래 <신함가>). 지난 2월 23일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개막한 <신함가>가 오늘(6일), 아쉬움을 뒤로한 채 관객과의 짧았던 만남을 마무리 짓는다.

여러 단점을 뛰어넘는 묵직한 장점들

 뮤지컬 <신과 함께 가라> 공연 장면

▲ 맛난 상상 기차 환승을 놓쳐서 종착점에 다다른 세 수도사. 밤을 새며 버티기 위해 이들은 상상력을 동원한다. 춥고 배고픈 상황에서 마음을 위로하는 건 바로 상상력이다. 따뜻하게 웃을 수 있는 장면, 어려운 현실 환경을 상상을 통해 극복하는 이들의 노랫소리는 우리가 역경 앞에서 취해야 할 자세를 제시하기도 한다.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뮤지컬 <신과 함께 가라>는 2002년 독일 영화 <신과 함께 가라(Vaya con Dios)>를 원작으로 하는 국내창작뮤지컬이다. 지난 2일 오후 3시에 있었던 뮤지컬 <신과 함께 가쇼! - 이석준도 함께>(아래 <신함가쇼>)에서 작가가 밝힌 바에 따르면, 라이선스를 따기 위해 3박 4일간 원작 감독과 와인을 마시는 '지난한' 작업이 있었다고 한다. 리딩과 쇼케이스를 거쳐 2015년 창작뮤지컬 우수작품 제작지원 선정작 중 하나가 된 덕에 일반관객 앞에 나설 수 있었다.

뮤지컬 <신함가>는 동명 원작의 줄거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원작의 염소가 뮤지컬에서는 빠지면서 대신 염소의 이름은 엄마의 이름이 됐다. 키아라와의 첫 만남 계기도 다소 바뀌었다. 이외에도 등등의 일부 각색이 있지만, 이야기 줄기 자체는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특별한 드라마 없이 잔잔하게 흐르는 원작도 개연성이 그리 높지 않다는 데 있다.

 뮤지컬 <신과 함께 가라> 공연 장면

▲ 집을 찾은 타실로 뮤지컬 <신과 함께 가라>는 원작영화와 달리, 타실로 엄마와 벤노의 말싸움 장면을 추가했다. 타실로 엄마는 왜 타실로를 찾지 않았던 걸까, 왜 타실로는 '그런데도' 엄마에게 돌아가려고 했을까. 그렇게 간신히 돌아간 엄마를 두고 왜 또 수도사의 길을 걸으려 했을까.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원작의 한계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탓에 뮤지컬 <신함가>도 다소 헐겁다. 원작을 변주하는 과정에서 원작보다 나아진 부분도 있지만, 다소 의아한 부분이 생기기도 했다. 각 인물의 동기나 인과관계의 아귀가 딱 맞지 않는다. 벤노는 왜 신학교를 그만뒀고, 그토록 규범집에 집착하는가. 타실로는 왜 엄마에게 갔다가 다시 수도사의 길로 돌아왔는가. 타실로의 엄마 힐데가르트가 왜 '팜므파탈'로 설정되었는지 이해하기 어렵고, 신학교장 라이스가 칸토리안 수도회의 규범집을 노리는 이유도 영화에 비해 명확하지 않다. 이외에도 군데군데 여러 단점이 눈에 띈다. 그런데 왜일까. 한 번 보고 나면, 다시 한 번 보고 싶어지는 이 마성은?

분명 구멍이 있는 작품이지만, 여러 단점을 모두 웃돌고도 남는 묵직한 장점들이 <신함가>에는 있다. 우선 영상. 작품 전체 톤에서 약간 튀는 장면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공을 많이 들인 흔적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무대 장치를 다양하게 쓰지 않고 영상을 통해 대부분의 배경묘사나 상황을 보여준다. 이는 심미적으로 '보는 맛'을 돋울 뿐만 아니라 극의 이해를 높인다.

ⓒ 야긴뮤지컬컴퍼니

넘버는 엄지손가락 두 개가 모자를 정도다. 원작 영화도 수도사들이 부르는 성가가 매우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뮤지컬 <신함가>는 미려한 성가 특유의 분위기를 무대로 끌고 오면서도 대중적인 접근성을 높였다. 서영주(벤노), 이훈진(타실로), 박한근·정휘(아르보)의 화음은 라틴어 성가를 접해본 천주교 신자뿐만 아니라 익숙지 않은 일반 관객도 듣는 데 무리가 없게 한다. 가사의 뜻을 잘 모르더라도, 그저 듣는 것만으로도 감동을 줄 정도로 음악의 힘이 크다. 동숭홀이 그렇게 작은 극장이 아닌데 별다른 장치도 없이 공간을 섬세한 선율이 가득 채운다.

