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드라마 스페셜 2020-나들이>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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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에 걸린 영란씨
소파에서 잠을 깬 영란씨, 그의 눈은 아직 현실로 돌아오지 못한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라는 듯 허공을 헤매던 그녀의 눈에 익숙한 집안의 모습과 벽에 걸린 가족들의 사진이 눈에 들어오자 그제야 영란 씨는 현실의 시간에 한 발 들어선다.
잘 손질된 화단에 장독대, 마당까지 너른 번듯한 이층집, 그 안을 채운 시간의 두께가 느껴지는 가재도구들, 그곳에 영란씨라는 이름를 가진 노인이 홀로 산다. 한때는 음식 장사로 성공을 거둬 신문 지상에 오르내렸던 영란씨지만 이제는 몇 개 되지도 않는 계단조차 내려서는 것이 버거운 노년이다. 어렵사리 계단을 내려 장독 두껑을 챙겨 덮으며 그녀가 향한 곳은 병원이다.
그리고 병원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건 청천벽력같은 '치매' 판정이었다. '내가 왜?'라며 벌컥 화를 내는 영란씨, 정신줄 놓지 않고 이날 이때까지 열심히 살아왔다는 그녀에게 치매라는 판정은 쉬이 수긍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치매'라는 판정과 함께 그녀에게 떠오른 기억이 있다. 어린 두 아들과 함께 친정 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그 '없던 시절', 그의 어머니도 '치매'였다. 밥그릇을 빼앗는 그녀를 문밖까지 쫓아와 '왜 밥도 못먹게 하냐'며 빗자루로 모질게 패던 어머니. 그 어머니의 병이 이제 그녀를 찾아왔다. 그 시절 두 아들과 함께 살아가기도 벅찼던 그녀에게 어머니의 '치매'가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처럼 '치매'라는 판정에 영란씨는 자신의 고통을 이제 자식들에게 안겨야 한다는 게 서럽다.
배우 손숙은 자신을 찾아온 감당할 수 없는 병에 걸려 고뇌하는 노인을 자연스럽게 연기한다. 치매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면 무엇이 제일 겁날까. 우선 치매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고, 그걸 받아들인다면 자신의 병이 자기 자식들에게 고통을 주지 않을까 하는 공포가 앞설 것이다. 늙고 병들어 가면서도 자식들을 걱정하게 되는 '인지상정', 드라마는 그 여전한 모성을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