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서'는 과거 청소년이 선망하는 직업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예전에는 가수의 뒤에서 춤을 춘다고 하여 '백댄서'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듣는 음악'에서 '보고 듣는 음악'으로 발전한 요즘은 무대의 구성과 안무가 중요해짐에 따라 댄서의 중요성도 더욱 커지고 있다. 최근 연예기획사에서는 음반을 기획하는 단계에서부터 댄서들의 의견을 묻고 콘셉트를 정하기도 한다. < 오마이스타 > 는 연예인에 비해 덜 알려진 댄서의 삶을 들여다보고,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K-POP의 나라에서 댄서로 산다는 것'을 짚어본다. [편집자말]
나는 댄서다 댄서 배상미씨가 17일 오후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만나 댄서로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댄서 배상미씨가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만나 댄서로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 이정민


|오마이스타 ■취재/이언혁 기자·사진/이정민 기자| 나나스쿨 배상미(42) 단장은 댄서계의 '왕언니'로 꼽힌다. 어릴 때부터 춤을 좋아했던 배 단장은 <젊음의 행진>에 응모했고, 1991년부터 본격적으로 댄서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그때는 '춤꾼'이라는 인식보다 각 방송사의 무용단에 속한 '무용수'에 가까웠다. <젊음의 행진>을 통해 하나둘씩 댄스팀이 생기게 됐고, 배 단장은 '민해경과 블랙 타이거즈'의 일원이었다. 라이벌 팀으로는 '박남정과 프렌즈' 등이 있었다.

"1세대는 거의 '재즈'였어요. 댄서라기보다 무용단에 가까웠죠. 방송국의 무용단이 있는 상태에서 저희는 외부 팀이었어요. 민해경의 '보고 싶은 얼굴'이 대표적이죠. 그때부터 조금씩 변화가 있는데요. 흑인들의 안무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그대로 소화할 수는 없어서 힙합을 조금씩 접목하게 됐죠. 멋있는 안무는 따라 하기도 하고요. 다들 기초가 탄탄했던 친구들은 아니었지만, 자기만의 색깔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데 중점을 뒀어요."

그와 함께하는 정진석(36) 단장은 5년 뒤인 1996년부터 방송 댄서로 활동했다. 친구들과 모여서 춤을 추다가 전국적인 대회에서 2등을 하고, 고등학교 때 전격 스카우트됐다. 그리고 1998년, 두 사람은 댄스팀 나나스쿨에 몸담게 되었다. 나나스쿨은 핑클을 시작으로 베이비복스, 클레오, 이정현, 장나라, 쿨, 성시경, 신승훈, 신화, 박효신부터 소녀시대까지 국내 내로라하는 가수들의 안무를 담당한 팀이다.

나는 댄서다 댄서 정진석씨가 17일 오후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만나 댄서로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댄서 정진석씨가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만나 댄서로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 이정민


방송댄서에서 가수로...연습생 제도로 바뀌기까지

춤을 업으로 삼았지만, 댄서로 꾸준히 활동한 사람치고 가수 제의를 받지 않은 이가 없다. 정진석 단장은 "1세대에서 2세대로 넘어가는 분이라면 한 번씩은 거의 가수 활동을 했을 것"이라면서 "립싱크 시대가 있다 보니까 그랬다.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가 대표적이다. 노래 만드는 사람과 춤추는 사람이 시너지를 내는 전설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상미 단장은 "한때는 가수로 데뷔하기 위한 하나의 통로처럼 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철이와 미애'의 미애 언니도 MBC 무용단이었어요. 굉장한 춤꾼이었죠. 클론도 춤으로 유명했고요. 그때는 춤 잘 추는 사람을 데려다 팀에 녹여냈는데, 요즘은 연습생을 뽑아서 체계적으로 트레이닝하죠. 안무의 필요성을 느끼지만 밖에서 활동하던 아이들의 경우 내부에서 트러블이 있을 수도 있고, 아무래도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겠죠. 그래서 분위기나 그림을 맞추기 위해 일단 비주얼이나 실력을 조합하고 트레이닝하는 체계로 바뀌었어요."(배상미)

나는 댄서다 댄서 배상미씨와 정진석씨가 17일 오후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만나 댄서로의 삶을 이야기하며 웃고 있다.

댄서 배상미씨와 정진석씨가 17일 오후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만나 댄서로의 삶을 이야기하며 웃고 있다. ⓒ 이정민


춤을 향한 무한한 애정은 때론 댄서들에게 독이 되기도 했다. 상황에 대한 계산보다는 춤 자체를 우선하다 보니 외부로부터 인정을 받는 데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 나이트클럽이나 길거리에서 춤을 추던 이들이 방송에 동원되면서 댄서들이 갑자기 많아진 것도 주요 요인이었다. 배 단장은 "굳이 돈을 받지 않아도 재밌어서 하다 보니까 (댄서의) 값어치가 많이 떨어졌던 것 같다"면서 "청소년이 선망하는 직업 1순위일 때도 있었지만, 반대로 이미지가 많이 안 좋을 때도 있었다"고 했다.

"순수하게 춤을 좇던 사람들이라 계산적이지 못한 부분도 있어요. 그걸 악용한 분들도 있고요. 지금이야 저희도 오래 하다 보니까 조금이라도 인정을 받고 있거든요. '이럴 때 후배들이나 친구들이 좀 더 춤추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줘야겠다. 위상을 높여줘야겠다'고 생각해서 사단법인 방송댄스협회도 만들었습니다.(배상미 단장이 이 협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 하나로 뭉친다면 조금씩 목소리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정진석)

많은 가수의 안무 맡았지만..."이효리 무대는 퍼펙트"

두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한 명 있다. 바로 가수 이효리다. 그룹 핑클 시절부터 두 사람과 인연을 맺은 이효리는 솔로 활동도 이들과 함께했다. "대표적이고, 가장 올인했으며, 그만큼 힘들게 작업한 게 바로 (이)효리씨"라고 한 배상미 단장은 "댄서 생활을 하며 여러 가수의 안무를 맡았지만, 하고 싶었던 것을 다 해냈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게 잘 맞아 떨어졌던 가수가 바로 효리씨다"고 했다. 무대의 전체적인 콘셉트에서부터 의상까지 참여했기에 기억에 남는다고.