 뮤지컬 <신과 함께 가라> 공연 장면

▲ 벤노와 라이스 오래 전 그만뒀던 신학교에 잠시 돌아온 벤노(서영주)를 향해, 신학교 동기이자 현 신학교장 라이스(이서환)은 돌아오라고 말한다. 각종 희귀 자료에 연구실, 비서까지 제공하겠다는 라이스의 회유에 벤노는 흔들린다. 우리도 길을 걸을 때마다 수많은 유혹에 흔들리며 진짜 나의 길이 무엇인지 몰라 방황한다. 그건 틀린 것도 아니고, 잘못된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배우들은 말할 것도 없다. 8년 만에 대학로로 돌아온 서영주는 경험의 차이가 무대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잘 보여준다. 이제야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은 이훈진은 <마리 앙투아네트>에서의 아쉬움을 완전히 날려버렸다. 이전 필모그래피에서와는 또 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박한근도 훌륭하고, 정휘는 2013년에야 데뷔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다. 김지현(키아라) 배우는 이제 못하는 게 뭔지 잘 모르겠다. <신함가쇼>를 본 관객이라면 지면에 설명하지 않은 다른 배우들의 끼와 실력도 어떤 수준인지 잘 알 터이다.

그런데 <신함가>의 진짜 장점은 영상미도, 음악도, '믿보배(믿고 보는 배우)'들의 '꿀성대'와 열연도 아니다.

'함께'가 아니면 갈 수 없는 우리의 길

 뮤지컬 <신과 함께 가라> 공연 장면

▲ 세상 밖으로 수도원 안에서 성가만 부르던 수도사들에게, 병행5도와 같은 규칙도 지키지 않는 세상 밖 음악은 그저 번잡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키리에 엘레이손'을 부르던 수도사들의 음악과 속세의 노래를 흥얼거리는 버스 승객들의 음악이 '함께' 뒤섞이며 훨씬 멋진 음악이 만들어진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 다른 사람과 화음을 만들어내며 세상 밖으로 나설 용기를 얻는다.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리는 살면서 너무 많은 선택 앞에 놓이고, 그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주체적으로 결정하지 못하고 어디론가 끌려가듯 이 삶을 살아가는 이 시대의 많은 분들에게 마음의 소리를 따라 담대히 내 앞에 주어진 길을 걸을 수 있는 의지와 희망을 이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 싶다." - 연출의 말 중에서

연기하는 사람으로서는 이미 입지전적의 인물이 된 이석준. <신함가>는 그의 첫 연출 데뷔작이다. 작품 완성도만 본다면 그의 데뷔작은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신함가>는 무대가 어떤 질문과 대답을 세상에 던져야 할 것인지 고민이 투여된 작품이다. 뮤지컬 <신함가>의 진짜 장점은 바로 이 고민의 진정성으로부터 시작한다.

2002년 독일 작품이 2016년 대한민국의 무대 위에 펼쳐진 건, 작금의 시대에 마음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혹은 듣더라도 따라가기 주저하는 이들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신함가>의 인물들도 그랬다. 학구열이 높은 벤노는 신학교에 즐비한 희귀 악보에 마음을 빼앗기고, 타실로는 오랫동안 돌봐드리지 못한 엄마의 곁에 머무르려고 한다.

그래서 '함께' 가야 한다. 아픈 아르보를 위해 방황하던 타실로가 돌아오고 아르보는 그 타실로를 데리고 벤노에게 갔다. 세 수도사는 드디어 무사히 몬테체볼리에 도착한 과정은 모두 함께여서 가능했다. 나의 길이 무엇인지 깨닫는 것, 그리고 그 험난한 가시밭길을 걷는 것. 혼자서는 할 수 없지만 함께라면 가능하다.

'신'과 함께 가라고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신은 단순히 하늘 위에 있는 절대자 유일신을 말하는 게 아니다. 신은 인간을 창조할 때 이미 사람의 가슴 속마다 신성을 불어넣었다. 그 신성은 소리굽쇠가 되어 우리가 태어난 이유와 걸어가고자 하는 길에 대해 끊임없이 울림을 주고 있다. 혼자서 부를 수 없는 노래를 셋이서 함께 부를 수 있는 것처럼 이 각자에게 부여된 신성은 함께 화음을 만들어내며 서로의 음악을 완성해간다. 함께 가야 할 신은 당신 바로 옆의 누군가이다.

"두렵기는 해도, 그리 나쁘진 않겠지. 그 길 따라 걸어가면, 무얼 보고 누굴 만나려나. 이 길은 어디로 우리들을 이끄는가. 모르는 길 간다해도 난, 길 위에 서 있네. 두려워 피하지 않아. 길을 나서네." - 뮤지컬 <신과 함께 가라> No.02 '길 위에서' 중에서

조금 돌아가더라도 괜찮다.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는 키아라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중요시하는 아르보는 새로운 길을 보여줬다. 하지만 키아라는 자신의 길이 아르보를 향해 나 있다는 걸 깨달아도 망설인다. 괴로워하는 아르보의 욕조 안에 들어가 그를 위로하는 키아라는 또 어떤 영향을 줬는가. 아르보 역시 자신의 길이 몬테체볼리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벤노와 타실로를 위해 끝까지 함께 했다.

