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선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의 장형윤 감독이 27일 오전 서울 연남동 제작사 '지금이 아니면 안돼' 사무실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애니메이션은 90분짜리 한편 만드는데 5년 정도 걸리거든요. 원래 2,3년이면 만들 수 없는데 그것도 시스템이 안정화되지 않아서 그런 거고요." ⓒ 이정민


|오마이스타 ■취재/조경이 기자·사진/이정민 기자|

디즈니 애니 <겨울왕국> VS. 한국 애니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제작비: 1600억 원 VS. 7억 원
관객수: 1000만 VS. 3만

1600억 원의 제작비를 들인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이 겨우내 국내 스크린 시장을 강타하더니 기어코 10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실사 영화를 좋아하는 한국 관객을 염두에 둔다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로 인해 <겨울왕국>은 '애니메이션 사상 첫 1000만 돌파'라는 깨기 어려운 대기록을 남기게 됐다. 

<겨울왕국>이 한반도를 점령하다시피 할 때, 국내 애니메이션이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도 개봉했었다. 제작비 7억 원을 들인 이 애니메이션은 홍보비가 없어서 제대로 된 영상 광고나 포스터조차 노출하지 못했다. 토요일 오후, 극장에 가 보니 상영관에는 5명의 관객이 앉아 있었다. 애니메이션 광팬이 아니고서야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었던 것일까.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는 창의력과 재미를 두루 갖춘 작품이다. 제작사는 (주)지금이 아니면 안돼, 이 회사의 대표는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의 연출을 맡은 장형윤 감독이다. 5년 동안 공을 들인 그의 첫 장편 데뷔작은 결국 마케팅 경쟁과 돈의 논리에서 밀려 3만 명 정도만 봤다. 20만 명이 들어야 손익분기점을 맞출 텐데, 예매도 거의 없어서 그나마 얼마 없던 스크린마저 다 내주게 됐다. 손해 봤다.

모두가 '렛 잇 고'에 취해서 엘사를 그리워하고, 엘사와 김연아를 합성하고, 많은 가수가 <겨울왕국>의 OST를 다시 부를 때,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의 장윤현 감독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겨울왕국>의 천만 돌파 기획기사 준비로 들썩거릴 타이밍에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있는 사무실로 그를 찾아갔다.

평범한 젖소 이야기에 인공 위성까지 등장? "액션 욕심 있었다"

- <겨울왕국>의 1000만 기록이 달성되었습니다. 영화를 보았는지요.
"보지 않았습니다(웃음). 제 영화에 미안해서 당장은 보지 않을래요. 근데 나중에 얼마나 재미있는지 확인해야겠죠? 1000만이라는 기록은 좀 다른 의미인 것 같아요. 그동안의 애니메이션은 성인까지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어요. 근데 1000만이라는 건 성인도 다 봤다는 거거든요. 이제 애니메이션이 '가족 영화'라는 하나의 장르로 관객에게 어필했다는 것입니다. 충분히 성인도 즐길 수 있는 장르라는 것을 증명한 셈이 됐습니다.

 애니메이선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의 장형윤 감독이 27일 오전 서울 연남동 제작사 '지금이 아니면 안돼' 사무실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국 애니메이션이 부족한 면도 있을 수 있을 거 같아요. 하지만 더 좋은 작품이 나올 거라고 생각을 하고 관객들이 지금 엄정한 잣대보다는 재밌게 보면 볼 수 있으니 '보고 평가를 해주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제가 볼 때는 한국 애니메이션이 점점 더 잘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 이정민


-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대박 흥행이 부럽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의 현주소는 어떻습니까.
"1년에 1편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나올 수도 있고, 그마저 없을 수도 있어요. 2008년과 2009년에는 한국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과거 우리나라는 OEM 방식으로 미국과 일본의 작품의 하청을 받았습니다. 심슨도 만들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도 만들었죠. 그러다가 1990년도에 들어서 '우리도 애니메이션 강국이 될 테야'라는 의지로 <원더풀 데이즈>와 같은 대작을 내놨어요.

도전의 시기였고 돈도 많이 몰렸는데, 몇 편이 크게 실패하면서 다시 애니메이션을 만들지 못하게 됐습니다. <뽀로로> <로보카폴리> <또봇> 등 TV 애니메이션은 자주 노출되어 캐릭터 사업으로 이어졌죠. 하지만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노출 시기가 굉장히 짧아서 캐릭터 사업 등으로 이어지기가 힘들어요. <겨울왕국> 정도의 흥행과 신드롬이라면 가능하겠지만."

