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글라스를 맞춰 낀 세 명의 해직 언론인들이 김민식 PD의 '큐' 사인을 기다리고 있다.
선글라스를 맞춰 낀 세 명의 해직 언론인들이 김민식 PD의 '큐' 사인을 기다리고 있다. 김윤정

 박성호, 박성제 기자와 최승호 PD의 율동을 보고 웃음 짓는 정영하 전 언론노조 MBC본부장.
박성호, 박성제 기자와 최승호 PD의 율동을 보고 웃음 짓는 정영하 전 언론노조 MBC본부장. 김윤정

파업 50일을 맞은 MBC에 오랜만에 웃음 가득 찼다.

23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에는 정영하 전 언론노조 MBC본부장, 강지웅 전 사무처장, 박성호 전 MBC 기자협회장, 최승호 전 MBC PD, 박성제 전 MBC 기자 등 해직 언론인을 비롯한 MBC 조합원들이 이른 시간부터 모여 촬영 동선을 맞추고 있었다. 2012년 파업 당시 UV의 '이태원 프리덤'을 개사한 'MBC 프리덤' 뮤직비디오로 큰 화제를 모았던 언론노조 MBC본부가 2017년 버전 'MBC 프리덤' 뮤직비디오 제작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들 사이를 바쁘게 누비며 꼼꼼하게 동선을 체크하는 이는 2012년 버전 'MBC 프리덤'의 연출자이기도 했던 김민식 PD. 그동안 비제작부서에 배치돼 PD 업무를 하지 못했던 그는 "6년 만에 연출이라 감이 많이 떨어졌다. 많이 헤매고 있지만 (조합원들이) 잘 도와주리라 믿는다"며 웃었다.

 "더 이상의 패배는 없다"... 'MBC 프리덤'의 힘찬 오프닝을 맡은 허일후 아나운서.
"더 이상의 패배는 없다"... 'MBC 프리덤'의 힘찬 오프닝을 맡은 허일후 아나운서. 김윤정

 '칼군무'를 선보일 MBC 노래패 단원들.
'칼군무'를 선보일 MBC 노래패 단원들. 김윤정

"MBC를 사랑하는 여러분. 더 이상의 패배는 없다! 오로지 승리만 있을 뿐. 우리가 돌아왔다. 마!봉!춘!"

허일후 아나운서의 외침에 맞춰 시작된 음악에 MBC 노래패의 퍼포먼스가 이어졌다. 기본 얼개는 2012년 버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5년이 지난 만큼 가사도 달라졌다. "요즘 MBC는 안 봐! 나꼼수면 충분~"이라던 가사는 "손석희면 충분"으로, 김재철 전 사장을 겨냥한 "큰집에 가서 쪼인트나 까여"라던 가사는, "블랙리스트 더 이상은 못 참아" 등으로 바뀌었다.

가장 달라진 것은 'MBC 프리덤'의 촬영장소다. 일산MBC 로비를 배경으로 촬영됐던 2012년 버전과 달리, 2017년 버전의 배경은 상암동 MBC다. 김민식 PD는 "많은 MBC 구성원들이 여의도 시절을 그리워하고, 상암MBC에 대한 애정이 별로 없다. 상암동 출근할 때마다 이 좋은 사옥이 부역자들의 놀이터가 돼 아깝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상암 MBC가 우리 조합원들의 진정한 터전으로, 새로운 마음의 고향으로 바뀌길 바란다"고 말했다.

(* 2012년 'MBC 프리덤' 보기)

2017년 버전은 보다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한다. 이 '화려한' 캐스팅의 주인공들은 지난 5년 동안 해직, 부당발령 등의 고초를 겪으며 본의 아니게 유명세를 얻게 된 이들이다. 이들의 '황당' 에피소드들도 모두 뮤직비디오를 통해 만날 수 있다. 배현진 앵커와의 '양치대첩'으로 화제를 모은 양윤경 기자는 양치질을 하며 등장하고, '피구 대첩'의 신동진 아나운서와 손정은 아나운서는 피구공을 튕기며 등장하는 식이다.

