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종영한 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 장희빈(김태희 분)이 사약을 받기 전 마지막 모습.

지난 25일 종영한 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 장희빈(김태희 분)이 사약을 받기 전 마지막 모습.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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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월화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이하 <장옥정>)가 장옥정(김태희 분)의 죽음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25일 방영된 최종회는 전국기준 10.3%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 방송분(9.0%)보다 1.3%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미녀배우 김태희가 '9대 장희빈'으로 캐스팅 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장옥정>은 기대와 달리 낮은 시청률로 고전을 면치 못했고, 이후에도 여러 가지 논란에 휩싸이며 내홍을 겪었다. '새로운 장희빈'의 모습을 제시하고자 했던 <장옥정>은 왜 실패한 것일까. 또한 이 작품이 남긴 의미는 무엇이 있는가.

연기력 논란에 역사 왜곡까지, 발목 잡힌 장옥정

<장옥정>은 지금껏 잘 알려진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선악구도 문법을 완전히 전복시킨 획기적 작품이었다. 숙종(유아인 분)과 장희빈(김태희 분)을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그려낸 이 작품은 그들의 절절한 사랑을 메인 스토리로 끌고 나감으로써 전작과의 확실한 차별화를 꾀했다. 이 때문에 지금껏 성녀로 그려진 인현왕후(홍수현 분)는 정치적 야망이 있는 명문가 규수로, 최숙빈(한승연 분)은 낮은 신분을 극복하기 위해 권모술수도 마다하지 않는 영리한 여성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문제는 이러한 스토리텔링이 시청자들에게 너무 낯설게 다가갔다는 것이다. 시청자들은 '장희빈=악녀'라는 선입견을 끝끝내 탈피하지 못했고, 결국 사랑에 눈물지으며 모든 것을 희생하는 장희빈을 외면하기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장옥정>은 오랜 시간 한 자릿수 시청률에 머무르며 동시간대 꼴찌라는 굴욕을 맛봐야 했고, 갈등이 심화되는 중반 이후에도 제대로 된 상승 동력을 마련할 수 없었다.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 장옥정 역을 맡은 김태희.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 장옥정 역을 맡은 김태희. ⓒ SBS


게다가 장희빈을 최대한 미화하려다 보니 역사 왜곡 논란도 불거졌다. 백성들이 숭덕비까지 세워 줄 정도로 추앙받았던 인현왕후의 아버지 민유중(이효정 분)을 역모를 꾀하는 권신으로 그려내고, 입맛에 따라 등장인물들의 수명을 무리하게 늘림으로써 사극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역사적 사실을 무시했다는 비판을 면키 힘들었다 항간에서는 주인공만 장희빈 일 뿐, 판타지 사극과 다를 바 없다는 혹평까지 쏟아졌다.

훗날 영조가 되는 연잉군까지 낳으며 숙종의 총애를 받았던 최숙빈을 승은조차 입지 못한 정치적 산물로 그려낸다든지, 인현왕후가 자신의 복위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여론을 움직인다든지 하는 설정 또한 무리수로 작용했다.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이끌어 내지 못한 과도한 픽션은 오히려 작품의 질을 훼손시키고 몰입을 방해하는 결과만을 가져왔다. 보다 철저한 고증이 아쉬웠던 대목이다.

타이틀롤 김태희의 연기력 논란은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윤여정, 이미숙, 전인화, 정선경, 김혜수 등 당대 최고의 연기파 여배우들이 연기한 장희빈에 익숙한 대중은 김태희의 과도한 표정 연기와 어설픈 대사 처리를 용서하지 못했다. 중반을 지나면서 연기가 다소 안정되기는 했지만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 여론을 만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역대 장희빈 중 최고 미모를 자랑했지만, 연기력만큼은 예외였던 셈이다.

결국 <장옥정>은 당초 기대와 달리 단 한 번도 동시간대 1위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채 쓸쓸하게 퇴장하게 됐다. 강력한 경쟁작이었던 MBC <구가의 서>에 밀렸음은 물론이고, 예상치 못한 다크호스 KBS 2TV <직장의 신>에도 승기를 내어주며 역대 장희빈 중 가장 초라한 성적을 거두고 만 것이다. 이로써 지난 50년간 승승장구하던 장희빈의 '흥행불패신화'는 <장옥정>으로 인해 막을 내리게 됐다.

'장옥정'이 남긴 의의는 무엇?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옥정>을 완전한 실패작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시청률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나름의 의미는 분명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기존의 문법을 거부하고 새로운 스토리를 구현한데 있다.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관계를 조강지처와 첩의 관계가 아니라 정치적 대립 관계로 설정함으로써 보다 다각화 된 접근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앞서 방송 된 수많은 장희빈들이 항상 '새로운 장희빈'을 표방했다가 중반을 지나면 시청률 논리에 매몰 돼 전형적 선악구도로 회귀한 것과 달리 <장옥정>은 뚝심 있게 처음 설정한 스토리를 그대로 밀고 나갔다. 그 과정 속에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고, 심각한 오류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기획의도를 충실히 지켜나갔다는 점에서 격려의 박수를 받을 만하다. 적어도 스스로의 다짐을 배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유부단하게만 그려졌던 숙종을 정치에 능하고 사랑을 지키는 로맨티스트로 그려낸 점도 인상적이다. 단언컨대 역대 장희빈에 등장한 숙종 중 <장옥정>의 숙종이 가장 섹시하고, 정열적이었으며, 멋있었다. 환국을 서슴지 않으며 막강한 왕권을 휘둘렀던 실제 역사 속 숙종을 가장 비슷하게 묘사해 냈다. 적어도 <장옥정>의 숙종은 훗날 등장할 여러 숙종 캐릭터의 교과서적 표본으로 자리매김하기 충분하다.

 SBS 월화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의 한 장면. 이순(유아인 분)이 장옥정(김태희 분)을 품에 안고 있다.

SBS 월화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의 한 장면. 이순(유아인 분)이 장옥정(김태희 분)을 품에 안고 있다. ⓒ SBS


청춘스타 유아인의 열연은 그야말로 발군이었다. <성균관 스캔들>을 통해 마초적인 캐릭터를 실감나게 보여줬던 그는 <장옥정>에서도 안정적인 연기력과 훌륭한 캐릭터 소화로 대중의 찬사를 이끌어 냈다. 우왕좌왕했던 김태희 대신 극의 무게감을 한층 더한 그의 존재감은 '연기파 배우'라는 수식이 부끄럽지 않을 만큼 절대적이었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활약 중인 그의 앞날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장옥정>이 작품성과 시청률 면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향후 제작 될 장희빈 이야기에 하나의 방향성을 제시한 것은 괄목할 만한 성과다. <장옥정>의 부족한 점은 보완하고 본받을 점은 강화한다면 뻔하디 뻔한 장희빈이 새롭게 탄생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런 의미에서 <장옥정>이 겪은 시행착오와 그들이 남긴 족적은 그리 가볍지 않다 할 것이다. 수많은 방송 관계자들이 뜻 깊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실패한 것도 있고, 성공한 것도 있지만 <장옥정>이 나름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것만은 인정해주고 싶다. 지난 3개월 간 고생 많았던 제작진과 출연진에게 심심한 격려와 위로의 말을 전하며 새로운 '10대 장희빈'의 등장을 내심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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