내 이름은 우리별 1호. 무게 48.6kg, 나는 인공위성이다. 오랫동안 한 곳을 바라보다 보면 점점 좋아하는 것이 생기게 된다. 뜨거운 김이 나는 커피,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그리고 아이들. 발사된 지 20년이 지난 지금 수명이 다해 정지해 있다. 갑자기 노랫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나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노래, 따뜻함, 누군가의 목소리. 이 노래를 부른 사람을 만나고 싶다... (인공위성 '일호' 역의 정유미 내레이션)

-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의 스토리는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요.
"얼룩소 캐릭터를 그려 놓은 게 있었어요. 곰 같은 애들을 비롯해서 웬만한 동물은 이제 거의 다 나왔는데 얼룩소는 아직 주인공으로 나온 적이 없어요. 원래는 대관령에 있는 젖소가 풀을 뜯어 먹다가 대관령 록페스티벌에 온 인디밴드 남자 가수한테 반해서 서울로 쫓아가는 내용이었어요. 근데 액션에 대한 욕심으로 이야기를 좀 변형했죠. 얼룩소가 서울에 오기는 하는데 너무 잔잔해서 우주를 도는 위성을 넣게 됐습니다. 외롭게 우주를 돌다가 어떤 사람의 노래를 듣고 지구로 떨어지는 거죠. 두 가지 이야기를 합쳤어요."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는 상황적 설정만으로도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마음을 잃고 얼룩소로 변해버린 음악가 경천(유아인 목소리 연기), 마법의 힘으로 소녀로 변해버린 한국 최초의 인공위성 우리별 일호(정유미 목소리 연기), 그리고 멋진 외모의 마법사였지만 화장지로 변해버린 멀린까지. 눈길을 사로잡을 매력적인 캐릭터가 가득하다.

 인간 옷을 입어보는 얼룩소 경천

인간 옷을 입어보는 얼룩소 경천 ⓒ 지금이 아니면 안돼


 귀요미 마법사 '멀린'

귀요미 마법사 '멀린' ⓒ 지금이 아니면 안돼


"꿈이라면 나중이 아닌 지금 시작하세요"

- 위성, 젖소, 휴지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어냈는지 궁금해요.
"우주에서 위성의 수명은 5년 정도 됩니다. 5년 정도가 지나면 그냥 우주에 계속 떠도는 쓰레기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 위성에 '마음'이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우주에서 계속 지구궤도를 돌면서 우주를 바라보는 마음은 외로움일 것 같아요. 거기서 시작했습니다.

젖소에는 제 성격을 좀 반영했어요. 내성적인 A형 젖소입니다. 이 젖소는 다른 사람과 관계도 잘 맺지 못하고 음악도 강박관념 때문에 못하고, 오랫동안 좋아했던 여자도 있지만 그녀도 자신을 보지 않아요. 재능에 대한 확신도 없는 상태죠. 지긋지긋하고 가난한 삶을 투영했어요.

휴지는 <반지의 제왕> 간달프 정도로 생각했어요. 휴지 마법사인데, 휴지를 쓰면 마법이 사라지는 겁니다."

- 저는 휴지 마법사를 보고 '빵' 터져서 깔깔대며 웃었어요. 다른 캐릭터도 재밌었고요.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나요.
"아이디어 노트가 있어요. 평소에 생각도 많이 하고 그림도 많이 그려요. 그렇게 습작을 계속 하다가, 작품에 맞게 적절하게 찾아 써요."

<어쩌면 나는 장님인지도 모른다>로 데뷔한 장형윤 감독은 <편지> <그 여자네 집> <아빠가 필요해> 등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2008년 옴니버스 애니메이션 <인디 애니박스: 셀마의 단백질 커피> 중 '무림일검의 사생활'로 제12회 SICAF 국제애니메이션 영화제 일반단편부문 우수상, 제7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관객상을 받았다.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는 장 감독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서울애니메이션센터가 주최한 후원작 심사를 거쳐 현금 4억 원, 현물 5천만 원의 지원을 받아 제작했다. 

  애니메이선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의 장형윤 감독이 27일 오전 서울 연남동 제작사 '지금이 아니면 안돼' 사무실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유미씨 회사로 시나리오를 보냈었어요. 유미씨가 직접 읽어보았는데, 휴지 마법사 캐릭터 '멀린'이 재미있다고 하더라고요. 자기가 그 역할을 할 수는 없지만, 그 캐릭터가 재미있어서 하고 싶다고. 개런티 없이 해주셨습니다" ⓒ 이정민


- 감독님은 언제부터 애니메이션에 빠져들었나요.
"그냥 보통 학생처럼 공부해서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어요. 그림에 관심은 있었지만 잘 그리는 편은 아니었죠. 그런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을 보면서 '나도 저런 거 하고 싶다'는 욕구가 굉장히 강하게 들었어요. 좋은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를 보면서 심리적, 감정적 경험을 이어가고 싶었고, 직접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제대 후에 '한 번뿐인 인생인데 회사의 부품 같이 살고 싶지 않다. 열정을 쏟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게 됐어요. 졸업하고 2003년 한국영화아카데미 애니메이션학과에 들어갔고, 2년 동안 공부했어요. 정말 진짜 너무너무 좋았어요. 그 시간이"

- 뭐가 그리 좋던가요.
"늘 막연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만 있었고 아무것도 실현하지는 못했거든요. 욕구만 있었죠. 게으르기도 했던 것 같고요. 근데 막상 한국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가니 정말 모두 영화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거예요. 신났어요. 집에도 안 가고 학교에 침낭 같은 거 가져다가 계속 스토리, 캐릭터 등 애니메이션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거죠. 만날 모여서 영화 이야기를 하니까 재미있었어요. 그때 단편 3개를 만들었습니다."