김민식 PD는 "파업 과정에서 화제가 된 조합원들은 물론, 해직 언론인들까지 총출동해 캐스팅에 힘이 실렸다"면서 "엔딩에 이용마 기자를 세우고 싶었지만 몸이 좋지 않아서 불발됐다. 그게 제일 아쉽다"고 말했다.   

"해고된 조합원들의 뒤를 MBC 조합원들이 단단하게 받쳐주는 그림"이라던 김민식 PD의 연출 의도대로, 선글라스를 맞춰 낀 해직언론인들은 '율동'이라 부르기에는 어설프고, '몸짓'이라 부르기엔 신명나게 어깨춤을 들썩였다. 최승호 PD는 "춤 잘 못 추는 거 어차피 다 아는데 잘 봐주시지 않겠냐"며 즐거워했다. 여의도 MBC에서 해직된 최 PD는 "상암 MBC 로비를 이렇게 자유롭게 오간 게 처음이다. 9년 만에 다들 활기찬 모습이 보기 좋다"고 말했다.

촬영 전에는 "하라니까 하긴 하는데..."라며 머쓱하게 웃던 이근행 전 언론노조 MBC본부장과 이우환 전 < PD수첩> PD도, 막상 '큐' 사인이 내려지자 어색함을 감추고 엉성한 춤사위를 보탰다.

어설픈 '몸짓' 사이에서, 단연 돋보이는 '댄서'는 서인 아나운서였다. 서인 아나운서는 2012년 'MBC 프리덤'에서도 화려한 브레이크 댄스를 선보인 바 있다. 허일후 아나운서는 "5년이 지났지만 아직 서인 아나운서의 몸이 녹슬지 않았다. 본 촬영 때는 더 잘할 거다"라며 후배 서인 아나운서를 응원하기도 했다.

김윤정

 뮤직비디오 촬영을 앞두고 열심히 율동을 연습 중인 MBC 조합원들.
뮤직비디오 촬영을 앞두고 열심히 율동을 연습 중인 MBC 조합원들. 김윤정

2012년 파업이 패배로 끝나면서, '즐겁고 유쾌하게 싸우자'며 만든 'MBC 프리덤'은 파업 참여 조합원의 '채증 자료'가 됐다. 이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조합원들이 '적극 파업 가담자'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김민식 PD는 이에 대해 여러 번 "비참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7년 버전의 끝은 다를 것이다. 파업은 머지않아 승리로 끝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MBC 사장 임면권을 가지고 있는 방송문화진흥회(아래 방문진) 김원배 이사가 지난 18일 사의를 표명하면서, 9명의 이사 중 구 여권 이사가 4명만 남게 됐다. 방문진은 구 여권 추천 이사 6명, 구 야권 추천 이사 3명으로 구성돼 있었는데, 지난 9월 4일 유의선 이사의 사퇴로 5:3 비율로 유지돼 오다 4:3 비율이 된 것이다. 고영주 이사장 역시 "곧 거취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고영주 이사장이 물러나고, 방통위가 보궐이사를 선임하면 MBC 개혁에 긍정적인 현 여권 이사가 다수가 된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뮤직비디오를 연출하는 김민식 PD나, 조합원들 모두 승리를 앞둔 들뜬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상암 MBC 앞마당에서 MBC 내부까지, 원테이크로 촬영된 'MBC 프리덤'은 김연국 언론노조 MBC본부장과 조합원들의 "우리가 이긴다"는 외침으로 끝났다.  MBC 전체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소리에 조합원들은 "끝이 보인다. 승리가 보여서 그런지 다들 목소리가 우렁차다"며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했다.

한편 이날 촬영된 '2017 MBC 프리덤'은 오는 25일 오후 7시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리는 MBC 파업콘서트 '다시 만나도 좋은 친구'에서 공개된다.

 '2017 MBC 프리덤'의 연출을 맡은 김민식 PD.
'2017 MBC 프리덤'의 연출을 맡은 김민식 PD. 김윤정

 MBC 프리덤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 사진.
MBC 프리덤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 사진. 김윤정


MBC 프리덤 MBC 총파업
댓글17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