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현주

최근 종영한 KBS 2TV 주말연속극 <가족끼리 왜 이래>에서 차강심 역을 맡았던 배우 김현주 ⓒ 에스박스미디어


한 CF서 '국물이 끝내줘요'라는 유행어 한 마디로 스타덤에 오른 것이 벌써 18년 전. 배우 김현주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대중의 곁에 머물러 왔다. 특히 요즘엔 아이들 사이에서도 인지도가 쑥 올라갔다. 최근 종영한 KBS 2TV 주말연속극 <가족끼리 왜 이래> 덕분이다. 이 작품에서 차순봉(유동근 분)의 첫째 딸 차강심을 연기했던 그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7살짜리 꼬마 애가 나를 자기 엄마보다도 먼저 알아보더라"며 활짝 웃었다.

"그 아이가 참 귀여웠던 게, 요즘 만화는 1탄 2탄 이런 식으로 나오잖아요. 저에게 '그 드라마는 몇 탄까지 있어요?' 하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대답해 줬더니 그 엄마가 '얘가 <가족끼리 왜 이래>를 무척 좋아해 빠짐없이 다 본다'고 하셨죠. 그런 말을 들을 때 정말 좋았어요. 아이들이 봐도 괜찮은, 가족 모두가 다 볼 수 있는 드라마였잖아요. 또 요즘 같은 때에 '좋은 드라마' '착한 드라마'라는 칭찬을 받은 작품의 주연이었다는 것에도 자부심을 느꼈죠. '이런 기회가 또 언제 올까'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 말대로 말기 암 판정을 받은 차순봉이 가족들과의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하는 과정을 그려냈던 <가족끼리 왜 이래>는 자극적인 요소도, 그렇다고 억지 눈물이나 웃음도 없는 보기 드문 수작이었다. "처음부터 결말을 알고 있었지만, 점점 더 아버지는 물론이고 (사실을 숨겨야 한다는 생각에) 고모(양희경 분)를 쳐다보지 못하겠더라"는 그는 "<가족끼리 왜 이래>는 드라마이기도 했지만 가는 시간을, 그리고 부모님을 잡을 수 없는 실제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작품 기다리며 쉬는 시간, 편치만은 않지만...두려워하지 않겠다"

김현주가 생각하는 차강심의 매력은 '현실성'에 있다. 밖에선 프로 정신으로 무장한 대기업 비서실장이지만, 집에만 돌아오면 가족에 무심한 건어물녀가 되고 마는 차강심의 모습이 요즘 여성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차실장'과 '차강심'의 다른 모습을 표현하는 게 (드라마 제작) 여건 상 쉽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가족끼리 왜 이래>에서는 가능했다"는 김현주는 "덕분에 캐릭터가 더 풍부해지고 입체적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실제 제 모습도 차강심과 비슷해요. 집에선 머리가 묶여 있는지, 풀려 있는지 모르는 채로 있죠. 그래서 연기할 때도 좋았어요. 트레이닝복 바지는 아예 아침부터 입고 있고, 무릎 나오라고 일부러 무릎을 꿇고 앉아있기도 했고요. 반팔 티셔츠는 일부러 목 부분을 당기기도 하고, 빨래 짜듯이 꼬아놓기도 했어요. 차강심이 신은 수면양말은 다 실제 제가 쓰던 거예요. (웃음)

그런 게 겉보기에는 아닌 것 같지만요, 오히려 차실장 때 의상보다 더 많이 신경 써야 해요. 차실장 의상은 간단하잖아요. 정장이나 투피스에 예쁜 가방만 들면 끝이니까요. 머리 모양이야 늘 같았고. 하지만 차강심은 아니었어요. (머리도) 그냥 흩뜨려놓은 것 같지만 그게 다 한 올 한 올 장인 정신을 담은 거라니까요. (웃음) 늘 '어떤 게 더 촌스러울까' '어떤 게 더 웃길까'를 고민해야 했죠."