"중간에 '겟차(Get Ya)'는 다른 팀과 했지만 솔로 1집과 3집은 저희와 했어요. 곡부터 다 함께 골랐죠. '유 고 걸'의 첫 방송은 아직도 기억나요. 10년 이상 알고 지낸 친구인데 무대 위에서 정말 멋있더라고요. 만족스러운 작품을 잘 표현해줘서 인상 깊었던 무대였습니다. '치티치티 뱅뱅' 리믹스 버전도 저희 작품이고요. 4집 수록곡 '러브 사인'에 맞춰 마치 <엔트랩먼트> 속 캐서린 제타 존스를 떠올리게 하는 퍼포먼스를 준비했었는데 곡이 심의가 안 나서 방송을 못하기도 했습니다."(정진석)

나는 댄서다 댄서 배상미씨와 정진석씨가 17일 오후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만나 서로의 손을 잡은  다정한 모습으로 마주보며 댄서로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 이정민


전체적인 앨범과 안무를 별개로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걸림돌이 생기기 마련이다. 때론 가수가 안무의 느낌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할 때도 있고, 의상이나 무대 상황이 뒷받침되지 않을 때도 있다. 두 댄서에게는 이런 아쉬움을 떨치게 해 준 이가 바로 이효리였다. 반면 야심차게 준비했지만 방송 한 번 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아직도 기억하는 아유미의 '큐티하니' 역시 이런 케이스였다. "더 많이 어필할 수 있는, 좋은 작품이었는데 아쉬웠다"고 털어놓은 두 댄서는 "이후 천천히 알려져 더 신기했다"고 미소 지었다.

댄서들에게 '창작의 기쁨'을 일깨워준 가수가 이효리였다면, '창작의 권리'를 알게 한 가수는 싸이였다. '강남스타일'로 국제가수가 된 싸이는 이후 '젠틀맨'을 선보이면서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아브라카다브라' 속 시건방춤을 본떴다. 이 과정에서 시건방춤을 만든 댄서에게 안무 저작권을 지급했다. 두 댄서는 "'당연한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은데, 사실 예전에는 그런 인식이 없었다"면서 "체계적인 구조가 아직 잡히지 않았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 희망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미소 지었다. 

18년 함께한 댄서커플..."존경할 수 있어서 좋다"

나는 댄서다 댄서 배상미씨와 정진석씨가 17일 오후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만나 댄서로의 삶을 이야기한 뒤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이정민


배상미 단장과 정진석 단장은 '댄서커플'이다, 14년 동안 교제하다 결혼했고, 이제 4년이 지났다. 인터뷰 내내 손을 꼭 잡고 서로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는 모습에서 애정이 듬뿍 느껴졌다. "같은 일을 하기 때문에 서로 커뮤니케이션이 잘 된다"고 장점을 설명한 배 단장은 "안무를 짤 때는 예민해지기 때문에 트러블이 생기기도 한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정진석 단장은 "배우자를 존경할 수 있어서 좋다"면서 "집에서는 아내이지만, 보고 배울 것이 많고 나를 이끌어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어느덧 40대에 접어든 배상미 단장. 댄서라는 직업의 특성상 현장에서 활동하기에는 다소 많은 나이다. 하지만 배 단장은 "강한 자가 오래 남는 게 아니라, 오래 남는 자가 강하다"고 했다. 스스로도 "마흔이 넘어서까지 할 줄은 몰랐다"고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희망을 주고, 미래를 보여줄 수 있어서 좋다고. 때론 후배들의 자리를 차지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경험에서 쌓인 연륜을 통해 후배들이 설 곳을 마련해주고 싶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두 댄서에게 물었다. "방송 댄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일단 춤을 춰야죠.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색깔이 맞고 좋아하는 팀을 찾아가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길은 늘 열려 있는데 의지가 부족해서 못하는 친구들이 많죠. 예전엔 인맥과 입소문으로 찾아가야 했다면, 요즘은 SNS로도 댄스팀 모집 공고가 뜨는 걸요. 댄서가 되는 건 되게 쉬워요. 프로가 되는 게 힘든 거죠. 요즘은 취미와 하고 싶은 것을 착각하는 이들이 많아요. 프로가 되려면 겪어내야 하는 훈련이 있는데 그걸 못 견디는 친구들이 많죠."(정진석)

"무대의 섰을 때의 화려함만 생각하고 찾아오는 친구들이 많아요. 하지만 그 동작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기까지 자신을 다루는 트레이닝을 해야 하죠. 자기와의 싸움을 견디지 못하더라고요. 댄서도 연습생이 있어요. 바로 '나나스쿨, 나나걸 팀원'이 되는 게 아니라 6개월 정도 연수 기간을 거칩니다. 시작하는 사람은 참 많은데, 끝까지 견뎌내는 친구들이 드물어요. 댄서로 활동하다가 안무가, 창작자가 되려면 여기에 능력이 더 있어야 해요. 평소에 두고 본 게 많아야죠. 생활에서 느낀 모든 것이 춤이니까요."(배상미)

나는 댄서다 배상미 정진석 이효리 나나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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