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학 PD

김종학 PD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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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불식간에 '헉' 소리가 터져 나왔다. 끝도 모르게 내리는 장맛비와 함께 전해진 느닷없는 부고. 그 짧았던 탄식이 큰 '허망함'으로 번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향년 62세, 여전히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해야 할 나이에 한국드라마의 현재를 일군 김종학 PD가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고 김종학 PD의 주검이 23일 오전 경기도 분당의 한 고시텔에서 타다 남은 번개탄과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전언이 담긴 유서와 함께 발견됐다. 경찰 측은 고시텔 관리인이 고인의 시신을 발견했으며, 유서와 정황 등으로 보아 자살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한국드라마의 새 장을 연 MBC <여명의 눈동자>로 "한국 현대사를 배웠고", 지상파 후발주자 SBS를 전 국민에게 각인시키며 '모래시계 세대'라는 유행어를 낳은 SBS <모래시계>로 "드라마의 재미를 알았다"는 이들에게 영원히 현역일 것만 같았던 그의 죽음은 커다란 슬픔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으리라.

더욱이 지난해, <태왕사신기> 이후 5년 만에 현업으로 복귀한 그가 송지나 작가와 손을 잡고 <신의>로 대중들과 알현했다는 점에서 급작스런 비보는 참담함을 더하고 있다. 결국 대중들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던 <신의>는 김종학 PD를 출연료 미지급과 관련 배임 및 횡령 사기 혐의로 피소되는 곤경으로 몰아넣은 뼈아픈 '유작'으로 남게 됐다. 그의 갑작스런 사망에 따라, 진행 중이던 사건 역시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가 종결될 전망이다.

'태왕사신기' '신의'의 부진…천당과 지옥 오간 김종학

"정신적으로 말도 못할 힘든 시기를 보냈다. 마치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롤러코스터를 겪는 것처럼."

최고의 드라마 PD가 사상 초유의 제작비를 투입한 드라마를 제작하고 연출한 후 실패를 감내하기까지. 김종학 PD는 <신의>가 방송되기 전인 지난해 5월 한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태왕사신기> 이후의 소회를 '천당'과 '지옥'의 교차로 표현했었다.

배용준이란 당시 유례없을 한류스타의 인기를 등에 업고, 430억 원이란 한국드라마 사상 최초의 제작비를 들이고도 시청률 면이나 해외 판매에 있어 부진한 성적을 거뒀던 <태왕사신기>의 여파가 그리도 컸다. 이른바, 한국판 <반지의 제왕>을 꿈꿨던 판타지 드라마의 실패였다. 이후 그가 의욕적으로 현장에 복귀해 만든 <신의>는 김종학 PD에게 결코 지상에서의 천당으로 가는 티켓을 끊어주진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인기 고공행진 중인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그가 1999년 설립한 김종학프로덕션이 공동제작 중이다. 대선을 앞둔 지난해 큰 반향을 일으켰던 <추적자> 역시 김종학프로덕션이 제작을 맡았다. <해신> <풀하우스> <패션 70> <신의 거탑> <베토벤 바이러스> 등 굵직한 작품들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태왕사신기> 이후 2009년 김종학프로덕션을 떠나야 했던 김종학 PD는 <신의>를 김종학프로덕션이 아닌 신의문화전문산업회사를 설립해 제작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 회사의 대표 역시 김종학 PD와 함께 같은 건으로 피소된 바 있다.

출국금지 명령까지 받은 채 경찰 조사에 성실히 임했던 김종학 PD의 자살. 그의 안타까운 죽음은 결국 예당엔터테인먼트 변두섭 회장의 자살과 함께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허망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또 다른 실례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이송희일 감독이 트위터에 김종학 PD의 명복을 빌며 남긴 말마따나 '일장춘몽'과도 같은, 성공의 스포트라이트와 실패의 그림자가 롤러코스터처럼 수시로 교차되는. 

인생까지 걸어야 하는 제작자의 현실을 증명 

 <모래시계> <태왕사신기> <신의> 등을 연출한 대한민국 드라마계의 대부로 불렸던 김종학 PD의 빈소가 23일 오후 경기도 성남 분당 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어 있다.

<모래시계> <태왕사신기> <신의> 등을 연출한 대한민국 드라마계의 대부로 불렸던 김종학 PD의 빈소가 23일 오후 경기도 성남 분당 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어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그렇게, 1977년 MBC 드라마국 PD로 입사해 <수사반장>을 시작으로 30대에 이미 <동토의 왕국> <인간시장> 등 굵직한 드라마를 만들었던 김종학 PD는 독보적이었던 창작자가 작품을 위해 자본에 관여하게 되면서 현실과 부딪칠 수밖에 없는 궤적을 그의 인생으로 증명한 셈이 됐다. 온전히 연출에만 힘을 기울일 수 없었던 자의 숙명을 결국 김종학 PD는 돌이키지 못할 방식으로 받아들인 셈이 됐다. 

그래서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새 작품을 준비 중이었다던 김종학 PD의 죽음은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특히나 20년 지기인 송지나 작가와 결합한 <신의>를 통해 김종학 PD가 타임슬립을 소재로 사극과 현대극을 오가고, 멜로와 역사극, 액션을 부지런히 오가는 현대적인 감각으로 소통하려 했다는 점은 안타까움을 더 한다. 

유서 내용이 공개될지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결국 드라마 한 편의 성패에 제작사와 제작자가 '인생을 거는 도박판' 위에까지 서게 되는 드라마 제작 현장의 '나쁜 예'를 환기시켜 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방송사와 제작사 간의 관계를 필두로 스태프들과 주연급 배우의 출연료 간극 등 개선되지 않고 있는 불합리한 관행들에 대해서 말이다.

<여명의 눈동자>와 <모래시계>라는 그의 불세출의 작품들만을 회고하기엔 김종학 PD의 죽음은 너무나 허망했고 급작스러웠다. 그가 죽기를 결심하면서까지 하고 싶었던 말들에 귀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업계는 물론 그의 작품을 통해 드라마를 배우고, 세상을 배웠다 기억하는 이들이 응답해야 몫일 것이다.

다시 한 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김종학 모래시계 신의 태왕사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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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현 영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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