 배우 김현주

ⓒ 에스박스미디어


 배우 김현주

최근 김현주의 필모그라피 중 시선을 끄는 것은 옴니버스 인권 영화 <시선 너머>다. 상사의 폭력에 상처입은 직장 여성을 연기했던 김현주는 "그동안 솔직히 영화와 연이 닿지 않았는데, 좋은 감독님과 작업해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일이라 생각했다"며 "의미가 담긴 영화라는 점에서도 중요했지만 영화 제작 현장 속에서의 나를 시험해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있었다"고 했다. 이어 "현재 영화계에서 여배우가 설 데가 적은 게 사실"이라는 그는 "예전엔 영화 하는 배우들 보면 살짝 배도 아프고 했지만, 이젠 누구라도 서서 분위기 전환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응원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 에스박스미디어


하지만 어느덧 한껏 위축돼 버린 드라마 제작 환경에서 이와 같이 애정을 쏟아 부을 캐릭터를 만나는 것이 점점 쉽지 않아지는 게 사실이다.

김현주 또한 "나이 때문에라도 설 자리가 조금씩 좁아지는데다가, 드라마에서 보여줄 수 있는 연기나 표현의 수위 같은 것들이 한정되어 있다 보니 선택의 폭이 줄어드는 것 같다"며 "점점 시놉시스를 읽는 수가 줄어든다"고 털어놨다. 이어 "엄마 역할을 두려워하진 않지만, 그가 어떤 인물이며 그 인물에 내가 흥미를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그는 "하지만 그런 점에서 내 구미를 당기는 역할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아쉬워했다. 

"그렇다고 남 탓만 할 수도 없는 게, 제가 (다양한 캐릭터를) 꾸준히 보여드리려 시도하고 노력해야 했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제가 좀 튀지 않게, 단정하게 살려고만 하다 보니 이미지가 한정된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 좀 새로운 캐릭터를 제안 받을 땐 무조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 때도 '누가 나를 이런 역할에 생각해 주나'라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으로 했거든요. 그렇게 쉽지 않게 오는 작품은 무조건적으로 잡고 싶죠."

그렇게 김현주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조바심내지 않고 가는 게 중요하다"며 마음을 다잡고 있다. 차기작을 두고도 김현주는 "작품을 기다리며 쉬는 시간이 그렇게 편하지는 않다. 지금도 좋은 작품이 있다면 올해가 가기 전에 하고 싶지만, 설령 올해가 안 된다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기다릴 생각"이라며 "이 시기를 두려워하면 안 될 것 같다"고 강조했다.

"일은 많았지만, 어떤 것으로도 인정 못 받았던 시기엔...상처 받기도"

사실 김현주에게 이번 인터뷰는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다. '연기 공백기'는 그리 짧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인터뷰를 비롯한 외부 노출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사실 작품이 끝나면 숨고 싶고, 오로지 '인간 김현주'를 위한 삶을 살고 싶다"는 김현주는 "또 내 경우엔 그 시간을 잘 보내야 작품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연예계 생활에 익숙지 않았던 과거 의도치 않게 겪어야 했던 일 또한 스스로의 활동 반경을 좁게 만든 이유 중 하나였다.

"(옛날엔) 일을 너무 많이 했죠. 일 년에 드라마를 세 개씩 찍고, MC에 DJ에 영화도 찍고…. 솔직히 그때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어떤 걸로도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했고, 나를 제대로 된 계획을 갖고 만드는 게 아니라 그냥 소모해 버리려는 회사에도 서운한 마음이 있었죠. 처음엔 잘 모르니까 시키는 대로 여기저기 잘 다녔어요. 그게 재밌기도 했고요. 그런데 (스케줄이 많아) 어느 순간 여기저기서 '늦는다'며 욕만 먹으니까 신경질이 나더라고요. 누가 저를 낭떠러지에서 놓아 버리는 느낌이었어요.