그러나 결국 키아라와 아르보는 다시 서로를 가리키는 교차점을 향해 달려간다. 직장을 그만 두고 뒤늦게 연기를 시작했다는 김사랑(비서) 배우처럼, 조금 돌아온 길이더라도 때가 되면 그 길 위에 서 있을 수 있다.

키아라와 아르보 뮤지컬 <신과 함께 가라>에서 사회부 기자인 키아라(김지현)와 수도사 아르보(박한근)는 서로를 좋아하게 된다.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고 따라가는 키아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좇으려는 아르보를 만나 변하게 된다. 아르보 역시 자신이 걷고 싶은 길이 키아라를 향해 있음을 후에야 깨닫는다. 그렇게 '함께' 걷는 길이 시작된다. 하지만 첫 번째 키스신은 다소 뜬금없다.

▲ 별에게 들어요 뮤지컬 <신과 함께 가라>에서 사회부 기자인 키아라(김지현)와 수도사 아르보(박한근)는 서로를 좋아하게 된다.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고 따라가는 키아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좇으려는 아르보를 만나 변하게 된다. 아르보 역시 자신이 걷고 싶은 길이 키아라를 향해 있음을 후에야 깨닫는다.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나만 혼자 그 길을 걷겠다고 무작정 나서는 게 마냥 좋은 건 아니다. 이훈진 배우는 그렇게 걷다가 뒤를 돌아본 뒤, 자신이 놓쳤던 것을 발견하고 눈물지었다. 이서환(라이스) 배우의 말처럼 그건 이기적인 길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서환 배우는 덧붙였다. "그러한 갈등과 상처 속에서 자신이 더 확신을 하게 됐"음을. 내 마음속 소리굽쇠가 누구와 공명하며 어느 길을 가리키는지만 알면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그리 중요치 않다. 벤노가 악보를 버리고, 타실로가 어머니를 떠나서 다시 그 길 위에 섰지 않은가.

박한근 배우의 설명처럼 이 작품은 이야기든 콘셉트이든 뮤지컬 시장의 대세 혹은 주류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자리에 앉아 있는 관객들 가슴에 따뜻함을 한 움큼씩 주기 위해 연출과 배우 그리고 스태프 전체가 최선을 다했다는 게 느껴진다. 원작의 메시지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 덕분에 <신함가>는 자리를 채워준 관객에게 희망과 용기를 말한다. 이 따뜻함이야말로 바로 <신함가>만의 진짜 매력이다.

김효성(역무원) 배우처럼 아직 자기 마음의 소리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어도 괜찮다. 당신의 마음속에서 울리고 있을 소리굽쇠에 귀 기울일 용기가 아직 없다면 이 작품이 당신에게 힘을 줄 것이다. 처음 둥지를 벗어나 길 위에 던져진 세 수도사가 그랬듯 일단 발걸음을 내딛다 보면 그 소리가 조금씩 들리리라. 세상 밖으로 길을 떠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그러니 함께 갈 그 길을 나설 준비를 하자.

"이 순간을 즐겨. 음악이 함께 있잖아. 이 순간을 즐겨. 세상이 너를 기다리잖아. 두려워 피하지마라. 언제나 새로 태어나. 모든 게 심장이 뛰게 해." - 뮤지컬 <신과 함께 가라> No.06 '세상 밖으로' 중에서

'길 떠남'을 시작하기 좋은 계절이 돌아왔다. 아직 주저하는 사람들의 가슴속 소리굽쇠를 울려, 함께할 음악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라도 이 작품이 금방 돌아올 것이라 믿는다.

뮤지컬 <신과 함께 가라> 포스터 배우 이석준이 연출로 도전한 창작 뮤지컬 <신과 함께 가라>. 아직 덜 세공된 보석처럼 어딘가 부족하고, 군데군데 아쉬움도 묻어난다. 하지만 원석으로서의 가치는 그 어떤 뮤지컬과 견주어도 돋보일만큼 '특별'하다. 이 작품을 재미있게 봤다면, 원작 영화 <신과 함께 가라>도 꼭 볼 것을 추천한다.

▲ 뮤지컬 <신과 함께 가라> 포스터 배우 이석준이 연출로 도전한 창작 뮤지컬 <신과 함께 가라>. 아직 덜 세공된 보석처럼 어딘가 부족하고, 군데군데 아쉬움도 묻어난다. 하지만 원석으로서의 가치는 그 어떤 뮤지컬과 견주어도 돋보일만큼 '특별'하다. 이 작품을 재미있게 봤다면, 원작 영화 <신과 함께 가라>도 꼭 볼 것을 추천한다. ⓒ 창작컴퍼니다



뮤지컬 신과함께가라 이석준 수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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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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