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남북정상은 평양에서 6.15선언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후 우리사회는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의 집권과 북미 대결을 거치면서 통일 열망이 식어가는 경향이 생겼다. 노무현 정권 이후 민주 개혁 진영도 통일보다는 평화에 방점을 찍는 경향이 있다.
최진섭
통일은 언제 가능할까?
영화는 일제의 침략과 독립운동, 해방과 분단 과정, 6.25와 휴전, 이후 남북의 체제경쟁과 대화, 약 100년에 걸친 한국의 근현대사를 입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영화는 남북미의 주요 인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역사적 쟁점들을 다루는데, 핵심 주제는 분단과 통일이라 할 수 있다.
영화 속에서 원산이 고향인 이호철 작가(2016년 작고)는 1.4 후퇴 때 일주일이면 고향에 돌아올 거라는 생각에 열여덟 살 나이에 달랑 책 한 권만 챙겨들고 고향을 떠났다고 말했는데, 결국 통일이 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84세의 나이에 남쪽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북의 리종혁(1936년 생) 통일연구소장은 영화에서 "나는 정전과 함께 일생을 산 셈이 되죠. 우리는 영구한 평화를 모르고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가능하다면 우리 세대에 통일이 이루어져야죠"라고 소회를 밝혔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통일이 얼마나 걸릴까요?'라는 물음에 이렇게 의견을 주고받는다.
"김대중 대통령에게 김정일이 물었어요.
'대통령님, 이 과정이 얼마나 걸릴 거라 생각하세요?'
김대중 대통령이 대답했어요.
'남북이 진정으로 함께 협력하면 10년에서 20년 후면 통일에 이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김정일이 자기 생각은 다르다며, 그는 그 과정이 40년에서 50년은 걸릴 거라고 말했죠."
- <백년의 기억> ,임동원 전 국정원장 인터뷰 내용 중에서.
그때만 해도 남북해외 동포 사이에 통일의 열망이 높았음에도 단시일 내에 통일을 이루기는 어렵고 단계적으로 서서히 통일을 향해 나아갈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만큼 통일에 대한 열정이 높지 않고, 특히 남한의 젊은 세대 사이에는 굳이 통일을 할 필요가 없다는 의식마저 늘어나고 있다.
지난 4.15 총선에서 민주당계 비례연합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이 정부의 공식 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한반도 이웃국가' 정책으로 대체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한반도이웃국가공동체론은 김대중, 김정일 두 남북 정상이 2000년 6.15선언에서 합의한 통일방안(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합의했다)은 물론, 1989년 노태우 정권의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자주·평화·민주의 3대 원칙 아래 '공존공영→남북연합→단일민족국가'라는 3단계를 거쳐 통일을 실현하자는 것)보다도 몇 걸음 뒤로 후퇴한 것이라 하겠다. 어찌 보면 이는 현재 우리 사회의 시민, 특히 젊은층이 통일에 대한 관심이 없음을 반영한 공약이기도 하다.
6.15선언 이후 안타깝게도 우리사회는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의 집권과 격렬한 북미 대결을 거치면서 통일 열망이 식어가는 부작용이 생겼다. 노무현 정권 이후 민주 개혁 진영도 통일보다는 평화에 방점을 찍었고, 지금까지도 그런 흐름이 이어져 오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프랑스인 감독이 만든 <백년의 기억>은 객관적이고 거시적 안목에서 우리 역사를 돌이켜보고, 통일이 민족사적 과제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각인시켜 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고 이휘호 여사의 말로 끝을 맺는데, 이는 또한 한반도의 역사에 깊은 관심을 지닌 프랑스 감독의 희망 사항이 아닐까 싶다.
"앞으로 통일이 반드시 오리라고 생각해요. 그것은 집권하는 사람의 뜻에 따라서 변화가 오리라고 생각합니다. 내 손자들이 증손자들이 통일된 한국에서 살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