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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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가 된 두 가문의 아들, 딸이었던 로미오와 줄리엣은 '사랑'을 택했다. 과거 '사랑'은 지상 최대의 가치였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사랑도 변하기 시작했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과 함께, '사랑' 이야기 속 여주인공들은 '사랑'과 '성공'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기꺼이 이 두 가지를 성취했다.
그리고 이제 2018년 3포, 5포, 9포 세대의 대변인이 된 KBS 2TV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의 여주인공 서지안(신혜선 분)은 거기서 한 발 더 나간다. 서지안은 죽음을 앞둔 자신의 아버지(서태수, 천호진 분)가 소망한 '핀란드 행'을 최도경이 사랑을 이유로 미뤄달라고 부탁하자 분노한다. '니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냐'며, '왜 싫다는,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데 사랑이란 이름으로 발을 거냐'며 포효한다.
<황금빛 내 인생>은 전형적인 '로미오와 줄리엣'의 구도다. 어머니 양미정의 거짓말로 뒤바뀐 친딸, 그 사실이 밝혀지며 '원수' 사이가 된 두 집안의 남녀... 그 고전적인 갈등 구조에 맞추어 두 남녀 서지안과 최도경은 사랑에 빠지고 만다. 이 두 남녀는 단순히 로미오와 줄리엣에 그치지 않는다. 국내 10대 재벌 기업을 바라보는 '해성'가와 한때 무역맨이었지만 월셋집을 전전하는 어려운 집안의 사랑은 그간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익숙하게 차용해 왔던 '신데렐라' 서사이기도 하다.
소현경 작가는 이런 고전적이면서도 익숙한 갈등의 서사를 2018년 버전으로 새롭게 해석하고자 한다. 백마 탄 왕자의 2018년 버전인 최도경과 사랑에 빠진 서지안은 그가 타고 온 백마를 걷어찬다. 어려운 가정 형편, 그리고 그보다 더 난감했던 자신의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해성가의 친딸의 자리를 기꺼이 받아들였던 서지안은 사실은 친딸이 아니었다는 충격적 상황을 맞이하며 그간 가져왔던 가치관의 '아노미'를 '자살 시도'라는 극적인 장치를 통해 겪어낸다.
그리고 김 말리는 양식장 일까지 거치며 어렵사리 다시 돌아온 현실에서 그녀는 더 이상 예전의 '입신양명'을 꿈꾸지 않는다. 대신, 친구 혁의 도움으로 시작한 목공 일을 '새로운 행복의 이상향'으로 바라보며 그곳에서 '성공' 대신 '성취'의 '로망'을 꿈꾼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변화에 대한 응답이 바로 '핀란드행 티켓'으로 구현될 예정이었다.
이렇게 지난 50회의 여정에서 어렵사리 자신의 진짜 꿈을 찾아가는 서지안에게 '사랑'은 늘 거추장스러운 걸림돌이었다. 최도경이 해성가마저 버리고 자신의 주변을 맴돌았을 때에도 '해성가'를 지옥처럼 여겼던 서지안은 굳건하게 그의 사랑을 외면하려 애썼다.
드라마는 서지안을 통해 2018년의 사랑은 둘이 함께 하는 사랑보다는 '개인의 실존과 정립'이 먼저라 일관되게 강변해왔다. 그렇기에 최도경과 서지안의 사이는 '방패'를 들고 사랑을 막아내는 서지안과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가며 그런 그녀에게 달려가는 최도경의 질주로 되풀이돼 왔다.
이렇게 50부작이 넘는 대장정을 진행해온 드라마에서 '메인' 서사인 두 주인공의 사랑은 '역신데렐라' 스토리의 뼈대로 진행되어 왔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눈빛만은 간절했던' 두 사람의 관계에 시청자들은 그럼에도 '사랑의 완성'을 꿈꾸었고 응원하여 왔다. 하지만 계속되는 '해성가만은 아니다'라는 서지안과 그럼에도 '너에게 가는 길'을 포기할 수 없다는 최도경의 일방적인 듯 일방적이지 않은 사랑의 도돌이표는 시청자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결국 50회, 다시 한 번 최도경과 만남에서 '왜 나를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냐'며 분노하는 서지안을 보면서 적지 않은 시청자들조차 그간의 응원을 포기했다. '그래 이제 그만 헤어져라'라고... 50부의 여정 속에서 결국은 시청자들조차도 '포기'하게 만든 이 '역신데레라 스토리'가 추구했던 것이 2018년의 자기 주도적 사랑의 결말일까? 역시 2018년에는 '사랑'조차 사치인 게 맞는 걸까?
아버지의 그늘이 너무 큰 아이, 서지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