- 제작사 이름인 '(주)지금이 아니면 안돼'가 참 독특해요.
"2005년에 사업자를 냈습니다. 애니메이션을 한다니 주위에서는 '성공하기 어렵다' '돈 벌어서 취미로 해라' '직장 다니다가 나중에 해'라고 하더라고요. 당시 제가 노트에 적어둔 말 중에 '지금이 아니면 안돼. 사랑도 영화도 시도 음악도 지금이 아니면 안돼. 나중엔 너도나도 변할 테니까'라는 글이 있더라고요. 또 '난 인생에 적금을 들지 않겠어'라고 적어뒀어요. 나중에 하면 못 할 거 같아서 '그런 심정을 회사 이름으로 적어둬야겠다' 싶어서 이름을 그렇게 짓게 됐습니다."

"극장용 한국 애니메이션 침체? 부디 보고 평가해달라"

 애니메이선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의 장형윤 감독이 27일 오전 서울 연남동 제작사 '지금이 아니면 안돼' 사무실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애니메이선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의 장형윤 감독이 27일 오전 서울 연남동 제작사 '지금이 아니면 안돼' 사무실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는 2011년 220만 관객을 돌파한 <마당을 나온 암탉>의 뒤를 이을지, 애니메이션 관계자 사이에서 관심이 높았어요. 그런데 어떤 요인으로 흥행 성적이 저조한 것 같은가요.
"아이디어도 많고 캐릭터도 기발한데 중심 이야기가 안정적이지 않다는 의견을 들었어요. 또 하나는 자본의 문제도 있는 것 같아요. <마당을 나온 암탉>은 27억 원의 홍보비가 들어간 작품이에요. 그리고 극장을 가지고 있는 메이저 배급사(롯데엔터테인먼트)가 배급을 담당했고요. 아무래도 대기업 배급라인의 영향력이 있었다면 좀 더 잘 될 여지가 있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애니메이선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의 장형윤 감독이 27일 오전 서울 연남동 제작사 '지금이 아니면 안돼' 사무실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 국내 애니메이션에 대한 기대감이 낮은 것 같아요. 왜 그럴까요.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잘 만들어서 성공한 회사가 별로 없어요. 하나 만들고 실패하면 다음 작품을 못 내놓으니까 기술의 축적이 빠르게 전개될 수 없는 거죠. 대부분 처음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회사입니다. 감독도 잘하려면 2, 3개 작품은 해야 하는데 보통 한 작품 하고 망하면 다시 못 만들고 투자자도 없어요. 또 지금까지 손익분기점을 넘긴 작품이 <마당을 나온 암탉> 이후에 거의 없어요. 투자자에게는 자금회전율도 중요한데, 애니메이션은 90분짜리 한편 만드는데 5년 정도 걸리거든요. 원래 2, 3년이면 만들 수 있는데 그것도 시스템이 안정화되지 않아서 그런 거고요."

- 우리별 '일호'는 정유미, 마법에 의해 얼룩소가 된 '경천'은 유아인이 목소리 연기를 했어요.
"정유미씨 회사로 시나리오를 보냈었어요. 유미씨가 직접 읽어보았는데, 휴지 마법사 캐릭터 멀린이 재미있다고 하더라고요. 자기가 머린 역할은 할 수는 없지만, 그 캐릭터가 재미있어서 이 작품에 참여하고 싶다고 했어요. 개런티 없이 일호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유아인씨는 정유미씨와 친해서 '재미있는 거, 애니메이션 있는데 같이 할래?' 그렇게 정유미씨가 권해서 같이 하게 됐어요. 유미씨가 저한테 '친구랑 같이해도 되냐'고 해서 '혹시 유명한 유아인 이런 애 아니야?' 그랬는데, 진짜 유아인이었어요(웃음). 캐릭터와 잘 맞아서 정말 배우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 아직도 한국 애니메이션을 불신하고 보지 않는 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한국 애니메이션이 부족한 면도 있을 수 있을 거 같아요. 하지만 더 좋은 작품이 나올 거라고 생각해요. 엄정한 잣대보다는 '재밌게 보면 볼 수 있으니 보고 평가해달라'고 하고 싶어요. 제가 볼 때는 한국 애니메이션이 점점 더 잘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 차기작 계획을 알려주세요.
"<아빠가 필요해>라는 단편을 장편으로 발전시키려고 해요. 소설가인 늑대 아빠에게 어느 날 인간 딸이 생겨요. 그 딸을 키우는 이야기입니다. (언제 볼 수 있느냐고 묻자) 3년 뒤에요."

 장형윤 감독, 정유미(일호 목소리), 유아인(경천 목소리)

장형윤 감독, 정유미(일호 목소리), 유아인(경천 목소리) ⓒ 지금이 아니면 안돼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겨울왕국 정유미 유아인 장형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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