그렇게 4~5년을 쉼 없이 일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니 저는 이것저것 많이 하긴 했는데 대중에게 보여줄 무언가가 남아있지 않는, 영양가가 없는 사람이더라고요. 그때부터 많이 예민해지기가…심각했어요. 포악해졌죠. (웃음) 그러면서 스스로의 정체성도 흐려지는 것 같았고요. 그런 시기를 겪고 나니 '앞으론 연기 외의 다른 노출은 차단해야겠다'는 생각이 단호해졌어요. 제 얘기를 꺼내는 것도 무척 싫어졌고요."

 배우 김현주

ⓒ 에스박스미디어


 배우 김현주

차강심의 모습을 보고 많은 드라마 팬들이 '김현주와 연하남의 로맨틱 코미디를 보고 싶다'는 바람을 내놓기도 한다. 이를 두고 "바로 그거다"라며 크게 웃은 김현주는 "아예 코믹하거나, 누가 보면 욕이 나올 정도로 알콩달콩한 작품도 해 보고 싶다"며 "그런데 내 상대 남자 배우가 좋아할까 모르겠다"고 했다. 이어 "생각보다 다양한 캐릭터의 남자 배우와 만나보진 못했던 것 같다"는 그는 "앞으로 연령대나 캐릭터가 다양한 배우와도 작업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 에스박스미디어


자신을 둘러싼 반응마저 친구에게 대신 검색해 보고 알려 달라 할 정도로, 연기 외의 세상일엔 귀를 닫고 살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크로키를 배우러 스케치북에 열심히 선을 긋고 있던 그의 모습에 선생님이 '참고 있는 게 너무 많다'며 벽에 전지를 붙여 줄 정도였다고.

당시를 "(가슴 속에) 뭔가 있었는데, 맨날 웃고 좋은 척만 했던 것 같다"고 돌이킨 김현주는, 결국 이를 "모질고도 독하게 견뎌내는" 방법을 깨달아 갔다. "그런 시간을 잘 견디는 게 중요하고, 또 그런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그는 "그러면 인생을 보는 시선 같은 것도 많이 달라지는 것 같다"고 했다. 앙금을 털어낸 후 남은 빈자리엔 새 단장이 필요한 법. "계속 이대로만 있으면 내가 잊혀지고 뒤로 물러나게 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는 "새롭게 적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번 인터뷰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이 같은 변화에는 그의 옆에서 오랜 시간 변함없이 함께해 온 팬들도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주고 있다. 지난해 KBS 연기대상 시상식에서도 김현주의 팬들은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켰다. "되게 웃긴 애들"이라는 말로 입을 연 그는 "(시상식에서) 나를 비롯해 <가족끼리 왜 이래> 팀에게 환호하는 모습에 좋으면서도 부끄럽기도 하고 고맙고 그랬다"고 했다.

이어 "예전엔 그냥 '내 팬'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젠 그게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을 통해 귀여움이나 순수함 같은 감정들을 잊지 않게 되는 것 같다"는 김현주는 "내 팬뿐만 아니라 모든 팬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그렇게 끊임없이, 또 아무런 대가도 없이 오랫동안 좋아할 자신이 나에게는 없다"고 덧붙였다. 한동안 이들을 두고 고마움을 전하던 데뷔 20년차 여배우는 마지막으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을 향한 애정 어린 조언 또한 잊지 않았다.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 사실 크게 없어요. 제 삶에 만족하고 감사해 하면서 자연스럽게 살면 어떤 연기를 해도 자연스럽게 묻어날 거라고 생각해요. 다만 변화 속에서는 뒤처지지 않으려 노력해야죠. 저는 원래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이에요. 안전한 걸 좋아하고요. 하지만 실패나 도전, 변화 없이는 또 발전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혹시 지금 주저하는 분들이 있다면…'도전!' 한 번 외치고 시작하셨으면 좋겠어요. 저도 이제는 도전해 보려고 해요!"

김현주 가족끼리 왜 이래 유동근 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 김상경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